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균 10% 이상 성장하는 MP3플레이어(MP3P)시장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지난해부터. 그동안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레인콤마저도 지난해에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변신을 선언하고 MP3P에서 DMB, PMP와 같은 멀티미디어기기로 승부수를 던진 레인콤이 다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을까.

때 국내 MP3P시장의 50%를 장악했던 레인콤. MP3P 하나만으로 2004년 매출 4540억원을 올렸다. 제품이 단순해 언젠가는 곤경에 빠질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위기는 예상보다 빨리 닥쳤다.

글로벌 기업인 애플의 공세가 시작된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수익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도 물밀듯 들어왔다. 해외에서는 애플에 대항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마케팅에 총력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역부족인 것을 실감하고 있다.

레인콤의 지난해 매출은 4393억원. 하지만 순이익에서는 35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 실적도 신통찮다. 매출 378억원에 187억원의 적자로 도무지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쌓여있는 재고를 털고 싶지만 (손해를 볼까봐) 일부러 안 팔고 있다”는 회사 관계자의 말이 레인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레인콤의 주가도 회사의 성쇠와 궤적을 같이 하고 있다. 레인콤은 2003년 12월 9만4000원으로 상장한 후 상승곡선을 그리며 벤처 신화의 대명사가 됐다. 한때 12만4500원까지 올랐던 레인콤 주가는 9만원 선에서 머물다 2004년 4월 잠시나마 10만원 선을 회복한 후 계속 하락해 지금은 6000원대 초반까지 주저앉았다.

단순히 주가로만 봤을 때 현재가 6000원은 역대 최고점 대비 5% 수준에 불과하다. 독창적인 디자인 등으로 MP3P시장을 석권했던 레인콤이지만 현재는 시장 축소와 대기업과의 과열경쟁 때문에 그야말로 초라한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동력을 찾아 변신 시도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레인콤이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이미 중소 경쟁사들은 재빨리 MP3P에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휴대용멀티미디어재생기(PMP) 등의 기능을 결합한 컨버전스 단말기를 내놓았다. 레인콤도 IT 분야에선 ‘졸면 죽는다’는 말이 정설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핵심 역량을 PMP, DMB 등 MP3P 이외의 제품군으로 집중시키면서 멀티미디어기기업체로 옷을 갈아입었다. 와이브로 단말기 사업에도 주력하면서 변신을 시작했다. 핵심 연구 인력도 와이브로 단말기 연구개발 분야로 집중 배치하면서 신사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변신에 따라 최근에 돌풍을 일으킨 것은 2.2인치 지상파 DMB TV인 ‘아이리버 포켓TV B10’이다. 일명 ‘꼬마 TV’로 불리기도 하는 아이리버 포켓TV B10은 그 동안 MP3P를 주력으로 했던 레인콤이 ‘탈(脫) MP3P’를 선언하면서 선보인 첫 디지털기기다. 이 제품은 지난 5월 중순 출시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1만 대 이상 판매되는 등 놀랄만한 반향을 일으켰다. 월드컵 특수를 타고 6월에만 10만 대 가량 팔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아이리버 포켓TV B10은 10만원대의 가격으로 가격에 대한 부담이 적은 데다 세련된 디자인, 깜찍한 사이즈, 우수한 성능 등 ‘3박자’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독일 월드컵 특수로 DMB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기존의 4인치급 PMP나 15인치급 PC와의 차별화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리버 포켓TV B10은 가로 7cm, 세로 5cm 정도의 앙증맞은 사이즈에 77g의 무게로 웬만한 휴대폰보다 가볍다. 손 안이나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크기여서 출퇴근 시간이나 외출할 때 자동차 및 지하철 안에서 간편하게 시청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수도권과 지방 일부 지역에서만 DMB 시청이 가능하지만 점차 권역이 확대되고 있다”며 “DMB 수요가 앞으로 폭발할 것으로 보여 시장 전망도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성장 동력 중 하나인 휴대인터넷단말기 사업에서도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향후 출시할 휴대인터넷단말기인 아이리버 윙(G10)이 남미 베네수엘라에 수출할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

레인콤은 베네수엘라 케이블TV(CATV) 업체인 옴니비전(Omnivision)사와 휴대인터넷 상용화 업무 제휴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지난 6월30일 체결했다.

MOU에 따르면 레인콤은 휴대인터넷단말기를 옴니비전에 공급하며, 제품 공급 이후 레인콤은 1년간 베네수엘라 지역 내 와이브로를 포함한 모바일 와이맥스 서비스와 관련한 제품을 옴니비전 측에 독점 공급하게 된다. 레인콤이 독점 공급키로 한 제품은 아이리버 윙(G10)과 같은 음악,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와 게임에 특화된 네트워크 단말기다.

옴니비전은 올해 말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와이브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며 2010년까지 베네수엘라 7개 대도시로 와이브로 상용 서비스를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기회를 통해 남미지역에서도 아이리버 브랜드 인지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리버 윙은 장소 및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게임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를 다운로드 혹은 스트리밍 받아 유비쿼터스 서비스로 즐길 수 있는 신개념의 3차원(3D) 멀티미디어 단말기다. 가령 야외에서 휴대인터넷 서비스를 받는 게임기 사용자와 실내에서 인터넷에 접속한 PC 사용자가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레인콤은 자동차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한 컨버전스 내비게이션 제품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내비게이션시장은 레인콤이 이전부터 주시하고 있었던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연내 출시를 목표로 음악 및 동영상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컨버전스 내비게이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제품은 아직 개발단계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양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7인치 LCD를 장착, 지상파DMB 수신, 멀티미디어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인콤은 MP3P 사업에서 축적한 노하우로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내비게이션 제품에 비해 멀티미디어 기능과 디자인 부문을 강화해 차별화 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기존 제품들이 사용자인터페이스(UI)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점을 보완해 UI 및 기기 안정성에 주력하고 있다.

‘MP3P’ 대신 새로운 옷인 ‘PMP’로 갈아입은 레인콤이 다시 한 번 대박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까. 이는 PMP가 MP3P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일단 DMB 서비스의 상용화 등이 촉매제로 꼽히면서 PMP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시장은 충분히 레인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얘기다.

변신에도 앞날은 불투명

기존 MP3P가 음악이라는 ‘특정의 기능’에 국한됐다면 PMP는 음악뿐만 아니라 내비게이션, 게임 및 교육콘텐츠 등 컨버전스 서비스와 결합돼 MP3P를 대체할 수 있는 장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MP3P도 이러한 여러 기능이 결합된 모델이 나오고 있지만 PMP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또 PMP를 MP3P와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PMP는 MP3P와는 또 다른 종류의 디지털기기로 인식하고 있는 젊은 구매층을 잡을 것이란 예상이다. 여기에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이미 MP3P를 통해 검증받은 디자인 등의 부문에서는 레인콤의 앞날이 밝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어 단숨에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레인콤은 전자사전시장에도 후발주자로 진출했지만 단숨에 3위로 올라선 바 있다.

여기에다 레인콤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멀티미디어 관련 기술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고, 디자인 부문 등에서 검증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중소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는 멀티미디어기기시장에서 상당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또 애플 및 중국 업체들과 경쟁을 통해 자생력을 길러왔고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들도 겪어봤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시장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어 치열한 MP3P시장에 비하면 멀티미디어기기시장 진입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업계 관계자도 “멀티미디어기기 분야에서 레인콤은 저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면서 “그들이 내놓을 제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한 번 성공가도를 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따지고 보면 국내에는 아직 디지털기기로 중견기업 굴레를 벗고 글로벌 기업이 된 사례가 거의 없다. 최근 무너진 중견 휴대폰 제조업체인 VK를 보면 또 이러한 명제는 더욱 확연해진다.

레인콤의 수익성이 극히 낮아진 것이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의 주요 요인이다. 최근 돌풍을 일으켰던 소형 DMB TV인 ‘아이리버 포켓TV B10’의 경우에도 아직까지 MP3P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월 10만 대 가량 팔리기는 했지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채 되지 못했다.

회사 관계자는 “MP3P의 비중을 줄이고 DMB TV 등의 판매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직 MP3P사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B10에 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중견 기업으로 떠오르는 시장에 너무 늦게 뛰어들다보니 아직까지 매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R&D 비용도 예상외로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치명타가 되고 있다. 마케팅 비용이 높은 구조에 가격 하락은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여파로 수익성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추진력을 가지기에는 여전히 한계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돈’만 된다면 뛰어드는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삼성, LG전자, SKC&C 등 대기업들이 조만간 내비게이션, PMP시장에 뛰어들 것이란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대기업들이 디지털기기로 제품 영역을 넓힐 경우 중소 벤처기업들이 살아남기가 만만찮다. 시장이 대기업 위주로 재편될 경우 자신들은 사업 터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실제 최근 삼성, LG, SK 등이 MP3P, PMP 등 그동안 중소기업들이 기반을 다져 온 분야에 뒤늦게 뛰어들어 시장을 휩쓰는 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디지털 컨버전스’(융·복합) 추세를 감안할 때 업종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칸막이는 이미 없어졌다.

특히 레인콤의 ‘텃밭’이던 MP3P시장에 삼성은 지난해 7월, LG는 올 5월 각각 뛰어들었다. 2001년 초와 지난해 초 각각 MP3P 사업을 접었던 삼성과 LG가 시장 재도전에 나선 것은 국내 MP3P 판매량이 연 200만 대를 돌파하며 ‘돈’이 된다고 느겼기 때문이다. 이후 삼성은 점유율 20%를 돌파하며 2위를 굳혔고, LG도 꾸준히 시장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다.

히트작 없으면 설 땅 없어

한때 국내 MP3P 2대 중 1대 이상을 팔았던 레인콤은 점유율이 30%로 뚝 떨어졌고, 여타 업체들도 출혈 경쟁에 따른 적자구조에 시달리고 있다. 대기업의 진출로 인한 가장 좋은 본보기를 레인콤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PMP시장에도 이미 SKC&C와 삼성이 뛰어들었고, LG도 진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기업의 시장 진입이 거의 가시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군소업체들도 잇따라 출사표를 던져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될 것으로 보여 중소기업이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제품 개발에는 많은 돈이 들어가지만 정작 히트작을 내지 못하면 그대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글로벌 업체가 고품질이나 저가 공세를 퍼붓는 상황이 되면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된다. 레인콤이 MP3P산업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재연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MP3P시장이 그랬듯이 PMP시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확보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레인콤이 CJ인터넷과의 제휴를 성사시키거나 최근 음원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콘텐츠 확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임, 음악, 동영상 등 15개 업체 등과 콘텐츠 제휴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레인콤에게 있어서는 어떤 콘텐츠를 확보하느냐가 향후 멀티미디어기기 업체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성공신화의 대명사로 불렸던 레인콤이 다시 한 번 예전의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