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무선호출기 업체로 시작한 팬택의 올해 목표는 매출 4조 8000억원, 영업이익 4000억원이다. 15년간 연평균 67%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기록 뒤에는 기술개발을 통한 팬택의 준비가 뒷받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근 휴대폰 내수 시장이 보조금 지급 등에 따라 회복세를 띠고 있다. 삼성전자·팬택계열·LG전자 빅3 업체 간 경쟁구도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LG전자와 팬택계열 간 2위 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LG전자가 2·3월 두 달 연속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3위인 팬택계열과 LG전자의 점유율 격차는 1% 이하로 팬택계열의 선전이 돋보인다.

디자인 면에서는 슬림슬라이드형과 슬림폴더형 등 슬림폰 판매가 상승세를 이어갔다. 1%정도의 격차를 보이고 있는 LG전자와 팬택계열 간 2위 다툼이 본격화하면서, 팬택계열의 슬림슬라이드폰의 꾸준한 성장세가 주목받고 있다.

큐리텔의 슬림슬라이드폰(모델명 PT-K1500)이 2월 이후 하루 판매량이 2000대를 넘어섰다. PT-K1500은 지난해 9월 국내에서 가장 얇은 슬라이드폰으로 출시됐다. 최근 5파전으로 달아오르고 있는 슬림슬라이드폰 시대를 연 1세대 휴대폰이다.

현재 KTF가 판매하는 슬림슬라이드 판매 모델 중 60%를 차지하며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루 판매량 2000대는 KTF 최상위 판매 기록으로, 4개월 만에 총18만여 대가 판매돼 스테디셀러폰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PT-K1500이 이러한 판매기록을 세우게 된 데는 팬택중앙연구소와 품질연구소, 마케팅본부 등의 각고의 노력과 우여곡절이 있었다.

팬택은 모두 5개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다. 팬택 중앙연구소, 팬택앤큐리텔 중앙연구소, 국내사업 중앙연구소, 품질기술연구소, 생산기술연구소 등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중앙연구소는 여의도 신송센타빌딩에 자리 잡고 있으며, 품질연구소는 최근 서울 충정로에서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에 위치한 김포공장으로 이전중이다. 연구 인력만도 2300여 명에 이르며, 지난해 R&D 부문 투자액은 3200억원에 달한다.

김상언(41) 팬택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PT-K1500 모델에 대해서는 아직 미련이 많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두께를 더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휴대폰은 상품기획부서나 디자인부서, 연구소 등에서 제안되는데 이 모델은 휴대폰 케이스를 연구하던 김 연구원의 부서에서 선행 연구방식으로 제안된 것이다.

“당시 휴대폰 제조업체에서 슬림폰이 이슈였어요. 이미 폴더형 제품은 나와 있었고, 곧 다른 기업도 제품 출시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많이 돌았죠. 그래서 폴더형이 아닌 슬라이드 방식의 슬림폰을 연구하겠다고 제안했어요.”

지난해 3월 김 연구원은 처음에는 16mm정도 두께의 슬라이드폰을 빠르면 10개월 정도 걸려 연구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 제안에 대한 내·외부의 반응이 너무 좋은 게 탈이었다. 경영진에서 내려온 방침은 ‘최대한 빨리 제품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 제안을 들은 KTF가 빨리 개발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휴대폰 제조업체로서는 이동통신 서비스업체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김 연구원은 두께를 줄이기 위한 고민에 들어갔다. 아직 슬림폰이 대중화된 게 아니어서 두께를 줄일 수 있는 부품을 확보하거나 제조기술 개발이 필요했다. 또 무엇보다 빨리 제품을 내놔야 했다. 김 연구원은 이 모델이야말로 팬택의 스피드 경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통의 휴대폰이 10개월에서 1년에 걸쳐 개발되지만 이 모델은 단 4개월여 만에 나왔다. 개발기간을 거의 절반 이상 줄인 것이다. 이는 팬택의 캐치프레이즈에서도 드러난다. ‘Faster & Better’ 경쟁업체보다 빠르고 더 나은 휴대폰을 개발하겠다는 것이 팬택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빨리해야 했지만 품질은 확보해야 했어요. 그래서 신소재를 많이 채택했고, 부품을 겹쳐 조립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죠. 그 당시로서는 슬라이드 방식으로서는 최대한 얇은 제품을 가장 먼저 만들었어요. 몸으로 때운 도전이었어요.”

하지만 금형이 완성된 지 두 달 후 슬라이드 연결부위인 힌지(hinge)라는 부품이 더 얇게 개발되면서 아쉬움이 남게 됐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더 있었다면 두께를 1.2mm는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 김 연구원의 말이다.

당시로서는 가장 얇은 슬라이드방식의 휴대폰을 만들었지만 이 모델의 성공여부는 개발 당시만 해도 미지수였다. 연구소와 디자인팀 등을 오가며 제품을 개발하면서 목업(Mockup: 케이스만 있는 작동 안 되는 휴대폰 모델)으로 실시한 소비자 반응조사가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김용미(33) 상품기획팀 과장은 “슬림폰이 생소했던 때라 오히려 너무 작아서 불편하다는 반응들이 많았어요. 제품출시 후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죠. 하지만 인기를 끌고 있다니 기뻐요”라고 했다.

상품기획팀에서는 국내외 시장 트렌드를 조사해 새로운 모델을 기획한다. 단지 트렌드를 통한 제품 기획을 넘어 필요한 부품도 조사하고, 재료비도 계산해 판매 가격까지 어느 정도 결정하기도 한다.

1년에 1개 모델은 실패하기도

김 과장은 연구소와 디자인, 마케팅팀을 오가며 기획단계 모델의 실현여부를 결정하고 여기에다 이동통신 사업자들과의 이견을 조정하기 때문에 굉장히 고생했다는 기억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간혹 개발단계에서 출시도 되기도 전에 실패한 모델이 나오기도 한다. 1년에 130여 개 개발되는 모델 중 1개 정도다. 통신 사업자가 계획한 서비스 개발이 늦춰지거나 아예 없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트렌드가 갑자기 바뀐 경우, 중도에서 포기하기도 한다.

“연구원들은 휴대폰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도중에 중단되는 경우를 가장 안타깝게 생각해요. 요즘에는 정확한 트렌트 예측을 위해 전문기관이나 통신서비스 회사들의 로드맵을 참조하고 있어요.”(김용미 과장)휴대폰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로설계다. 회로에 있어 메인칩은 퀄컴 등 외산이 많지만, LCD 등의 기타 부품에 대해서는 국산화가 많이 진전된 편이다. 하드웨어 부문을 담당하는 연구1실은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회로를 들여다보며 납땜하는 모습으로 분주하다.

회로설계·안테나성능·송수신부품 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는 서석장(39) 책임연구원은 슬림슬라이드폰을 개발하던 4개월여 동안 밤 12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슬림폰 개발은 휴대폰 3사가 가장 먼저 출시하기 위해 경쟁이 심했어요. 시장에 빨리 내놓는 게 관건이었거든요. 평상시보다 빨리 개발해야 했기 때문에 고생이 많았죠.”

하드웨어 분야를 담당하는 10명의 연구원들은 직접 손으로 회로도를 만들고 조립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서 연구원도 수작업으로 하루에 20대 정도의 휴대폰을 만들 수 있다며 웃었다.

요즘 소비자들의 휴대폰 선택기준은 무엇보다 디자인. 기능면에서 휴대폰 제조사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소에서도 디자인팀이 핵심역량이다. 연구원들은 대부분의 연구실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지만 디자인팀의 연구실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 디자이너 등 관련 연구원 외에는 출입이 제한돼 있다. 디자인팀의 사무실 한 칸은 전 세계에서 나온 수많은 휴대폰이 전시돼 있었다.

이찬용(41) 디자인본부 수석연구원은 트렌드를 쫓아 제품 디자인을 하기보다는 이제는 디자인을 통해 트렌드를 만드는 시대라고 말했다. 요즘은 외부의 디자인연구소도 활용하면서 기술과 기능적인 요건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에서 낮은 비용으로 만든 제품들이 쏟아지다 보니 예전보다 수익성 문제가 더욱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경쟁력이 됐어요. 하지만 휴대폰도 패션화하면서 디자인 트렌드가 굉장히 짧아졌어요. 요즘 새로운 디자인 개발을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아이디어를 객관화하고 다양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 연구원은 100장의 디자인 중에 맘에 드는 게 한 장도 없을 때도 있지만 2~3장만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휴대폰 디자인은 세계적입니다.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 비해 나았으면 나았지 전혀 뒤떨어지지 않아요. 하지만 디자이너의 이름을 걸고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디자인 스타’가 없다는 점은 아쉬워요.”

이 팀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디자인은 프로젝트 명 ‘드라코’로 개발된 팬택 G-6200모델. 러시아와 유럽을 겨냥한 이 모델은 측면라인의 군더더기 없는 곡선이 무엇보다 특징이다. 이 디자인은 세계적인 권위의 디자인부문상인 ‘iF 디자인 2006’상을 받기도 했다.

김포공장으로 품질연구소 이전

연구소에서 개발된 휴대폰은 김포공장 등지에서 양산된다. 팬택은 중국, 브라질, 멕시코 등에 공장을 두고 있다. 이중에서 김포공장은 800여 명의 종업원들이 월 60만 대, 연간 720만 대의 휴대폰을 생산하고 있다.

생산라인에는 정전기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방문자들은 청결복을 입어야 했다. 마침 교대시간이라 한 무리의 직원들은 라인에서 나오고 있었고, 다른 한 그룹은 라인별로 모여 “관리사고 근절”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생산준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생산단계는 크게 휴대폰의 핵심부품인 PCB 부품을 생산하고 검사는 SMT라인과 조립라인으로 구성돼 있다.

거의 모든 공정은 자동화돼있다. 군데군데 육안 검사 공정에는 주기판을 이리 저리 돌려보며 혹시 불량이 없는지 검사하는 모습만 보였다.

SMT라인 한쪽에는 생산 프로세스의 2단계인 조립라인이 있다. 주기판과 각종 부품을 조립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메인 조립라인과 기본적인 기능시험을 통해 조립품질을 확인하는 공정인 조립품질시험라인이 있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르면서 하나하나의 부품들이 모여 서서히 휴대폰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반자동으로 조립되기도 했지만 생산직원들의 손을 거쳐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단 조립된 휴대폰은 전원, 각종 키, 스피커, 진동 등의 기능시험과 무선 송수신 통화시험, 배터리를 장착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기능시험 등 메인시험을 거쳐 휴대폰의 주민등록번호인 ESN(Electrical Serial Number)이 입력된다. 조립라인의 예종원씨(31)는 “생산직원 대부분이 얼리 어댑터에요. 고객입장에서 미리 사용해보고 장단점을 얘기해주죠. 이런 제안들이 연구소를 통해 개선되면 상금을 받기도 해요”라고 했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들은 한 모델당 30대 정도가 품질 테스트를 받게 된다. 팬택의 김포공장의 지하에는 충정로에 있던 품질기술연구소가 3월 말부터 이전 중이었다. 생산된 제품에 대한 품질검사를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이전이 마무리 되지 않아 일부 검사 분야는 한창 설치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양창승(38) 품질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휴대폰 개발에서부터 양산될 때 까지 모두 100여 가지의 품질검사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낙하나 온도시험 등 기본적인 시험에서부터 방사선시험까지 15일간에 걸쳐 100여 가지의 품질검사가 이뤄집니다. 소비자들의 손에 쥐어지는 휴대폰은 이런 모든 시험을 통과했다고 보면 됩니다.”

100여 가지 품질 검사 통과해야

한 모델당 30여 대가 검사를 받기 때문에 한 달에 검사를 마치고 폐기처분되는 휴대폰은 700~800대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가장 먼저 들른 품질검사 분야는 환경테스트 분야. ‘온도 70℃와 습도 90%’에서부터 ‘영하 40℃’, ‘영하 20℃와 60℃’를 반복하는 장비 등 수많은 장비 안에서 휴대폰이 동작하고 있었다. 비행기 등으로 운송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진동과 온도차를 고려한 검사장비도 눈에 띄었다. 검사장비 중에는 방사선 테스트 장비 등 2000만원에서 4억원에 달하는 장비도 있다는 것이 양 연구원의 설명이다.

S/W시험실·부품시험실·음향시험실 등을 거쳐 다다른 내구성시험실은 흡사 전쟁터와 같은 분위기다. 온통 버튼을 누르고, 폴더를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키버튼 누르기 10만회, 측면버트 누르기 15만회. 대부분의 휴대폰이 10만회 이상의 이런 저런 시험을 견뎌내고 있었다.

여성들이 화장품을 바른 후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밀가루 통에서 뒹구는 휴대폰에서,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깜빡하고 어딘가에 앉았을 때를 대비한 충격시험 등 다양한 휴대폰 사용에 대비한 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1.5m 높이에서의 낙하시험도 이뤄지고 있었다. 말이 낙하시험이지 휴대폰은 쇠로 만들어진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그래도 아무 이상 없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든 제품이 품질검사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다. 터치센서 시험이라고 적혀진 장비에서 검사를 받고 있는 휴대폰에서 하얀 분말이 일어나고 있었다. 반복되고 있는 시험을 견디다 못해 외관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험을 하고 있는 다른 휴대폰은 정상적이었다.

양창승 연구원은 다른 제품과 비교해 검사를 실시하고, 원인을 밝혀 불량을 판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불량으로 판정되면 어떤 생산 공정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파악해 재발을 방지하게 된다.

지난 3월29일로 설립 15주년을 맞은 팬택계열. 1991년 무선호출기 개발업체로 시작한 팬택계열은 15년간 연평균 67%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올해 매출 4조 8000억원, 휴대폰 2700만대 판매에 도전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향후 2년 이내에 ‘글로벌 top5 기업’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서겠다는 팬택은 제품 기술력 강화를 통해 본격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하느냐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중대 기로에 서 있으며 그 중심에는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