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원대 연봉의 샐러리맨 신화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MBO란 독특한 방식의 M&A로 휠라코리아를 인수해 외국계 회사였던 휠라코리아를 국내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하는 요즘, 거꾸로 외국 기업을 국내 기업으로 만든 윤 회장으로부터 협상 과정을 취재했다.
 라(Fila)는 한국 회사다? 휠라코리아로 한정하면 이 명제는 참값이다. 휠라코리아 윤윤수(60) 회장이 100% 외국계 회사였던 휠라코리아 지분을 전량 인수했기 때문이다.

 스포츠의류 및 신발업체인 휠라코리아는 미국 휠라글로벌이 76.5%, 휠라홍콩이 23.5%의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 회사였다. 국내 진출한 외국 회사를 국내 자본이 인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윤 회장은 샐러리맨의 우상이다. 해운공사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10여 년의 직상생활 후 무역회사를 차렸고, 1991년에는 세계 4대 스포츠 브랜드인 휠라코리아의 CEO가 됐다. 하지만 그가 샐러리맨의 우상이 된 직접적인 이유는 윤 회장의 연봉 때문이었다.

 첫 해 연봉 5억 원을 시작으로 1997년 연봉 18억 원을 받으며 <내가 연봉 18억 원을 받는 이유>란 자선 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2004년에도 20여억 원의 연봉을 기록했다. 그런 그가 2005년 1월31일, 또 다른 신화를 작성했다.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하는 요즘, 거꾸로 휠라코리아를 1억3000만 달러에 인수, 외국 기업을 국내 기업으로 만드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번 인수에는 2003년 휠라 미국과 윤 회장이 이탈리아 휠라 본사를 인수했던 MBO(Management Buy Out; 내부 경영자 인수)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에는 내부 경영진과 사모펀드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윤 회장을 비롯한 내부 경영진, 사모, 공모, 은행권 자금 등으로 더 복잡하게 이뤄졌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휠라코리아는 국내 기업이 됐지만 ‘휠라’ 브랜드는 계속 사용한다. 로열티도 지사 시절의 6.5%보다 낮은 3.5%다. 로열티를 내는 대가로 디자인, 마케팅, 제품 개발에 관한 각종 정보를 본사로부터 받는다. 윤 회장은 “지사 시절에는 글로벌 마케팅 비용 등으로 본사에 150억 원 정도를 보내야 했지만 이제는 그 비용을 보낼 필요가 없게 됐다”며 “줄어든 비용만큼 한국에 재투자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극심한 내수 시장의 침체로 창사 이래 최악의 시기를 보내면서도 지난 해 2400억 원대의 매출과 50억 원대의 순이익을 올렸던 점에 비춰보면 2005년에는 아무리 못해도 200억 원대의 순이익을 낼 것이라고 윤 회장은 추정하고 있다. 다음부터는 윤 회장과의 일문일답. 



 SBI(휠라의 지주회사)측으로부터 휠라코리아의 인수를 제의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SBI측이 윤 회장에게 휠라코리아 인수를 권유한 이유는 무엇인가?

 “2003년 6월 휠라 본사(이탈리아) 인수는 나를 비롯해 본사 임원진 4명으로 구성된 매니지먼트팀이 미국계 투자펀드인 서버러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인수를 한 케이스이다. 당시 매니지먼트팀은 15%의 지분을 갖고 85%는 서버러스가 갖는 조건이었다. 서버러스는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Private Equity Fund)로 조기에 투자금 회수를 원했고 휠라의 지주회사인 SBI는 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휠라가 보유하고 있던 힙합 브랜드 ‘에니체’를 팔아 일부분을 갚았다.

 그리고 후속 조치로 전 세계 휠라 중 실적과 이익면에서 가장 좋은 휠라코리아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상품성이 있어야 팔릴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제안을 나에게 한 것이다.” 윤 회장이 SBI측으로부터 처음 제안을 받은 것은 2004년 6월이었다. 이에 대해 2003년 휠라 본사를 1년6개월에 걸쳐 인수하며 힘들었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윤 회장은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8월 윤 회장이 다시 미국으로 출장 갔을 때 한국 경영진에 대한 문책 인사가 있을 것이란 뉘앙스의 이야기를 들었다. “휠라를 위해 20년 동안 일했는데 그냥 떠나는 게 섭섭했다. 임원들과 상의했더니 이참에 그쪽이 제안한 대로 아예 인수를 해버리자고 하더라. 휠라코리아는 전 세계 27개 휠라 지사 중 매출이 두 번째로 높고 순이익은 최고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휠라코리아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는 대단하다. 그동안 공동 부담으로 본사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 왔는데 그 비용을 국내에 재투자한다면 분명 휠라코리아를 국내에서 최고 스포츠 브랜드로 키울 수 있다. 돈이 벌린다는 이야기다. 돈 버는 것이 눈에 선한데….

 그 자리에서 미국에 전화를 걸어 인수하겠다고 답변했다. 미국측에서도 좋은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지난해 6월에 인수 제안을 거절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MBO를 한번 해봤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더구나 그때는 서버러스란 사모펀드가 있어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자본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돈이 눈앞에 보였지만, 쉬운 결정은 절대 아니었다. 미국측도 우리 사정을 알기 때문에 지난해 11월 말, 주식 인수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대금은 2개월 후에 보내는 조건을 받아주었다.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구체적인 인수 조건이 궁금하다.

 “인수 금액은 1억3000만 달러로 실제 SBI에 준 현금은 7000만 달러이다. 휠라코리아가 SBI로부터 받아야 할 돈인 GSS(Global Sourcing Service) 비용 2400만 달러와 이미 지급한 로열티 2600만 달러를 제외한 8000만 달러 중에서 1000만 달러는 우선주로 SBI에 발행했다.” 

  인수 금액은 어떻게 산정한 것인가?

 “2개월에 걸친 줄다리기가 있었다. M&A 시 가치 평가를 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에비타(EBITDA; 세금 이자 지급 전 이익)를 활용해 산정했다.”  

 인수 대금을 어떻게 마련했나?


 “이번 인수는 5개 루트로 자금을 동원했다.

 1300억 원이 필요했는데, 나를 비롯한 휠라코리아 경영진 6인의 출자, 종업원 우리사주조합, 사모 투자자, 일반 공모 투자자, 국내 은행 론 등으로 마련했다. 내가 68억 원, 사모 166억 원, 은행 대출 900억 원, 공고 180억 원 그리고 경영진과 우리사주조합이 나머지 금액을 맞췄다.” 자금 마련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아찔한 난제였다고 윤 회장은 토로했다. “두 달 만에 1300억 원이라는 돈을 모으면서 지옥을 몇 번 오갔는지 모른다. 1월31일이라는 마감 시한을 맞추지 못하면 100만 달러를 페널티로 물어야 했다. 자금 마련을 다섯 가지 방법을 통해 하다 보니 서로 맞물려 있는 상태여서 하나라도 삐끗하면 전체가 다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을 세 번이나 먹었다. 이번 인수 과정에서 느낀 것은 그동안 비즈니스맨으로 바르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인수 과정 내내 내 인생을 통째로 검증받았다고 생각한다. SBI도 자금이 없는 것을 알고 신용만 믿고 2개월의 시간을 주었으며, 국내 굴지의 은행들이 900억 원이라는 큰돈을 빌려준 것은 담보가 아닌 철저한 신용에 의한 것이다. 또한 휠라코리아 직원들도 퇴직금 전부를 올인했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60 평생을 헛되게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  

 최종적으로 1월31일 인수 대금을 지불했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텐데


 “한마디로 시원섭섭했다. 6개월여에 걸친 인수가 마무리된 것에 대해 시원했고, 휠라코리아 인수 때문에 SBI 주식을 처분하며 글로벌 휠라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된 점은 섭섭했다.” 윤 회장은 휠라코리아 인수를 위해 ‘패션플라워’란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 이를 통해 SBI측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주식 공모 시 투자설명회를 통해 상장 계획을 밝히도 했다. “금융권 대출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본사와 물류센터를 팔아 300억 원을 갚고 영업 이익으로 매년 60억 원씩을 갚아 2년 후 부채 비율을 110%로 떨어뜨릴 계획이다. 이런 비즈니스 플랜대로 진행된다면 2007년에는 상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수로 인해 휠라코리아 경영에 변화가 생기는 부분이 있는가?

 “경영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마케팅도 지금처럼 본사와 협의할 예정이다. 패션 브랜드는 글로벌화하지 않으면 성장하기 힘들다. 그래서 3.5%의 로열티를 본사에 주는 것이다.”  

 자체 브랜드 개발 또는 다른 사업 영역으로의 확장 계획은 없는가?

 “휠라 외에 다른 브랜드를 국내에 전개할 수는 있으나 당분간은 휠라 브랜드에 집중해야 할 때다. 먼저 MBO 이후에 변화되는 모습들을 ‘JUMP 2005’라고 정하고 영업, 상품, 마케팅 그리고 내부 직원들의 변화 이렇게 4가지 파트로 나누어 진행할 계획이다.” 연이은 MBO로 경영과 시장에 집중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윤 회장은, 하지만 올해부터 다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 매출과 수익 증진에 진력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스포츠 브랜드는 크게 두 시장으로 나눠진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은 신발 중심의 기능에 가까운 브랜드이고, 휠라나 푸마 등은 의류 중심의 패션에 가까운 브랜드다. 하지만 세계적인 패션 트렌드가 스포티즘으로 흐르며 기능성에 충실했던 브랜드들이 패션화를 시도하고 있고, 여기에 캐주얼 브랜드들도 스포티즘을 디자인에 적용하기 시작해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에 따라 스포츠 브랜드도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트렌디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휠라코리아도 8월 이전에 ‘뉴컬렉션’(가칭)이란 15세에서 25세 사이를 타깃으로 한 신규 라인을 론칭할 계획이다.  

 이번 인수가 갖는 의미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는 한국의 자본이 외국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 거꾸로 외국 자본이 국내화된 것이다. 휠라코리아의 MBO 사례를 많은 기업에서 답습했으면 한다. 두 번째는 기업의 이익을 관련된 모든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다. 휠라의 비즈니스가 잘 되면 그 이익을 휠라코리아 직원뿐만 아니라 투자자 모두에게 돌려줄 것이다.”  

 윤 회장의 경영 철학은?


 ‘투명 경영’과 ‘윈-윈 전략’이다. 투명 경영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 그리고 인생의 철학이다. 기업 경영을 투명하게 하여 회사 내·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업의 비즈니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떳떳하게 보여주자는 것이다. 또 회사 혹은 개인의 이익에 대한 납세의 의무를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은 항상 50%는 국가를 위해서(세금), 50% 중 절반은 주변에, 나머지만 가져간다는 것이 기본 생각이다.

 "‘윈-윈 전략’은 투명 경영으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을 회사뿐 아니라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공유하고, 나아가서는 납품업체 및 대리점 모두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결국 휠라를 위하여 일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다. 최근 이를 명문화해서 노사가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익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3분의 1은 회사, 3분의 1은 직원, 3분의 1은 주주에게 돌린다는 내용이다.”  

 끝으로 샐러리맨의 우상으로서 성공 노하우를 말해 달라.


 “기본에 충실하자다.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 사람이 돈을 좇으면 추해지지만, 돈에서 자유롭게, 열심히 올바르게 살다 보면 돈은 자연스레 쫓아온다.” 윤윤수 회장은 SBI로부터 휠라코리아를 인수한 후 벤츠 승용차를 체어맨으로 바꿨고, 자신의 연봉도 4분의 1로 대폭 삭감했다. 임원들에게도 “지금은 마음을 다잡을 때다. 자유 복장 대신 넥타이에 회사 배지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자신을 믿고 투자한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돈’으로 돌려주는 것밖에 없다는 게 윤 회장의 소신이며 철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