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랑스(Bancassurance)란 프랑스어로 은행(Banque)과 보험(Assurance)의 합성어다. 1986년 프랑스의 크레디아리콜은행이 생명보험사인 프레디카를 자회사로 설립, 전국 46개 은행 창구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에선 1997년 한국주택은행과 한국생명보험(현대생명보험)이 단체신용생명보험 형태로 처음 도입했지만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2003년 9월부터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1단계 방카슈랑스 판매가 시작된 2003년 9월부터 올 3월말까지 17개 생명보험사와 8개 손해보험사들이 판매한 상품의 총 건수는 140만8817건에 초회보험료는 5조1240억원을 기록했다. 이를 보험업권별로 보면 생명보험사는 판매건수 75만9978건에 초회보험료 4조8302억원을, 손해보험사는 판매건수 64만8839건에 초회보험료 2938억원을 거둬들였다.  초회보험료 기준으로 업계 1위는 AIG생명으로 9209억원이었으며 삼성생명 6087억원, 교보생명 5459억원, 동양생명 5084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해 은행들의 방카슈랑스 판매 실적은 국민은행이 8779억원으로 전체의 38.0%를 차지했고 외환은행 2673억원, 우리은행 2213억원, 하나은행 1907억원, 조흥은행 1715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1단계 방카슈랑스는 저축성보험에 한정한 제한적인 시행이었음에도 그 결과가 매우 커 설계사 중심의 보험 판매 채널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4월로 예정됐던 방카슈랑스 2단계가 내용에서 대폭 수정된 것은 보험업계 및 판매 조직의 반발 강도를 짐작케 한다. 기존의 방카슈랑스 일정대로라면 2단계(2005년 4월)에 종신보험 등 보장성보험, 자동차보험(개인용), 장기보장성보험이 허용되고 이들 이외의 상품은 3단계(2007년 4월)에 완전 허용토록 돼 있었지만 변경된 일정에 의하면 길게는 3년 이상 시행이 연기된 상품도 있다.

  2단계 방카슈랑스가 4월1일부터 시행되었고 이에 따라 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 상품은 기존의 저축성보험(연금·저축·교육보험 등) 및 주택화재, 특종보험 등에서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순수 보장성보험(특약 제외)으로 확대됐다. 이로써 방카슈랑스 상품이 전체 보험 상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명보험사의 경우 42.6%에서 49.2%로 6.6% 높아졌고, 손해보험사의 경우 13.4%에서 22.6%로 9.2% 높아졌다.   

 하나생명은 암 진단비와 치료비를 지급하는 ‘무배당 웰빙암보험’을 최초로 출시, 하나은행 창구에서 판매를 개시했다. 대한생명은 은행의 주요 기능인 자유 입·출금, 추가 납입 등의 기능이 결합된 ‘다모아유니버설보험’을 개발해 국민은행에서 판매하는 한편 보장이 단순화된 암보험과 건강보험을 5월중에 출시할 예정이다. 

 흥국생명은 자유로운 입·출금 기능과 특정 보험 사고 보장 기능이 강화된 ‘흥국드림유니버설보험’을 판매하고 있는데, 보험료 납입이 자유롭고 중도 인출이 가능하다. 삼성생명은 어린이보험과 상해보험을 6월 중순에 출시할 계획이다. 어린이보험은 입원·수술·주요 질병 진단 등을 보장하고 상해보험은 교통 재해를 고액 보장해 준다.

 SH&C생명은 ‘무배당 톱스 변액유니버설보험’을 판매중인데, 이 상품은 가입 기간 동안 보험료를 자유롭게 납입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자금이 필요할 경우 중도 인출도 가능하며 최소 가입 금액은 50만원이다.

 

 방카슈랑스 보험료 인하 효과 없어

 보험업계는 1단계 시행 기간 방카슈랑스를 통해 5조원 이상(초회보험료 기준)의 실적을 올렸다. 전체 보험 상품이 아닌 저축성보험만을 허용한 1단계 방카슈랑스 시행만으로는 대단한 결과다. 따라서 방카슈랑스 확대는 불가피할 뿐 아니라 은행을 통한 보험 가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방카슈랑스의 당초 취지인 은행을 통한 금융 상품의 원스톱 쇼핑, 저렴한 가격, 선진화된 서비스에 따른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은행의 ‘꺾기’식 보험 가입도 잠재된 문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0월에 실시한 방카슈랑스 운용 실태에 따르면 6개 은행의 14개 지점에서 18건의 구속성 보험이 적발되는 등 위법 사례가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방카슈랑스의 판매활성화가 본연의 장점보다는 은행의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판매중인 방카슈랑스 상품은 기존 보험 상품들과 비교할 때 차별성이나 경쟁성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기존의 보험 상품 기능을 축소해서 판매하고 있으며,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는 보험료 인하 효과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방카슈랑스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은행, 보험사와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은행은 꺾기식 판매나 판매수수료 등 단기 이익에 집착하기보다는 양질의 대고객 서비스 강화와 방카슈랑스 전용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즉 간결하고 명확한 상품 구성과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상품으로 상품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보험사는 방카슈랑스를 단순히 판매 채널 추가나 기존 상품을 통한 사업비 절감과 시장점유율 확대 등 양적인 목표에 치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계사와 방카슈랑스 조직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 상품은 보험사의 상품을 은행이 판매를 대행하는 것으로, 보험사 입장에서 보면 은행은 일종의 법인대리점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은행에서 보험 상품을 선택할 때는 권유하는 상품이 어느 보험사의 상품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가입한 보험과 제반 사항은 은행이 아닌 해당 보험사에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방카슈랑스 적용 대상의 시행이 상당 부분 연기됐지만 2008년에는 전면 시행되므로 남은 기간 동안 보험사나 은행들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때다. 이를 통해 앞으로 발생할 실업 문제나 금융 업종간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함으로써 방카슈랑스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