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애플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동영상 서비스 ‘애플 TV+’가 드디어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 상륙했다. 애플 뮤직 이후 4년 만에 대규모 서비스 론칭이다. 한국에서도 미국 계정으로 시청할 수 있지만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콘텐츠는 매우 적다. 9월 10일 이후 구매한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 TV, 아이팟 터치 또는 맥을 구매한 모든 소비자에게 1년간 무료로 제공된다. 기기를 구매하지 않은 고객이라도, 삼성 스마트 TV, 로쿠 TV 등에서 월 4.99달러(약 6000원)를 지불한다면 시청할 수 있다.

올해 3분기 애플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 증가한 640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중 서비스 매출은 121억달러다. 미디어 업계가 모두 두려워하는 넷플릭스의 같은 기간 분기 매출은 52억달러다. 애플이 앱스토어, 애플 뮤직, 애플 아케이드, 뉴스 +(아직 공식적인 매출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의 매출을 합해도 넷플릭스의 2.4배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애플이 애플 TV+를 통해서 추가로 수익을 낼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다.

기기를 통해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한계가 있다. 프리미엄 제품을 주력 제품으로 전환했고 에어팟과 애플워치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도 잘 팔린다고 하지만, 그들의 아이콘인 아이폰의 판매는 감소하는 추세다. 3분기 아이폰 판매는 4350만 대로 지난해 3분기(4700만 대)보다 7%나 줄었다. 애플이 TV+라는 동영상 서비스를 내놓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애플 TV+에서는 다양한 파트너의 콘텐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 김조한
애플 TV+에서는 다양한 파트너의 콘텐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 김조한

애플 TV+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기존에 애플 기기를 사용하고, 애플 기기를 통해서 다양한 동영상 콘텐츠를 봐왔던 고객이 매년 2억 대 이상의 기기를 재구매하거나 신규 구매한다는 점이 애플 TV+의 경쟁력이다.

애플 TV+의 프리 트라이얼(Free Trial·무료로 서비스를 사용하게 하는 전략) 기간은 1년이다. 기존 경쟁자들이 프리 트라이얼 기간을 일주일 혹은 한 달 제공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긴 기간 무료로 제공한다. 고객은 이 기간에 애플이 출시하는 새 기기를 구매할 수 있고, 오랜 기간 애플 TV+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무료 제공 기간이 끝난 후에도 유료 가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애플 TV+의 콘텐츠는 많지 않다. 현재 9개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공개됐고, 3개의 오리지널 드라마가 곧 공개된다. 콘텐츠의 퀄리티만 봤을 때 충분히 서비스를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콘텐츠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현재 1000개가 넘는다.

하지만 애플은 또 하나의 인터넷TV(IPTV)와 같다. 그들은 애플 TV+만으로 돈을 벌지 않는다. 애플 TV의 앱에 들어가면, 다양한 최신 영화나 ‘왕좌의 게임’과 같은 HBO의 콘텐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콘텐츠를 클릭하면 HBO NOW, CINEMAX와 같은 독립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가입할 수 있고 단품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디스커버리 플랫폼(Discovery Platform)이라고 부른다. 애플이라는 기기는 일종의 커다란 광고판이다.

콘텐츠 제작사나 판매사는 애플 TV+에 자신의 콘텐츠, 앱이 소개될 수 있다면 많은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홍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애플 TV+는 이용자가 신용카드 정보, 계정을 추가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애플 계정으로 SSO(Single Sign-On·하나의 계정으로 로그인할 방법)가 되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애플 TV+앱을 통해 가입하고 사용하게 된다.

특히 자신이 구독하는 콘텐츠를 한 번에 볼 수 있어 편리하다. IPTV를 통해 TV를 시청하면서도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는 주문형 비디오(VOD)를 구매해 다시보기 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물론 애플 생태계에 넷플릭스, 아마존, 디즈니 플러스는 들어와 있지 않지만 많은 파트너가 지속해서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존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채널스(Channels)라는 같은 방식의 SSO 기반의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넷플릭스만큼 성장세가 무서운 디스커버리 플랫폼인 로쿠도 같은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드웨어 생태계를 폭넓게 가지고 있는 애플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만든 OTT를 애플 TV+에 넣는 것도 협력의 한 방법이다.


HBO, CINEMAX의 가입도 바로 할 수 있다. 사진 김조한
HBO, CINEMAX의 가입도 바로 할 수 있다. 사진 김조한

OTT 플랫폼 전쟁에 임하는 자세

오리지널 콘텐츠가 없어도 성장할 수 있다. 디즈니 플러스도 한국 시각 11월 13일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공습을 시작한다. 애플 TV+와 마찬가지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가지고 이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마치 콘텐츠 없는 자는 이 판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모든 플랫폼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로쿠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광고를 유치해 많은 돈을 벌고 있다. 투비는 시간이 지난 콘텐츠를 싸게 사들여 무료로 제공하면서 광고 매출로 성장하고 있다.

수조원의 돈을 투자하진 못하지만, 수조원의 돈을 벌어 파트너에게 나눠줄 수는 있는 업체들이다. 투비의 핵심 전략은 넷플릭스 수준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동시에 모든 연령대가 사용해도 쉽게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로쿠는 최대한 많은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고 있다. 결국 콘텐츠도 경험이다. 고객 경험을 중요시하는 사업자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


오리지널 콘텐츠 없이도 성장하는 회사들이 있다. 사진 김조한
오리지널 콘텐츠 없이도 성장하는 회사들이 있다. 사진 김조한

플랫폼의 개념을 확장하라.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는 각각 전혀 달라 보이지만 같은 배경을 가진 콘텐츠가 큰 성공을 거뒀다. 미국 극장에서 성공한 콘텐츠는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 한국에서는 ‘나쁜 녀석들: 더 무비’다.

두 영화 모두 TV 드라마로 먼저 제작됐다. ‘다운튼 애비’는 영국 ITV에서 성공했던 드라마를 4년이 지난 후 영화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나쁜 녀석들’도 시즌 1이 끝나고 4년 후에 영화로 나왔다. 하나의 콘텐츠를 TV에서 시작해 극장 플랫폼으로 생태계를 넓혔고, 디지털 동영상 플랫폼으로 확장해 거대한 시리즈로 만든 사례다.

디지털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극장용 영화, TV용 드라마의 구분이 없다.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콘텐츠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플랫폼은 그 콘텐츠 전체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4년 전 드라마도 극장의 성공으로 다시 제값을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정답은 없다. 우리가 넷플릭스가 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전략이 필요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