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벌 기업 간의 인수·합병(M&A) 바람이 불고 있다. 철강, 통신을 필두로 제약, 금융 광산, 화학, 미디어 등 전 업종이 대상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세계적인 기업들 간에 자본 제휴를 통한 또 다른 형태의 짝짓기가 시도되면서 업계 전체가 들썩이는 형국이다. <CNN머니>에 따르면 이미 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성사된 M&A 규모만도 1조7500억달러. 세계 곳곳에서 불어 닥치는 ‘M&A’ 열풍으로 올해 글로벌 M&A 규모는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세계적인 M&A 전문 연구기관인 톰슨 파이낸셜에 따르면 올해 M&A 규모는 총 3조5000억달러에 이르러 종전의 최고 기록인 2000년의 3조4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월26일을 전후해 경제 지도가 바뀜을 알리는 초대형 M&A 뉴스가 연이어 세계 경제계를 강타했다. 지각변동의 첫 진원지는 철강 업종이었다. 세계 1위의 철강업체인 미탈스틸이 업계 2위 업체인 아르셀로를 인수한 것. 인수금액만 269억유로(약32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M&A가 성사된 것이다. 이로써 종업원 32만 명에 연산 1억1600만 톤 규모의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 미탈’이 새롭게 탄생하게 됐다. 아르셀로 미탈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0%에 달하며 경쟁업체인 신일본제철(연산3240만 톤)과 포스코(3140만 톤)보다 3배 이상 큰 규모다.

합병을 주도한 미탈스틸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본사를 두고 있다. 대주주는 인도가 낳은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인인 락시미 미탈 회장이다. 반면에 아르셀로는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 프랑스, 룩셈부르크, 스페인 지분이 합쳐진 다국적 철강회사다. 지난 1월 미탈 회장이 아르셀로 인수에 관심을 보이자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정치인들이 M&A를 막아보겠다고 대거 나섰으나 결국 미탈의 공세로부터 아르셀로를 지켜내는데 실패했다.

전 업종으로 번져나가는 M&A 열풍

철강업계에 이어 광산업계에도 초대형 M&A 소식이 날아들었다. 세계 3위의 구리업체인 미국의 펠프스다지가 캐나다의 니켈업체인 인코-팔콘브리지를 400억달러에 인수키로 했다는 것. 이번 인수 금액은 지난 2001년 BHP가 빌리톤을 인수할 때의 금액인 132억달러를 압도하는 액수다. 이번 거래를 통해 펠프스다지는 구리, 니켈, 몰리브덴 등 핵심 광물의 생산·공급을 좌지우지할 큰 손으로 거듭났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40개국에 4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북미 최대의 광산업체가 됐다. 이로써 펠프스다지는 BHP빌리톤, 리오틴토, 앵글로 아메리칸 등 세계 유수의 광산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마지막 결정타는 미국의 제약업체인 존슨앤존슨이 화이자의 소비자 건강 사업 부문을 166억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화이자 역시 세계적인 제약회사. 그 중에서도 소비자 사업부는 감기약 수다페드, 밴다드릴, 구강청정제 리스테린, 제산제 롤에이즈, 스킨로션 루브리덤 등 다양한 제품 라인을 자랑하는 알짜 사업부로 지난해에만 38억8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번 거래는 화이자의 ‘선택과 집중’전략에서 비롯됐다. 지난 2월을 전후해 화이자는 수익성이 더 높은 처방약 사업부에 집중하기 위해 소비자 사업부에 대한 분사나 매각 방안 등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결국 존슨앤존슨이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경쟁업체를 누르고 화이자의 소비자 사업부 인수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번 M&A를 통해 존슨앤존슨은 소비자 관련 제품의 라인업을 대폭 강화, 이 부문의 연간 매출액이 전년대비 30% 이상 늘어난 1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대형 M&A의 사례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미국 1위의 통신업체인 AT&T가 3위 통신사인 벨사우스를 670억달러(약 64조원)에 인수했다. 매출액 1200억달러의 거대 통신업체가 탄생한 것이다. AT&T는 이번 합병으로 7000만 명의 국내 전화 가입자와 1000만 명에 이르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가입자를 확보했다. 이로써 2004년부터 시작된 미국 통신시장의 재편 바람이 결국 AT&T와 버라이존이라는 두 거인의 정면대결로 정리됐다. AT&T와 벨사우스 결합의 파장은 전 세계 통신시장으로 퍼져나갔다.

일본에서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초고속인터넷 1위업체인 소프트뱅크가 일본 이동통신시장 3위 업체인 보다폰재팬을 154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일본 M&A 사상 최대 금액이다. 이로써 소프트뱅크는 보다폰재팬 지분의 97.7%를 확보하는 동시에 1500만 가입자를 넘겨받아 본격적인 휴대폰 서비스에 들어갔다. 유럽에서도 프랑스텔레콤과 도이치텔레콤을 중심으로 M&A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4위의 은행인 와코비아가 골든 웨스트 파이낸셜을 250억달러에 인수했다.

M&A 열풍은 자동차 분야에도 몰아닥쳤다. 세계 4위의 자동차그룹인 르노·닛산그룹이 세계 1위인 GM(제너럴모터스)의 지분 20%를 인수하는 자본 제휴를 시도하겠다고 나선 것. 이번 자본 제휴는 GM의 대주주인 투자회사 트라신다의 대표 커크 커코리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GM지분의 9.9%를 보유하고 있는 커코리언은 최근 GM의 릭 왜고너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 르노·닛산과 제휴 관계를 맺을 것을 촉구했다. 커코리언은 이미 지난달 르노·닛산의 카를로스 곤 회장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한 식당에서 저녁 모임을 갖고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는 전언. 커코리언은 올해 초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개최된 모터쇼 기간 동안 “GM의 개혁은 멀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닛산의 카를로스 곤처럼 강력한 구조조정을 벌여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닛산을 파업에서 건져낸 곤의 능력을 인정해왔다.

만약 이 세 회사의 자본 제휴가 성공하면 연간 1451만 대를 생산하는 초대형 자동차그룹이 탄생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GM, 르노, 닛산이 각각 미국, 유럽, 아시아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업체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결합이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새로운 합종연횡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전 세계 대기업들이 앞 다투어 덩치 키우기에 나서는 건 생존을 위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부쩍 좋아진 기업들의 현금 유동성과 원자재 가격의 강세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우선 세계 1, 2위 철강업체인 미탈과 아르셀로의 합병에 대해 업계는 원료를 공급하는 세계 철광석업계에 대한 철강업계의 가격 협상력(buying power)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탈의 경쟁사인 한·중·일 3국의 대형 철강사들마저 이번 합병을 불가피한 추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 동안 원료를 공급하는 철광석업계와 철강의 주요 수요처인 자동차업계 등이 모두 대형화, 통합화를 이뤄낸 반면, 중간에 끼인 철강업계만 지역, 국가별로 개별 업체들이 할거하는 구도가 계속돼 왔다는 것이다.

특히 원료 제공처인 철광석업계는 브라질의 CVRD, 호주의 리오틴토·BHP빌리튼 등 ‘빅3’가 전 세계 공급량의 72% (2005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는 과점 체제다. 이들이 지난해 철광석 가격을 71.9%나 인상할 수 있었던 것도 과점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반면 철강업계는 미탈, 아르셀로, 신일본제철, 포스코, JFE스틸 등 빅5의 시장점유율을 합쳐봐야 18%에 불과하다. 결국 철강업계는 ‘아르셀로미탈’의 출범으로 세계 철강업계의 가격 협상력이 높아지면서 철강 가격이 안정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몇몇 언론들은 이번 합병을 계기로 M&A가 가속화돼 5년 내에 세계 철강 메이저들의 시장점유율이 30~40%까지 올라갈 것이란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통신업계의 M&A 바람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차세대에 살아남으려면 융합(컨버전스)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란 지적. 정승교 우리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NTT, 도이치텔레콤, KT 등 세계 주요 통신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순익 감소라는 고통을 겪었다”며 “따라서 대형 통신사들은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과 무선(이동통신), 방송(케이블방송)과 통신을 합쳐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융합 서비스가 대안이란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의 자본 제휴 움직임도 ‘생존’이라는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우선 GM 입장에서는 현재 처한 재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르노·닛산과의 자본 제휴가 성사되면 기술·부품, 공급·판매망의 공유를 통한 원가 절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미국, 유럽, 아시아 시장의 특성에 맞는 차량을 공동 개발해 동시에 판매할 수 있다. 개발 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개발 기간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일거양득이다.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 러시아, 브라질에서도 ‘3각 동맹’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시장의 경우 GM은 1위업체인 상하이자동차그룹과 자본 제휴를 맺고 있다. 르노·닛산과 제휴에 성공하면 베이징현대, 광저우도요타 등 경쟁자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3각 동맹이 맺어지면 세계 최강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일본 도요타와 일전을 겨룰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현재 도요타는 미국 시장에서 GM과 포드가 다수의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을 해고 하는 동안 빠르게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올해 전 세계에서 월 평균 13억달러를 쏟아 부으면서 연말까지 6개 공장을 미 텍사스, 러시아, 캐나다, 태국, 중국 등에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이미 다른 회사들을 압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기술은 물론이고 바이오엔진을 이용한 차량 개발에서도 도요타는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기다 도요타는 인도, 중국 등 신흥 개발국가를 겨냥한 저가 차량 생산 계획까지 발표하면서 전 방위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결국 3각 동맹은 이와 같은 도요타의 진군을 가로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기업, 공룡기업 탄생으로 직격탄

문제는 M&A를 통한 세계 기업 지도의 변화가 한국 기업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최근 M&A을 통해 세계 최대 철강업체로 거듭난 미탈이다. 락시미 미탈 미탈스틸 회장은 최근 인도 오리사주 주도(州都)인 부바네스와르에서 나빈 패트나익 주 총리와 만난 뒤 오리사주에 연산 12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 최대 철강업체인 미탈이 4위 업체인 한국의 포스코와 철강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인도 시장을 놓고 ‘일전’을 벌이겠다는 야심을 들어낸 것이다.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철강시장은 일본과 한국 등 자동차 강국들이 포진한 데다, 중국의 철강 수요마저 매년 급증세여서 가장 뜨거운 신흥 철강시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미탈 회장은 “세계 최대 철강회사로 남기 위해서는 인도와 중국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인도 출신인 미탈 회장은 그동안 유럽을 무대로 주로 활동해왔고, 인도에는 고작 연간 200만 톤 규모의 제철소 한 곳 정도를 운영하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특히 오리사주는 포스코가 지난해 6월 주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첫 종합제철소를 짓기로 한 곳이다. 미탈은 포스코 제철소 바로 이웃에 연간 생산량까지 동일한 제철소를 건설하며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국내외 전문가들도 미탈의 인도 프로젝트를 포스코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진단했다. 미탈은 인도의 경우 향후 10년간 철강 수요 증가율을 연평균 7.3%로 예상하는 등 아시아 지역 시장의 철강 소비량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황금시장을 포스코가 선점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발표했다는 것. 포스코 관계자들은 “인도 등 아시아 시장은 두 메이저의 생산량을 감당할 정도로 충분히 커질 것”이라며 “미탈과 선의의 경쟁을 펼쳐나가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속내는 편치 않은 실정이다.

포스코는 미탈의 자본 공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 이스팟·LNM홀딩스 등이 합병해 탄생한 미탈스틸은 무서운 속도로 M&A을 진행 중이다. 최근까지 미국의 ISG, 캐나다의 스텔코, 우크라이나의 크리보리스틸, 중국의 후난발린스틸 등이 미탈의 손에 들어갔다. 아르셀로에서 M&A 행진을 멈출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특히 연간 생산량 3140만 톤에 달하는 포스코는 높은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 때문에 군침 도는 먹잇감일 수밖에 없다. 포스코도 이미 미탈에 맞설 준비를 착착 진행 중이다. 연초부터 지분 전쟁에 대비해 우호 지분을 33% 대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에 나선 상태고, 2011년까지 인도 일관제철소 준공, 중국 철강업체 지분 확보 등을 통해 국내외 조강 생산량을 5000만 톤 규모로 끌어올리는 등 대형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생산량 확대와 고급강 생산을 통해 미탈이 인수하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덩치와 주가를 끌어올릴 계획”이라며 “필요에 따라 M&A 주체로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하기는 국내 대표 자동차회사인 현대·기아차그룹도 마찬가지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GM·르노·닛산그룹이 탄생하면 미국, 유럽, 중국 등 해외 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GM·르노·닛산의 3각동맹이 정조준한 기업이 일본의 도요타라지만 그 여파가 현대차에까지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 시장에서의 성장세가 둔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내에서도 현대·기아차는 GM 계열의 GM대우, 르노 계열의 르노삼성은 물론이고 GM과 제휴 관계에 있는 상하이차 계열의 쌍용차의 협공(協攻)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 75%에 달하는 현대·기아차그룹의 국내 시장점유율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현대·기아차가 이처럼 국내 시장에서 사면초가에 처하게 된 건 요동치는 자동차업계의 재편바람 때문이다. 정부가 대우차, 삼성차, 쌍용차를 매각할 시점에는 이들을 인수한 GM·르노·상하이차가 제휴를 통해 연합할 것이란 시나리오는 차라리 소설에 가까웠다. 하지만 불과 3~4년 사이에 세계 시장이 급변하면서 현대·기아차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특히 현대차는 과거 다임러 크라이슬러와의 자본 제휴 관계를 청산하는 바람에 이번 GM·르노·닛산의 제휴로 더 큰 충격을 받게 됐다. 전문가들은 생존을 위해 현대·기아차그룹도 새 글로벌 자동차 회사와 제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세계적인 전략컨설팅회사인 맥킨지의 최정규 디렉터는 “전 세계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더욱 M&A에 매달리게 될 것이며, 이 같은 현상은 자동차, 철강 등 몇몇 업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며 “결국 우리 기업도 M&A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며 정부도 공정거래법을 미래지향적으로 개정해 기업에게 활로를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동훈 조선일보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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