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월드컵에서 조직 변화라는 관점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는 팀은 독일 대표팀입니다. 유르겐 클린스만이라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감독이 무너진 독일 축구의 위상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클린스만은 특히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필요한 새로운 평가기준 제시, 과감한 외부 인력 및 젊은 인력 충원,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국’처럼 굴러가는 독일 축구협회를 개혁할 수 있을지, 그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 월드컵이 될 것입니다.

클린스만하면 마테우스와 함께 90년대 전후로 독일을 대표했던 공격수입니다. 우리나라 이영표 선수가 뛰는 영국의 토튼햄에서도 활약한 적이 있고요, 1990년에는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데 수훈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64년생으로 올해 42세입니다.

클린스만의 독일 축구 개혁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 축구계의 분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의 주간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의 축구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630만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독일 축구협회는 국가 속에 있는 또 다른 국가나 마찬가지다. 나름대로의 규율이 있고 이를 집행할 수단도 갖고 있다. 심지어는 정치 시스템보다 더 정치 시스템과 흡사한데 속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체적인 의회도 있고 21개 지역 대표가 3년에 한 번 총회를 갖는다. 역대 축구협회 대표의 재임기간은 교황과 비슷할 정도다.”

얼마나 독일 축구가 안정 지향적, 서열 중심적이었는가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나이는 서른 줄에 들어서야 가능하다는 얘기가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또 독일은 주기적으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더욱이 1990년 월드컵 우승 직후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독일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베켄바워는 “동독과의 통일로 독일 축구는 천하무적이 될 것”이라고 자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독일 축구는 2002년 월드컵에서 ‘정신력’으로 준우승한 것을 빼고는 유럽 축구의 변방으로 떨어지면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2004년 유럽선수권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예선에서 참패를 하는 등 성적이 형편없었고 축구도 창조적이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독일 축구의 가장 큰 특징은 프랑스와는 대조적으로 세계화에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티에르 앙리, 알제리 출신으로 베르베르족인 지네딘 지단 등을 과감하게 자국의 국가대표로 발탁해 1998년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차지한 프랑스와는 대조적입니다. 2006년 월드컵과 관련 폴란드 출신인 루카스 포돌스키의 국가대표 발탁에 독일 축구계에는 비판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독일 대표팀은 유럽팀답지 않게 이상하리만치 ‘정신력’을 강조하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흔히 독일의 축구를 뻥(미드필드 또는 측면에서 한 번에 센터링을 올리고, 키 큰 공격수의 헤딩으로 골을 결정짓는)축구라고 합니다. 세밀한 패스와 스피드로 승부를 내는 현대 축구의 흐름과는 벗어나 있지요. 그나마 그런 축구 패턴을 갖고도 월드컵에서 이따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정신력’의 승리라고 독일 축구인들은 자부했습니다. 또한 스타플레이어 출신 간의 파벌도 심해 1990년대 클린스만과 함께 축구를 했던 마테우스는 시간만 나면 클린스만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04년 유럽선수권에서 독일이 1승도 못하고 예선 탈락 참패를 하자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클린스만이 결국 독일 대표팀을 맡게 됩니다.

클린스만이 취한 정책은 일단 기존의 독일 축구의 관습을 근본적으로 바꿔 현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정신력’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체력’을 강조하는 쪽을 방향을 틀었습니다. 기초체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축구팀의 체력담당 코치로 미국인을 골라 독일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체력검정표를 받으라고 해서 독일 언론은 물론 2006년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인 ‘카이저’ 베켄바워에게도 매서운 비판을 받았습니다. 혈액검사로 체력검사를 하는 방식도 도입했습니다. 이런 결정에 나이 많은 선수들은 기겁을 하고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름대로 측정하기 어려운 ‘정신력’이라는 기준을 대신하는 ‘체력’이라는 확실한 목표치를 제시했습니다. 기업으로 치면 인사고과의 평정기준이나 채용기준을 확 바꿔버린 것입니다.

클린스만의 개혁, 성공할까

또한 그는 ‘게르만 정신’에 충실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흑인인 겔라트 아자모아를 대표팀에 승선시킨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포돌스키나 클로제처럼 폴란드 피가 흐르는 선수들도 능력에 따라 기용을 했습니다. 능력이 있는 외부 인력을 과감하게 발탁해 조직의 경쟁력을 높인 것입니다. 그는 또한 신진기예를 과감하게 기용했습니다. 독일 축구계는 베켄바워 앞에 붙은 ‘카이저’라는 별칭에서 보듯 서열을 중요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클린스만은 과감하게 털어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월드컵의 골든슈(최우수선수상)를 받은 올리버 칸을 과감하게 밀어낸 것입니다. 심지어는 베켄바워의 친구이자 올리버 칸의 후원자였던 골키퍼 코치 제프 마이어도 과감하게 사퇴를 시켰습니다. 대신 이번 월드컵 1호 골의 주인공인 필리프 람 등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 선수들은 등용했습니다. 서른 줄에 들어서야 대표팀이 될 수 있었던 분위기를 일신하고 젊은 선수들의 체력과 스피드를 중시했습니다. 이들은 ‘클린스만’ 스타일로 공격적이고 스피드를 중심으로 하는 데 뛰어난 선수들이었습니다. 대신 경험 부족에서 오는 수비 실수가 수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람은 첫 골을 기록 한 뒤에도 독일 언론으로부터 수비나 신경을 쓰라고 호된 비판을 받았습니다. 외부 인력에 대한 개방과 순수혈통주의의 포기로 경쟁력을 높인 것입니다.

그는 또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선수들과 이메일로 대화를 주고받고, 화상채팅을 하는가 하면 독일로 집을 옮기라는 독일 축구계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독일 축구계가 발칵 뒤집힌 적도 있습니다. 올해 초 이태리에 4대1로 패한 뒤 캘리포니아 집에 돌아가자 선수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화상채팅으로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클린스만이 취한 정책을 보면 고여 있는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새롭게 도입하는 방식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새롭고 명확한 기준의 제공, 외부 인력의 과감한 수혈과 능력 있고 결단이 빠른 젊은 세력의 기용,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 이런 방법론은 변화를 추구하는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취해야할 3대 과제입니다.

<뉴스위크>는 월드컵을 조망한 5월17일자 기사에서 독일의 이런 시도는 오래전에 했어야할 개혁이며 월드컵 때문에 흐지부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도 월드컵 관련 기사에서 결국 독일 내부의 수많은 비판을 뒤로하고 클린스만이 독일 축구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성공 여부는 이번 월드컵 결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개혁의 성공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과감성과 노력은 돋보이지만 주위의 장벽을 뚫는 데는 운도 따라야하기 때문입니다. 공이 둥글듯이 개혁 성공의 가능성도 둥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