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숙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안명숙
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분양가상한제와 청약가점제 같은 정책 효과와 금융권을 통한 ‘돈줄 죄기’가 여전히 위력을 보이고 있고, 여기에 미분양 아파트 증가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등도 시장 안정에 기여.”

“대출 규제가 여전하기 때문에 주택 수요가 늘어나긴 힘들고 양도세와 보유세 강화로 거래 위축은 더 심화할 것.”

2007년 9월 16일 한 일간지에 실린 ‘2007년 4분기 주택 시장에 대한 전망’ 기사에 위와 같은 전문가들의 분석이 인용됐다. 위의 기사에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바꾸면 2020년 9월의 기사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데자뷔(déjàvu)란 프랑스어로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을 의미한다. 요즘 주택 시장을 보면 2007년 주택 시장을 보는 듯한 데자뷔를 느낀다.

2007년 9월의 글로벌 경제 시장은 어떠했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9·11테러, 아프간 및 이라크와 전쟁으로 경제가 피폐해져 갔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낮추고 신용등급이 낮은 서브프라임 등급까지 대출을 확대했다. 저금리 유동성 확대 정책은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고, 2004년 들어서면서 미국 정부는 저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거품 빼기에 돌입한다.

금리가 인상되자 상환 능력 없이 집값 상승에 의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던 서브프라임 대출의 부실이 이어졌고 이 대출을 유동화하던 모기지 회사들이 급기야 파산에 직면했다. 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 회사였던 뉴센트리파이낸셜, 같은 해 9월 10위의 아메리칸홈모기지인베스트먼트가 파산하면서 미국 경제의 불안이 유럽 등 세계 경제에 불안 요인으로 이어져 2008년 9월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이런 글로벌 경제의 불안한 상황이 불거진 2007년 9월은 저금리 유동성 확대, 재건축 활기 등으로 집값이 급등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위기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미국 주택 시장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출을 규제, 상환 여력이 없는 금융 소비자의 대출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대응했다.

대출금 한도를 주택 가격뿐만 아니라 상환 여력에 따라 제한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도입, 소득이 없는 부동산 부자들의 대출을 제한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6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 DTI를 40%까지 제한하는 등의 대출 규제 정책과 고가 주택에 대한 종부세 및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세금 강화 정책으로 응수했다.

새 아파트 가격을 통제하는 분양가상한제 등의 정책도 병행, 분양가가 주변 시세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선제적으로 차단했다.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 강화를 위해 과세 기준은 ‘인별 합산’에서 ‘가구별 합산’으로 바꾸고, 과세 기준 금액은 9억원 이상에서 6억원 이상으로 대폭 강화했다. 이로 인해 대출 규제 및 종부세 과세 기준이 되는 ‘6억원의 딜레마’가 주택 선택의 잣대로 작용, 2007년부터 서울 아파트 시장은 6억원을 기준으로 명암이 달라졌다.

당시 집값은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6억원 이상 아파트가 포진한 강남권 등 버블세븐(강남·서초·송파·강동·양천·용산·분당)은 상승세가 멈추고 2007년부터 노원·도봉 등 외곽 지역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서울 구별 아파트값 상승률은 강남구가 1.3% 하락했지만 노원구는 12.9% 올라 2000년 들어 처음으로 강북 외곽의 상승세가 강남을 앞질렀다.


신도시 공급 확대로 시장 가격 안정화

바야흐로 13년이 지난 2020년 9월. 지금 서울 아파트 시장 대출 규제나 종부세 가격기준점은 당시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조정됐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서울 아파트값 변동 폭은 강남이 0.9%인 반면 노원은 5%로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이 상대적 강세를 보인다.

수도권과 서울 간 격차도 나타난다. 한국감정원 자료를 보면 정부가 가장 최근에 내놓은 ‘8·10 대책’ 이후 전국 아파트값 변동률은 세종시가 2.26%로 가장 높고 부산 해운대, 대전 유성, 부산 수영, 대구 수성, 경기 용인 기흥, 경기 구리, 경기 광명이 1% 이상의 상승률을 보였다.

반면 서울은 상대적 안정세를 보여 ‘9억원 딜레마’ 영향이 아파트값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보유세 강화와 다주택자의 취득세 중과 등 세 부담 증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주택 구매 시 제출해야 하는 강화된 자금조달계획서가 심리적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거래 감소 및 가격 상승세 둔화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년간 수도권 주요 단지 전용 85㎡ 아파트 매매가 변동 폭을 보면 2억원 이상 오른 곳은 서울의 은평·노원·구로 등의 외곽과 분당·일산·위례·하남 등 신도시가 주류를 이룬다. 그동안 서울 집값 상승세를 이끄는 곳으로 지목된 강남 재건축 평균 매매가는 최근 1년간 1억원 이내 오르는 데 그쳤고 마포·용산 등 도심권도 1억~2억원 상승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상승세를 주도했던 강남권 재건축 단지보다는 실거주가 용이한 새 아파트나 준신축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즉, 첩첩 규제로 사업이 장기화할 우려가 커지는 재건축보다 주거 여건이 양호한 신축이나 준신축이 지금 매입하는 수요자들에게 더욱 합리적인 대안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해당 단지 내 수급 상황이나 지역 여건도 가격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감정원의 구별 평균 상승률이나 호갱노노의 단지별 호가 변화를 보면 지금의 주택 시장 흐름 역시 정부 정책에 따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어쨌든 이른 감은 있지만, ‘8·10 대책’이 시장에 가격 안정 신호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값 상승이 불안한 수요자들의 심리도 다소 수그러들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3기 신도시 사전청약에 30대가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기대감은 내년으로 넘어가고 있다. 지금이 2007년과 비슷한 상황이라면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전셋값은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고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로 묶인 157만 호의 다주택자 물량이 매물로 나오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므로 여전히 불안감은 상존하고 있다. 이런 신호가 정부의 규제 효과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세금이나 대출 규제라는 ’바람’보다 입지 좋은 곳의 공급 확대라는 ‘햇볕’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