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적인 풍요가 꼭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지만 요즘에는 더욱 그런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가 10년 전 또는 20년 전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잘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예전보다 훨씬 낮은 것 같다. 갈수록 삶이 힘들어진다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은 결코 경제학적 해석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명제인 것이다. 1인당 소득도 몇 배 증가했고, 주택보급률도 훨씬 높아졌고, 웬만하면 승용차도 굴리고, 자녀의 숫자도 절반 이하로 줄었으니 훨씬 더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아가야 마땅할 것 같은데 왜 현실은 그렇지가 못할까?

 왜 우리 사회의 체감적인 행복지수는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행복은 기대수준과 현실과의 차이가 좌우하는 상대적인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현실의 생활이 절대적 기준으로는 만족할만해도 기대수준이 너무 높으면 불행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의 기대수준과 현실과의 차이가 과거보다 훨씬 커진 것일까?

 첫째, 사람들의 기대수준 자체가 엄청 높아졌다. 무한경쟁, 적자생존, 승자독식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영향으로 경제적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류층이 형성되고 있다. 일반시민들은 그들의 삶을 선망하기도 하고 질시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삶의 수준이 어느새 자기의 기대수준으로 바뀌는 심리를 겪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자기보다 나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둘째, 최근에는 생활수준을 일단 기대수준에 맞춰 올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예를 들면 무리한 빚을 내어 큰 집을 장만하고 이자 부담에 시달린다든지, 순자산은 마이너스라도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든지, 신용카드로 일단 긁고 월말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낄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국민은 전통적으로는 매우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국민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늘고, 저축보다는 소비가 미덕이 되고, 충동소비와 과시적 소비로 즉물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소비수준이 과연 국민소득 1만5000달러짜리일까. 승용차의 평균 사이즈가 한국보다 큰 나라가 전 세계에 미국을 제외하고 또 있을까. 고급 양주와 명품이 이렇게 잘 팔리는 나라가 있을까.  골프장이 이렇게 화려한 나라가 또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과연 행복해졌을까.

 소득이 우리의 두 배가 넘는 나라에 가 봐도 시민들의 평균적인 소비성향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낮다. 행복을 추구하는 소비생활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역설적 단계까지 이미 진행된 것은 아닐까.  풍요롭게 살기는 쉬워도 행복하게 살기는 힘든 현재의 우리의 삶의 방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