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소프트웨어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윈도다. MS는 전 세계 컴퓨터 운영체제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윈도가 당장 없어진다면 PC의 90% 이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프트웨어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MS는 과연 한국의 IT 산업이나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MS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지난 1988년. 이후 MS는 한국의 IT 성장의 동반자가 되어온 게 사실이다. MS는 이제는 한국 IT 산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연구조사 기관인 IDC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IT 취업시장에 대한 조사 결과 2004년 기준으로 전체 IT 관련 일자리 중 40%인 약 42만3000개가 한국MS와 연관돼 있다. 또 IDC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MS가 1달러의 매출을 올릴 때 파트너 업체들은 11.65달러를 벌어들인다. 10배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MS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MS가 한국 IT 산업에 기여하고 있는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한국MS를 통해 2001년부터 벤처기업을 포함한 한국 IT 기업들에 직접적으로 투자한 규모는 8억달러다. 국내 정부기관,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도 무려 80여 건에 이르고 있다.

2004년 국산 SW 수출 총액 중 MS 윈도 운영체제 기반 제품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MS가 한국 기업과 상생 협력차원에서 매년 게임기 제작 등에 필요한 각종 전자 부품을 한국 업체에서 대규모로 구매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MS의 영향력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여기에다 MS는 한국MS를 통해 한국 정부와의 교류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교육부와 U러닝(유비쿼터스 학습)을 위해 초·중·고 교사 교육 훈련을 상호 협력해 실시키로 했다. 또 세계 학생 소프트웨어 개발 경진대회 ‘이매진컵(Imagine Cup) 2007’을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월16일에는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이사회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인천에 설립되는 아시아 최초의 아시아·태평양 정보통신기술 개발센터에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또 한국MS는 글로벌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수행하는 동시에 한국 기업으로서 한국 실정에 맞는 토착화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발굴해 운영하고 있다. 우선 정보화 소외계층에 정보화 교육과 정보 접근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프로그램인 UP(Unlimited Potential)를 한국의 ‘고령화’ 문제에 주목해 ‘어르신 정보화’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다. 노년층에 정보화 교육을 무료 제공하는 전국 24곳의 ‘UP 노인정보교육센터’와 전국의 경로당이 노인 정보화 기지로 활용된다. 이를 통해 향후 5년간 10만 명의 노인들이 정보화 교육을 받게 된다.

MS, “한국 SW업체와 상생 하겠다” 천명

또 인재 육성에 대한 필요성을 잘 알고 있는 한국MS는 한국 현지화를 위해 미국 본사를 설득해 외국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공채를 통해 경력사원과 인턴사원을 채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 노력이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유재성 한국MS 사장은 “한국MS의 경력사원과 인턴사원 공채가 회사 발전은 물론 향후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인재 육성의 작은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한국MS의 현지화 노력은 ‘한국에서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이익은 사회공헌에 쓴다’는 MS 경영전략의 일환이다. 이는 IT 강국인 한국 기업들과 긴밀한 제휴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시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한국MS의 이 같은 전략은 미국 본사의 한국 시장에 대한 평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 4월28일 시애틀에서 열린 미국 신문편집인협회 회의에 참석한 빌 게이츠 MS 회장은 “가장 혁신적인 시장을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미래 트렌드를 미리 엿볼 수 있는 한국을 꼽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열린 고객사 CEO를 대상으로 한 ‘CEO서밋’에서도 빌 게이츠 회장은 한국 벤처기업인 레인콤의 휴대용 MP3플레이어를 직접 선보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올해만 해도 MS가 한국의 IT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실제로 찾아 볼 수 있다. 스티브 발머 M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서울디지털포럼에서 “한국은 혁신과 하이테크의 나라”라고 치켜세우고 “SW 산업 육성을 위해 총 6000만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스티브 발머 사장은 소프트웨어 월드컵이라 불리는 이매진컵 2007 한국 개최를 확정했다. MS가 글로벌시장을 함께 누빌 한국 SW업체 발굴과 지원에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MS는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을 위해 3000만달러를 투자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 프로젝트’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과 공동으로 발표했다.

소프트웨어 생태계란 기반 기술을 가진 업체와 독립적인 소프트웨어업체가 기술 공유와 파트너십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선순환 고리를 형성한다는 동반 성장 모델이다. 한국 정부의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 정책에 발맞춰 MS가 소프트웨어업계와 협력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동반 성장하도록 구상된 소프트웨어 산업 지원책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 인력 육성 및 혁신 역량 강화와 글로벌시장에서 성공적인 스타 소프트웨어업체 육성 등이 이 프로젝트의 골자. MS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MS 이노베이션센터를 설립하고, 3000만달러를 추가로 투자키로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이노베이션센터는 한국 소프트웨어업체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진출을 지원할 ‘ISV 임파워먼트랩’과 웹서비스 연구를 지원할 ‘웹엔지니어링랩’, 모바일 분야 연구기관인 ‘모바일 이노베이션랩’으로 구성된다. 모바일 이노베이션랩은 이미 지난해 3월 설립됐다. 새로 설립되는 ‘ISV 임파워먼트랩’과 ‘웹엔지니어링랩’에는 향후 3년간 3000만달러가 투자된다.

독점적 지위에 따른 불공정 시비 잇달아

MS가 한국 IT산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증거는 이전부터 감지돼 왔다. 지난 5월에는 삼성전자와 울트라모바일 PC(UMPC)를 공동 개발했다. 또 유비쿼터스 아파트에 쓰일 전자기기의 호환표준 분야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업계 관계자는 “6000만달러 투자와 이매진컵 2007 개최 확정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초를 더욱 탄탄히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방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번 MS 의 투자 계획은 단순 투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국내 소프트웨어업계와의 동반 성장과 대규모 투자라는 발표의 이면에는 MS가 그동안 ‘윈도우’라는 운영체제의 장악을 통해 우리나라 IT 생태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유해온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MS는 전 세계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한국 시장에서도 MS의 소프트웨어시장 내 지위는 절대적이다. 윈도 운영체제(OS)와 익스플로러는 국내 소프트웨어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MS는 그동안 독점적 지위라는 탓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독점 소송이나 불공정 시비에 시달렸다. MS와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004년 MS가 유럽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부정하게 이용했다고 인정하는 판결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계속하고 있다. 더욱이 집행위는 MS가 이행명령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며 1일 최대 200만유로(240만달러)의 벌금을 물리겠다며 경고한 반면 MS는 자사가 제출한 이행 노력 등을 담은 보고서를 집행위원회가 검토도 하지 않았다며 반론을 펴는 등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MS는 지난 1998년 미국 법무부와 주정부에 의해 반독점소송을 당해 한때 회사 분할 명령을 받았다가 고비를 넘겼고,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제재를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해 12월 PC 운용체계(OS)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인 MS가 윈도 OS에 미디어플레이어를 끼워 파는 등 3건의 불공정 행위를 했다며 MS에게 3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와 관련 MS는 올해 초까지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독점 결정을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갈등을 빚어 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독점 결정을 앞두고 MS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MS의 분기 보고서에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부 프로그램을 제거하거나 한국 시장에 맞춰 특화된 윈도를 재설계할 것을 요구할 경우 한국 시장에서 윈도의 판매를 중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MS가 윈도를 더 이상 팔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만연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막론하고 웹사이트를 구축할 때 국제표준을 따르지 않았고, MS의 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에만 최적화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문제는 심각했다.

최근 이와 같은 우려가 결국 현실화하고 있다. 차세대 운용체계(OS)인 ‘윈도 비스타’가 전 세계적으로 이르면 올해 말, 내년 초 선보이지만 국내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로 한글판 출시가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한국MS 조차 아직까지 테스트 버전은 고사하고 명확한 출시 시점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투자 발표는 ‘유화 제스처’에 불과 비난도

일단 MS는 비스타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정식 출시 시점을 기업용 버전 11월, 일반 소비자용은 내년 1월로 잡았다. 국내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판결에 따라 메신저와 미디어 플레이어를 탑재한 ‘K(탑재 버전)’뿐만 아니라 이를 탑재하기 않은 분리 버전 ‘KN’까지 내놔야 하는 상황이다.

기본 버전이 5개이니 따로 개발 과정을 거쳐 총 10개의 버전을 내놔야 하는 셈이다. MS는 이미 K버전을 PC 제조사에 공급해 테스트를 시작했지만 한글판 격인 KN버전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후속 조치를 밟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연말 전 세계적으로 비스타가 정식 출시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출시 일정이 오리무중이다. 테스트 기간 등을 고려할 때 비스타 한글판이 더 늦어지는 게 불가피해 업계에서는 국내 출시 지연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윈도 비스타 한글판 출시가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이에 따른 특수를 기대했던 국내 PC업체와 메모리업체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컴퓨터 제조업체 관계자는 “비스타 출시 일정이 차질을 빚을수록 PC업계 뿐 아니라 결국 전체 IT시장이 그만큼 위축될 것”이라며 내심 불안해했다.

MS 제품의 출시 지연이 한국 IT업계 전체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의 MS의 독점적 지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최근 MS가 내놓은 각종 ‘러브콜’이 한국 정부의 반독점 결정 및 과징금 부과를 무마하려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일기도 한다.

소프트웨어업계 관계자는 “MS가 왜 이러한 발표를 현 시점에서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러한 발표 뒤에는 MS가 국내 소프트웨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묻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S는 이미 10년 전부터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한국 등에서도 반독점 소송이 걸려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MS는 반독점 소송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삼성전자 등 상당수 한국 기업들과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드웨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한국 기업과의 동맹을 통해 이 분야에서의 약세를 면해 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또 MS가 화해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국내 시장에서 점차 독점적 지위를 잃어 가고 있는 것도 한 이유다. 인터넷 메신저의 경우 MSN 메신저는 국내 시장에서 1위 자리를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온에 내줬다. 미디어플레이어 분야 역시 국내 벤처기업인 그레텍의 ‘곰플레이어’가 윈도우 미디어플레이어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토종 SW업체의 공동의 적’, ‘반독점 기업’이라는 끈질기게 따라붙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MS는 여러 가지 유화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MS는 소프트웨어 기업들과 경쟁하기보다는 다양한 기회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함께 성장한다고 역설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꼬리표는 떼기 힘든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MS가 소비자와 SW 개발자, 컴퓨터 제조업체 등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IT 생태계에서 상생의 길을 걷겠다고 천명한 것이 어떻게 작용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