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문덕(56) 하이트맥주 회장의 주름이 조금 더 깊어질 것 같다. 진로 인수 후 참이슬의 ‘국민주’ 아성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일본 수출시장에서도 두산에 2년 연속 1위를 뺏긴 상태다. 하이트맥주의 간판 상품인 맥주시장 자체는 전년 대비 뒷걸음질중이다. ‘1(하이트)+1(진로)=3(시너지)’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3은커녕 2도 안됐다고 한숨이다.

'주류업계의 삼성’으로 불리던 하이트가 요즘 고민에 휩싸여있다. 진원지는 ‘참이슬’의 추락. 마지노선이라던 참이슬의 시장점유율(M/S) 50% 붕괴가 신호탄이다. 해외 수출 사업에서도 2년 연속 두산에 밀린 건 치욕에 가깝다. 이쯤 되자 증권가에선 ‘두꺼비가 하이트와 궁합이 안 맞나’라는 말로 수군거린다. 하이트가 맥주시장에서 처음 ‘M/S 60% 돌파’라는 희소식은 ‘참이슬의 굴욕’에 묻혀버린 상태다. 하이트의 고민은 크게 5가지다.

1. 참이슬 신화 내리막길

  지난 6월 한 달간 진로의 소주 판매량은 454만9586상자(알코올 21도, 1상자 360ml 30병). 이는 1년 전 판매량보다 7.9% 줄어든 수치로 시장점유율 기준 49.5%에 해당한다. 법정관리, 화의를 거치면서도 50% 이상 점유율을 지켜왔던 진로로선 ‘한방’ 크게 맞은 셈이다. 실제 진로가 50% 밑으로 추락한 건 화의상태였던 지난 2004년 5월 이후 2년 만에 처음이다.

반면 경쟁자 ‘처음처럼’을 내놓은 두산의 6월 점유율은 9.4%. 출시 직후인 2월 7.3%에서 3월 8.0%→4월 8.2%→5월 8.7%에 이어 6월엔 10% 벽에 도전하는 양상이다. 특히 서울 점유율(6월)은 17.7%에 이르면서 초반 ‘돌풍’이 이젠 ‘태풍급’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 사이 90%를 오르내리던 진로의 서울 점유율은 80% 초반까지 급추락 했다.

진로는 지방에서도 밀리고 있다. 진로와 두산을 제외한 지방 8사의 점유율은 올해 1월 39.7%에서 6월 41.1%로 상승 중이다. 한마디로 국민주 참이슬이 서울에선 두산에 치이고 지방에서는 지방 소주업체들에 밀려 협공을 당하는 형국인 셈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진로가 꺼낸 반전 카드는 ‘처음처럼’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신제품 출시. 처음처럼 히트 비결을 20.1도인 참이슬보다 처음처럼이 0.1도 낮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17일 진로가 선보인 ‘참이슬 후레쉬’는 20도 벽을 무너뜨린 19.8도짜리 소주다. 이미 하진홍 진로 사장이 전 직원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며 ‘순한 소주’ 경쟁에 맞불 작전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주류시장 전문가들은 “처음처럼 기세가 5개월 연속 상승 추세를 보여 ‘반짝’ 인기는 아닌 것 같다”며 “참이슬 후레쉬가 ‘처음처럼’을 잡는 ‘저격수’가 될지는 미지수”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로선 처음처럼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2.수출시장도 추락 중

  진로에 대한 두산의 반격은 내수뿐 아니라 수출시장에서도 병행 중이다. 대한주류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진로 참이슬의 수출량은 137만5000상자(알코올 25도, 1상자 700ml 12본). 이는 두산 경월의 156만6000상자보다 6.8% 포인트 뒤쳐진 실적이다.

지난해 연간 수출 물량에서도 두산 경월은 진로 참이슬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지난 1998년 일본 소주시장 장벽을 뚫고 현지 희석식 소주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진로로선 2년 연속 두산에 연패한 셈이다.

현 상태론 수출시장에서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한 진로는 최근 일본 현지법인인 진로재팬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하이트(진로) 측은 “진로가 장사 잘하던 시장에 두산이 일본의 거대 유통업체인 산토리를 끼고 들어온 데다, 시장가격보다 20% 싼 저가공세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두산 측은 “진로재팬을 매각하겠다는 건 진로도 현지 유통업체를 통한 판매를 하겠다는 뜻”이라며 반박한다.

시장에선 올 하반기 두산이 일본 시장에 ‘경월’에 이어 ‘처음처럼’을 진출시키면 가뜩이나 힘을 잃은 참이슬로선 힘겨운 싸움이 진행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과거 하이트에 밀려 OB맥주란 간판 브랜드까지 팔아치운 두산이 맥주에서 진 빚을 소주시장서 톡톡히 되갚고 있는 형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3.맥주시장은 마이너스로

  진로를 인수한 박문덕 회장 입장으로선 그나마 맥주의 선전이 위안거리다. 하이트가 국내 맥주시장서 사상 처음 60% 벽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올해 1~6월 하이트의 맥주 점유율은 60.9%에 달한다. 그러나 시장에선 이를 ‘빛바랜 선전’으로 표현한다. 맥주시장 자체가 전년 동기 대비 1.86% 하락했기 때문이다.

실제 점유율 상승에도 불구, 하이트 상반기 매출액은 4270억원으로 전년 동기 4217억원에 비해 1.25% 상승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하이트의 맥주 점유율은 1월 66.7%→3월 64.6%→5월 60.5%→6월 58.8%로 점차 하락 추세를 보여 올해 연간으로 치면 60%벽을 돌파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4.‘20년지기’ 칼스버그와의 이혼

  가뜩이나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하이트 집안에 칼스버그의 지분 매각은 괜한 오해까지 사고 있다. 지난 6월14일 하이트 2대 주주인 칼스버그가 252만3251주(13.1%)를 주당 8만8000원에 전량 매각해버린 것.

칼스버그가 소주 점유율 추락과 맥주시장 축소로 주가가 오를 전망이 없자 하이트 지분을 하루 빨리 처분했다는 게 오해의 핵심. 특히 칼스버그가 1월5일 227만6052주(11.9%)를 주당 14만158원에 매각한 것에 비하면 주당 5만2000원 이상 싸게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6개월 새 보유 지분 25%를 전량 매각한 까닭이 뭘까. 이에 대해 하이트 한 관계자는 “칼스버그는 벌써 20여 년 전 조선맥주(하이트 전신)와 기술제휴를 맺은 업체”라며 “1999년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하이트에 투자한 지분을 차익실현 차원에서 이번에 매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최근 칼스버그가 러시아와 중국에 투자했다가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자금 회수 차원으로 매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5.불투명한 주가

  칼스버그의 지분 매각과 무관하게 하이트 주가는 계속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칼스버그의 지분 매각이 있기 직전인 6월1일 하이트 주가는 주당 9만9500원으로 마감, 11개월 만에 처음으로 10만원 선이 무너졌다.

맥주시장의 최대 성수기인 8월17일 현재 주가도 10만8000원에 머물러있다. 지난 연말 최고가였던 주당 17만원에 비하면 8개월 새 36%나 빠진 셈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대체로 하이트 실적이 완만한 상승이 예상되지만 시장 경쟁 격화로 인한 마케팅비 부담으로 주가에 대해선 중립적 의견을 내보내고 있다. 박종렬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적정주주가치 대비 추가 상승 여력이 낮고 투자 매력이 높지 않다”며 “구조적인 맥주 판매량 부진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증권도 현주가가 목표주가인 11만원에 근접,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낮췄다.

서울 청담동 하이트 본사는 진로의 점유율 하락과 맥주시장 축소 등 객관적인 상황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1(하이트)+1(진로)=1.5가 됐다’는 식으로 지난해 M&A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해선 발끈한다.

6.“결혼하자마자 애 낳나” 항변도

하이트 한 관계자는 “하진홍 사장이 진로 사장으로 파견된 지난해 10월이 사실상 진로의 인수 시점”이라며 “1년도 안 돼 인수의 성패 여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그는 “양사의 전국 물류센터를 통합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면서 “결혼하자마자 애가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시장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하이트의 진로 인수에 대해 기업결합 승인 날짜(2005년 7월20일)를 기준으로 봐도 1년이 넘었다. 특히 하이트가 진로 측과 M&A 본 계약을 체결한 지난해 6월3일을 놓고 보면 벌써 진로가 하이트에 편입된 건 벌써 14개월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참이슬의 고전으로 촉발된 박문덕 회장의 고민이 하이트 측이 주장한 ‘실질적 인수 시점 1년’이 되는 10월쯤이면 해결될 수 있을지 귀추가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