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전 세계 주요국이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① 탄소 중립 목표를 내놓으면서 중앙은행의 대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지난 3월 “기후 변화가 경제와 금융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며 “기후 변화는 중앙은행의 임무와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도 기후 변화 대응을 전담하는 기구를 설립했다. 중앙은행들은 그동안 기후 변화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방법론을 놓고 갑론을박을 해왔다. 특히 중앙은행이 채권 등 자산을 매입해 돈을 풀면서 장기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경기부양책인 ‘양적 완화’를 둘러싼 논란이 많았다.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선보일 때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과 통화 정책에 ‘다른 목표’를 부여할 경우 주요 목표인 물가 안정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는 의견이 부딪힌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후 변화 대응에 소극적일 경우,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과 예상보다 강한 환경규제 정책으로 일부 기업이 재무적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부딪힌다. 탄소 중립 시대, 주요국 중앙은행이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 이목이 쏠리는 시점이다.
이자벨 마테오스 이 라고(Isabelle Mateos y Lago) 블랙록 ‘지정학적 리스크 운영위원회’ 위원, 전 블랙록 수석 멀티에셋 전략가, 전 국제통화기금 아태국 부국장
이자벨 마테오스 이 라고(Isabelle Mateos y Lago)
블랙록 ‘지정학적 리스크 운영위원회’ 위원, 전 블랙록 수석 멀티에셋 전략가, 전 국제통화기금 아태국 부국장

최근 정부와 기업, 언론 등 거의 모든 곳에서 기후 변화를 주요 안건으로 다루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도 기후 변화에 주목하고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물가 안정이라는 기본 책무 외에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주요 중앙은행 가운데 기후 변화를 공식적인 정책 책무로 삼은 건 영란은행이 처음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기후 및 환경요인을 통화 정책에 반영할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기후·환경변화에 따른 금융 리스크 관리를 위한 중앙은행·감독기구의 자발적 논의기구인 녹색금융협의체(NGFS)의 회원 수는 지난 2년간 두 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 고위인사들은 기후 변화가 금융 건전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8년 녹색금융에 대해 연설한 중앙은행 총재는 4명에 그쳤지만 2020년에는 13명으로 증가했다. 블랙록은 “NGFS 회원국 절반가량이 기후 변화가 실물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어떤 충격을 가져올지 예측하는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10% 이상은 이미 기후 영향 평가를 수행했다”고 분석했다.

중앙은행은 기후 리스크를 고려하면서 투자하기도 한다. 선진국 중앙은행 10곳 중 6곳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자산매입을 하고 있다. ECB는 채권매입 프로그램에서 경제 분석을 할 때 기후 위험을 반영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국립은행은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지 못하는 산업·기업에 대한 자산매입을 축소하거나 배제하는 규범 기반 선별검사를 적용하고 있다. 영란은행도 연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채권이 기후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은행의 태도 변화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전 세계 130여 개 정부가 향후 수십 년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아직 관련 정책이 완전히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점차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이 정부의 기후 정책을 지원할 경우, 회사채를 매입할 때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시장 중립성’을 깰 수밖에 없다.

둘째로 기후 변화가 거시경제 모델링에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② 이상 기후로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면서 기후 변화가 경제성장,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결과가 확인되고 있다. 게다가 기후 데이터의 양이 늘고, 데이터 품질이 개선되면서 기후 변화를 반영한 투자 전략의 활용도가 좋아지고, 수익률이 나쁘지 않다는 점도 증명됐다. ③ 전 세계 기관투자자들은 투자전략의 기본 원칙으로 지속 가능성을 꼽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중앙은행이 기후 변화에 대한 의견 표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 더 큰 영향을 주기 위해선 능동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후 리스크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모델링, 자산 가격 책정 방식에서 투명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기업과 금융사, 기관으로부터 적절한 데이터를 받을 때 더 나은 기업 공시가 이뤄질 수 있다.


지난해 2월 27일(현지시각)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민간 금융 어젠다 출범식. 왼쪽부터 마크 카니 전 영국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메리 샤피로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필립 힐데브란트 블랙록 부회장. 사진 블룸버그
지난해 2월 27일(현지시각)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민간 금융 어젠다 출범식. 왼쪽부터 마크 카니 전 영국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메리 샤피로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필립 힐데브란트 블랙록 부회장. 사진 블룸버그

중앙은행의 태도 변화는 기후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에 반영되는 속도에 큰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르면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명확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중앙은행들의 기후 변화 대응은 초기 단계일 뿐이다. 영란은행은 “상장사는 2022년까지 기후 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TCFD)의 권장 사항에 따라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성명서를 냈지만, 다른 유럽 중앙은행들은 “2년 내 성명서를 발표하겠다”고 약속만 했을 뿐이다. 많은 중앙은행은 기후 변화를 정책에 반영하기는커녕, NGFS에 가입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신흥국 중앙은행일수록 기후 변화에 무심한 경향이 있다.

중앙은행들은 계획과 다르게 임무를 변경하는 ‘미션 크리프(mission creep)’를 경계해야 하지만, 기후 변화에 손 놓고 있는 다른 중앙은행에는 기후 변화에 관심을 가질 당위성을 부여해야 한다. 각국의 상황이 각기 다르긴 하지만 기후 변화에 대해 무성의하게 구는 태도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Tip

‘탄소 중립’은 기후 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실가스 순배출(배출량-흡수량)을 ‘0’으로 하겠다는 목표다.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 일본은 2050년,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 중립 목표를 선언했다. 미국 역시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탄소 중립을 공언한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2~23일(현지시각) 열리는 기후정상회의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밝힐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자연재해가 농업·관광·에너지 등 실물경제와 보험·대출·투자 등 금융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재보험사 스위스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보험사들이 자연재해와 인재로 입은 손실은 총 830억달러(약 93조7900억원)로 추정된다. 2019년보다 32%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해 호주와 캐나다는 우박으로 각각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고 북유럽에서는 2월 겨울 폭풍으로 인한 홍수와 정전 등으로 20억달러(약 2조2600억원) 이상의 보험 손실이 발생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등에서 80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해 수십억달러의 보험금 청구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기후 변화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반대로 강력한 환경규제가 급작스럽게 시행될 경우, 화석연료를 이용하거나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기업이 재무적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화석연료 기업에 투자한 은행도 손실을 입어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각국의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은 지속 가능성, 탈탄소를 강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올해 1월 기업 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사업구조를 탄소 중립과 양립할 수 있는 계획을 공개하라고 주문했다. 스위스 UBS도 투자자들에게 ESG를 고려한 지속 가능한 투자를 최우선 가치로 삼으라고 권고했다.

/ 정리 : 안소영 기자, 정현진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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