삼성디스플레이 직원이 OLED 패널의 품질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 삼성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직원이 OLED 패널의 품질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 삼성디스플레이

2019년부터 본격화된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은 우리 디스플레이 기업들에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가 늘어나는 이른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은 한때 앞선 기술력으로 시장을 호령했으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은 중국 세(勢)를 버텨낼 요량이 없었다. 중국 업체들은 저가 공세 전략으로 1년여 만에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고, 결국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사업 철수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삼성과 LG가 사업 철수를 밝히고, 공장 매각 시도와 패널 생산량을 줄여나가자 중국 업체들은 가격을 마음대로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간 손해에도 가격을 낮춰 시장에 침투했던 중국 업체들이 수익성 확보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불을 붙였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이동 제한(셧다운)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도입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고, TV나 정보기술(IT) 기기 등 전자제품 판매량이 큰 폭으로 뛰었다. 이들 제품에 필수적인 LCD 패널도 덩달아 출하량이 늘어나면서 수익성은 더 높아졌다. 현재 대형 LCD 패널 가격은 중국 업체들이 저가 공세를 펼치기 전인 2018년보다 높은 수준에 형성돼 있다.

이런 시장 변화에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사업 철수 계획을 철회했다. 당분간 대형 LCD 패널을 더 만들겠다는 것이다. 강력한 가격 모멘텀에 생산 전략도 변화한 셈이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LCD 패널은 황금알을 낳는 ‘캐시카우’로 떠올랐다.


삼성 “대형 LCD 생산 1년 연장 검토”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애초 지난해 말까지 TV에 들어가는 대형 LCD의 생산을 종료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LCD 가격 상승 랠리가 이어지자 삼성디스플레이는 내년 말까지, LG디스플레이는 당분간 생산 유지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최근 TV용 패널을 만드는 대형 LCD 사업부 임직원들에게 “회사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내년 말까지 LCD 생산을 지속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애초 지난해 말 TV용 대형 LCD 패널 생산을 종료하고 사업에서 철수할 계획이었지만, 삼성전자 VD 사업부의 요청으로 생산을 올해 말로 한 차례 연장한 바 있다. 이어 생산 종료 시점을 내년 이후로 또 미루겠다는 방침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대형 LCD 패널을 생산 중인 충남 아산캠퍼스의 L8 라인 등은 이번 결정으로 내년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함께 대형 LCD 패널을 생산해오던 아산의 L7은 지난 3월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해당 라인에는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라인이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월에는 중국 장쑤성 쑤저우 8세대(2200×2500㎜) LCD 생산라인을 중국의 CSOT 측에 매각하기도 했다.


LG디스플레이 직원이 LCD 패널 부품을 들고 서있다. 사진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직원이 LCD 패널 부품을 들고 서있다. 사진 LG디스플레이

대중(對中) 협상력 높이기 위한 방편이 수익 낳는 효자로

업계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중국 업체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디스플레이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삼성디스플레이가 LCD 패널을 계속 만들어 삼성전자에 시장가보다 저렴하게 납품한다면 중국 LCD 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하려는 횡포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재 중국 기업들인 BOE, CSOT의 양강 체제로 재편된 글로벌 대형 LCD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증가 외에도 반도체 공급 부족(쇼티지)으로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역시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패널 가격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국 업체들은 패널 가격을 고객사 측과 흥정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TV용 LCD 패널 물량 주문 일부를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로 옮겨 가격 협상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나 LG디스플레이가 사업을 접으려 했던 것은 패널 가격 하락으로 적자를 면치 못했던 대형 LCD 사업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라며 “하지만 패널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수익이 난다면 추가로 돈이 더 들어가지 않는 대형 LCD 사업을 접을 이유가 없다”라고 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해 대형 LCD 생산 연장을 결정한 것은 삼성전자 VD 사업부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생산 연장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손해가 나는 LCD를 굳이 더 만들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형 LCD 패널 가격 상승세는 또 다른 수익원으로서의 LCD 가능성을 키웠고,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생산을 종료할 이유가 사라진다. 특히 현재 대형 LCD 패널 생산라인은 추가적인 투자도 필요하지 않다. 만들어 팔기만 하면 수익이 나는 구조다. 이 때문에 LCD 패널 생산 연장은 퀀텀닷(QD) 디스플레이 전환에 상당한 돈을 들여야 하는 회사 사정을 감안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요청도 있었을 테지만,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자사의 이익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는 확고한 자세를 살펴본다면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생산 연장 방침은 LCD 사업부의 고(高)수익이 2022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LCD 패널 가격 유지만 돼도 제조사엔 이익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트(DSCC)는 3분기까지 LCD 가격이 오를 것으로 봤다. LCD 가격 상승세가 올해 2분기 둔화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조정한 것이다. DSCC가 집계한 지난해 4분기 LCD 패널 가격은 전 분기보다 27% 올랐고, 지난 1분기에는 14.5% 상승했다. DSCC 측은 “2분기는 전 분기 대비 17% 오를 것”이라고 했다.

TV용 LCD 패널 사업을 접고, 해당 생산라인은 수익성이 높은 IT(모니터·노트북·태블릿 PC 등)용 라인으로 바꾸려던 LG디스플레이 역시 이미 지난해 라인을 유지하기로 했고, 추가적인 생산 연장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사 측은 가격 동향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해 TV용 대형 LCD 생산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연구원은 “지난 1년간 LCD 증설이 없었던 상황에서 면적 기준 수요 증가세가 가파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패널 가격의 하락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비해서도 현재 패널 가격은 약 20~30% 높은 수준으로,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서는 이후 패널 가격이 떨어져도 TV LCD의 흑자 구조를 유지하는 수준에서 방어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