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장지동 쿠팡 서울물류센터 1층,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다. 사진 김은영 기자
서울 송파구 장지동 쿠팡 서울물류센터 1층,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다. 사진 김은영 기자

“사원님, 건물 안에선 담배를 피우면 안 됩니다. 얼마 전 덕평 센터에 화재도 났잖아요. 담배는 꼭 밖에 나가서 피우세요.” 6월 30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송파구 장지동 쿠팡 서울물류센터 교육실에서 신규 사원들을 교육하던 선임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홍역을 치른 탓인지 사원 교육은 주로 코로나19 예방에 치중됐다. 보안과 장비 안전 교육이 이어졌지만, 소방 교육은 따로 진행되지 않았다. “담배는 나가서 피우라”는 말이 전부였다.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난 지 2주째, 물류센터는 여전히 주문받은 물동량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기자가 물류센터 알바(아르바이트)를 가겠다고 하자 주변에선 ‘위험하지 않나’란 염려가 나왔지만, 현장에선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이날 주간 1조에 배치된 사원은 170여 명. 기자는 피킹(picking)이라 불리는 집품 업무를 맡았다. PDA(개인용 단말기)가 할당한 대로 카트(cart·수레)를 끌고 다니며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아 토트(tote·적재 용기)에 담는 출고 업무다. 물건들은 종이로 된 가벽 사이로 무질서하게 진열돼 있었다. 기저귀 옆에 세탁세제, 그 옆에 설탕과 장난감 물총이 진열되는 식이다. 3㎏ 들이 설탕 19개, 커피믹스 40상자, 물총 38개…. 상자를 뜯고 각 상품의 바코드를 스캔해 토트에 담는 작업은 단순하지만, 노동집약적이었다. 대용량 주문이 많은 이유는 고객 유인을 위한 이커머스 업체들의 묶음 판매가 성행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예방 교육만 철저···소방 교육 전무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섭씨 29도. 마스크를 끼고 작업하다 보니, 금세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작업자들의 땀을 식혀주는 건 수십 개의 대형 선풍기뿐이었다. 기둥에 묶인 4~5구짜리 멀티탭에는 선풍기와 컴퓨터, 정수기 등의 코드가 어지럽게 꽂혀 있었다.

선풍기는 기자가 일한 8시간 내내 쉬지 않고 돌아갔다. 주간·오후 근무조의 근무시간을 고려하면 아침 8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선풍기가 돌아가는 셈이다. 덕평물류센터 화재 원인이 멀티탭에서 튄 불꽃 때문이었다는 소방 당국의 발표를 떠올리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주변엔 종이상자, 포장용 비닐 등 가연성 물건 천지였기에 불이 나면 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곳곳엔 소화기가 비치됐고, 소화전과 방화 셔터도 설치됐다. 하지만 일용직 근로자가 대부분인 사업장에서 화재 발생 시 제대로 된 대처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약 9900m²(약 3000평) 공간에 여러 상품이 높이 쌓인 탓에 처음 온 사람들은 건물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현장에서 소화기 사용법이나 비상구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작업자 스스로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할지도 의문이었다. 기자가 일한 2층은 중간에 복층이 껴 있는 구조로, 화재 시 2.5층의 천장에 붙은 스프링클러가 작동해도 아래층까지 물이 닿기 어려워 보였다.

이는 쿠팡 물류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경제 폭발로 이커머스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해에만 전국에 1000㎡(약 300평) 이상의 물류창고가 700개가 넘게 늘었다. 하지만 소방 방재(防災) 대책은 느슨했고 오히려 컨베이어 벨트 등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일부 규제가 완화됐다. 예컨대 현행 건축법에선 방화 구획을 1000㎡로 규정하지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됐을 땐 최대 3000㎡(약 900평)까지 완화해 준다. 화재가 난 쿠팡 덕평물류센터의 경우 방화 구획을 최대 1만㎡(약 3020평)로 정했다.


쿠팡 서울물류센터 신규 사원 라커룸, 사원들은 이곳에서 쿠펀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출근을 체크하고,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보관한 뒤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사진 김은영 기자
쿠팡 서울물류센터 신규 사원 라커룸, 사원들은 이곳에서 쿠펀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출근을 체크하고,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보관한 뒤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사진 김은영 기자

에어컨 대신 선풍기, 휴대전화는 반납

오후가 되자 집중력이 흐려졌다. 8시간 동안 주어진 휴식 시간은 점심시간 50분을 제외하고, 오후 쉬는 시간 20분이 전부였다. 점심시간엔 작업장과 식당을 오가는 데만 30분 이상을 할애했다. 일부 사원은 휴식 시간을 벌기 위해 센터 밖에 돗자리를 깔고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일주일째 근무 중이라는 한 사원은 “다른 공장은 2~3시간 일하면 쉬는 시간을 10~20분 주는데, 여긴 오후에 한 번 20분 주는 게 전부”라며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 점심을 싸왔다”고 했다.

센터 안과 밖의 휴게 공간은 매우 협소했다. 층마다 휴게실이 있었지만, 수용 인원이 40~50명에 불과해 나머지 사람들은 센터 밖 도로에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화단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휴지통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흡연 구역이 만들어졌고,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쌓였다.

쿠팡 물류센터에 출입하기 위해선 휴대전화와 스마트워치 등의 소지품을 사물함에 보관해야 한다. 휴대전화를 보며 일하면 사고가 날 수 있어서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외부와 소통이 차단된 작업자에게 의지할 곳은 관리자와 주변 사원들뿐이지만, 작업자 간 소통은 허용되지 않았다. 다른 사원과 1m 내 거리에 있기라도 하면 PDA에선 ‘주변 동료와 가까우니 떨어지라’는 알림이 울렸다. 코로나19 이후 생긴 기능이다. 이렇게 8시간 꼬박 일하고 손에 쥐어진 하루 일당은 세전 6만9760원이었다. 정확히 최저시급(8720원)이다.

여러 물류센터에서 일해본 근로자들은 서울복합물류단지에 입주한 쿠팡 서울물류센터는 그나마 관리가 잘된 편이라고 했다. 물류 업체 한 관계자는 “쿠팡 덕평물류센터처럼 이커머스 업체가 직접 짓고 운영하는 곳은 더 관리가 안 됐을 것”이라며 “세 들어 살면 집주인 눈치를 보지만, 집주인은 눈치 볼 곳이 없잖나. 아무래도 안전보다 실적이 우선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과 함께 물류센터에 필요한 노동 인력도 늘고 있다. 물류센터는 냉·난방시설도 없이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고 알려졌지만, 특별한 기술이나 면접 없이 바로 일할 수 있고 급여가 빨리 지급되기 때문에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선호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화재나 과로 등으로 인한 사고가 늘고 있어,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센터엔 건물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일용직 사원이 많아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많은 물류센터에서 작업 관리자가 코로나19 예방과 소방 안전 등의 관리 업무를 겸직하고 있기에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소방 안전 관리를 전담하는 관리자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영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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