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사망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의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서 8월 27일 오전 법원의 현장검증이 열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9명의 사망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의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서 8월 27일 오전 법원의 현장검증이 열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6월 9일 9명의 사망자를 낸 ‘광주 학동 4구역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 발생했다면 누가 책임을 졌을까. 해당 구역의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권순호 대표이사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졌을 것이다. 기존엔 현장을 지휘하는 현장 소장이 책임을 졌지만, 법 시행 이후에는 처벌 대상이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광장의 윤성휘 변호사는 “앞으로 광주 학동 붕괴 사고처럼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에게 3년을 초과하는 징역형이 선고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진단했다.


산업계 사망·사고 절반 이상 발생하는 건설사들 골머리

내년 1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산업계 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이 건설업에서 발생해서다. 이 때문에 최근 로펌에는 안전실태 조사와 위험요인 분석, 직제개편 등을 문의하는 대형 건설사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건설 업계와 로펌 업계에 따르면 앞으로 대형 건설사들은 적정한 공사비와 공사 기간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지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대재해법 시행 전에는 발주자로부터 빠듯한 공사 기간을 부여받아도 사업을 진행했다면, 이제는 속도 보다는 ‘안전’에 초점을 맞춰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율촌의 정원 변호사는 “앞으로 건설사들은 안전 관련 비용과 기간 확보를 요구하고, 계약 이후 사후 변경에 따른 비용 증가까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면서 “발주처도 중대재해법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시행사의 공사 기간 연장이나 비용 증가를 거절했다가 사고로 이어질 경우까지 상세히 살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소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문을 닫는 곳도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건설 업종의 산업재해 2만7211건 중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2만1904건으로 전체의 80.5%를 차지한다.

CEO 형사처벌 등으로 인한 ‘경영 공백’도 걱정이지만, 행정제재가 주는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행정제재로 건설사가 영업정지를 당할 경우, 공공 입찰 자격에 제한이 생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영업정지를 당한 상태에서 조달청으로부터 부정당(不正當) 업자 제재까지 겹치면 대형 건설사가 아니고서는 사실상 시장에서 영구 퇴출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8월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도로에 전날 사망한 오토바이 배달원을 추모하는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오토바이 배달원은 전날 오전 신호를 기다리다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사진 연합뉴스
8월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도로에 전날 사망한 오토바이 배달원을 추모하는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오토바이 배달원은 전날 오전 신호를 기다리다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사진 연합뉴스

자동차 협력 업체 사고도 CEO 책임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수많은 협력 업체를 운영하는 자동차 업계도 고민에 빠졌다. 협력 업체와 용역 직원들이 수만 개의 부품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재해가 발생할 경우, 법적인 책임은 원청 업체의 대표이사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많은 협력 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는 공장 시스템의 특성을 감안하면, 모든 사고를 원청 업체가 예방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대재해법상 고의와 인과관계 범위도 기존보다 넓어졌다는 점에서 CEO의 법적 리스크도 확대된 상황이다. 최근 자동차 부품회사인 현대위아 창원4공장에서는 협력 업체 근로자 B씨가 프레스 공정을 하던 중 기계에 끼여 숨졌다. 당시 함께 작업하던 동료가 B씨를 보지 못하고 기계를 수동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근무 수칙에 맞게 2인 1조로 작업에 나섰지만, 시행령상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가 미흡하다면 현대위아 대표가 처벌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원청의 책임 범위가 모호해 사업장 내 모든 제삼자 종사자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 묻도록 돼 있다”면서 “(원청이) 수급 업체 평가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선정하고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 교육에 공을 들이는 방법밖엔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중대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중대시민재해’도 대비해야 한다. 자동차와 같은 제조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생산과 유통, 판매 업체까지 모두 처벌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만약 자동차 브레이크 결함으로 시민이 1명 이상 사망한다면 브레이크 제조사는 물론 완성차 제조사의 대표이사도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배달 업계 우왕좌왕, 식음료 업체 살얼음판

배달 플랫폼은 라이더와 계약 관계가 불명확해 자신들이 처벌 대상이 되는지 여부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배달 플랫폼의 대표 주자인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요기요 등은 혼란스러운 상태다. 라이더는 위탁 계약을 체결해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데, 회사의 지시를 이행해야 한다. 수사기관이나 주무부처가 이들 사이의 계약을 ‘직영’으로 본다면 플랫폼이 1차적인 책임 주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대재해법은 시설이나 장비, 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법인이 책임을 지도록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질적인 지배와 운영, 관리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지배와 관리에서 더욱 확대된 개념이다. 결국 라이더 사고나 제품 결함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는 배달 플랫폼인지, 식당 주인인지, 라이더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센터 김익현 변호사는 “배달 플랫폼은 만들어진 음식을 배달만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로 결함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원료·제조 업계 역시 중대시민재해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민재해는 제조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생산과 유통, 판매 업체까지 모두 처벌하는 규정이다. 기존 제조물 책임법에서는 민사적으로 규제했지만, 중대재해법이 생기면서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특히 제조물 업계 CEO의 이행 의무를 담은 시행령 자체가 구체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에서 기업의 불확실성이 크다. 각 기업이 어느 정도의 안전·보건 조직을 둬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 할 부분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대표적으로 ‘중대재해법 9조 1항’을 꼽는다. 해당 조항은 ‘안전·보건 관계 법령은 원료·제조물과 관련해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보건과 관계된 법령을 의미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해당 조문에서 수식어를 빼면 ‘안전·보건 관계 법령은 안전·보건 관계 법령이다’만 남는다.

법무법인 태평양 중대재해본부 소속 오명은 변호사는 “이게 시행령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모호하고, 두리뭉실하게 표현된 조항들이 있다”면서 “결국 기업더러 ‘어디까지 해야 안심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을 안고 가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정·김종용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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