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났다. 전 세계 38억 명에 이르는 시청자들이 경기 결과에 울고 웃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국 대표팀의 승리와 패배 속에서 수많은 화젯거리를 뿜어냈다. 그 중 하나가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등 스포츠용품업체들 간의 ‘유니폼 전쟁’이다.
탈리아의 우승에 자국 국민들이 환호했을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 만세 소리가 들렸다. 이탈리아의 유니폼을 후원한 푸마 관계자들의 소리다.

사실 월드컵 초기만 해도 푸마는 부침이 심했다. 푸마가 이번 월드컵에서 유니폼을 후원한 팀은 모두 12개 국가. 앙골라, 가나, 코트디부아르, 토고, 튀니지, 이란, 사우디, 체코, 이탈리아, 폴란드, 스위스, 파라과이 등이 푸마의 유니폼을 입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등 세계 3대 스포츠 메이커 중 ‘물량’에선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하지만 푸마가 후원한 국가대표팀 중 유럽 지역의 팀은 폴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등 불과 세 팀. 중남미 지역도 파라과이 한 팀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팀이었다. 유럽 지역 팀 중에서도 ‘강팀’이라고 할 만한 팀은 이탈리아뿐이었다. 그나마 한국에선 이탈리아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월드컵 개막 초기 한국 푸마 관계자도 “솔직히 영국, 프랑스 등 인기팀을 후원하는 타 회사에 비해 우리가 후원하는 팀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한국에서는 푸마가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안정환 등 국내 선수 위주로 마케팅을 펼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과 토고의 경기를 앞둔 지난 6월13일을 즈음해 인터넷과 신문 등에선 ‘괴소문’이 퍼졌다. 바로 ‘푸마=패배, 나이키=승리’라는 게임의 방정식이었다. 실제 13일까지 나이키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른 다섯 나라 중 미국을 제외한 포르투갈, 멕시코, 네덜란드, 호주가 각각 승리해 5전4승1패의 승률을 보였다. 하지만 푸마 유니폼을 입은 여섯 나라 중 미국전에서 승리를 챙긴 체코를 제외한 앙골라, 폴란드, 코트디부아르, 이란, 파라과이 등이 모두 지는 바람에 6전1승5패라는 초라한 성적이 전부였다. 뿐만 아니라 6월11일엔 한 방송사의 ‘푸마’ 대신 ‘파마’라는 ‘짝퉁’ 메이커의 로고를 뉴스에 내보내는 실수로 푸마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실 푸마를 입은 대표팀들은 최근 10여 년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다.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선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은 개최국 프랑스가 나이키의 브라질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나이키를 입은 브라질이 아디다스의 독일을 제압하고 우승했다. 특히 2002년엔 4강에 오른 한국과 브라질, 독일과 터키가 각각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았던 반면 푸마는 4강 문턱에도 오르지 못했다.

2002년 월드컵의 연장선상에서였을까. 나이키를 입은 한국이 푸마를 입은 토고를 이기고 폴란드와 사우디까지 연이어 제패하면서 인터넷에선 ‘푸마의 저주’라는 이야기마저 떠돌았다.

흥미로운 것은 ‘푸마의 저주’가 그 유명한 ‘펠레의 저주’에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푸마는 197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펠레가 경기 시작 전 푸마 축구화 끈을 고쳐 매는 장면이 클로즈업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펠레가 지목한 팀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처럼, 펠레가 신던 푸마가 후원한 팀이 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마가 후원한 12개 팀 중 16강에 진출한 팀은 불과 3팀. 강력한 우승 후보 체코가 예선 탈락한 데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가나, 스위스 등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위스는 또 여러 경기를 통해 판정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16강전을 거쳐 8강까지만 해도 이처럼 푸마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달랑 이탈리아 한 팀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4강전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디다스가 독일과 프랑스를, 나이키와 푸마가 각각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1개 팀을 진출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전은 영원한 맞수 아디다스와 푸마가 이들 국가대표팀을 후원하면서 한층 관심을 집중시켰다.

<파이낸셜 타임즈(FT)>는 “경제성에는 푸마가 앞선다. 이탈리아를 제외한곤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 하위 팀을 선택해서 비용 대비 효과를 크게 누리고 있다. 이로 인해 푸마의 비용 대비 수익은 아디다스보다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푸마가 아프리카 국가를 후원한 것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염두엔 장기투자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FT>의 이 같은 해석과는 달리 푸마의 이탈리아는 아디다스의 프랑스를 꺾고 우승하기에 이른다.

어찌 보면 푸마로선 월드컵 중반 나돌았던 ‘푸마 저주설’이 억울하기도 하다. 특히 이변이 적었던 이번 월드컵에서 푸마가 후원했던 약팀들이 강팀들에게 패한 건 당연했다. 용품업체 마케팅 관계자들은 “일반인들에겐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업계에선 이런 이슈들 때문에 애가 탄다”고 말했다. 월드컵이 스포츠용품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크레디트 스위스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월드컵의 시장규모는 32억파운드(한화 약5조6000억원)로 나이키와 푸마, 아디다스(리복 포함)가 거둔 전체 매출의 14%에 이르는 규모다. 또 월드컵이 열린 올해 상반기 동안 축구용품 매출은 12억유로(약 1조4000억원)를 기록해 지난해에 비해 30%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월드컵이 끝난 지금 각 용품업체의 ‘유니폼 전쟁’에서 아디다스와 푸마는 웃었고, 나이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푸마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매출액이 40%가량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치러진 64경기 가운데 36경기에서 적어도 한 개 국가대표팀이 푸마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한편 아디다스도 후원 6개 팀 중 절반인 독일, 아르헨티나, 프랑스 3개 팀이 8강행 티켓을 획득, 매출 급상승 효과를 얻었다. 독일 대표팀 유니폼 150만 장을 포함한 총 300만 장의 유니폼을 판매했다.

반면 8개 팀을 후원한 나이키는 브라질과 포르투갈만이 8강에 합류했다. 강팀들을 후원하며 결승전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던 나이키에게 2006 독일 월드컵의 결승전은 남의 집 잔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