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인플레이션 신호가 심상치 않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발표에 따르면, 지난 6월 물가지수는 92.1로 88.0을 기록한 5월보다 높아졌다. 지난해 11월(65.4), 12월(77.6)과 비교해도 물가 상승세가 뚜렷하다. 그런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느긋한 모습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6월 말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며 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팀 컹든 영국 버킹엄대 국제통화연구소장과 모하메드 엘에리안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 등 전문가들은 “연준이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과소평가한다”라고 비판한다. 필자는 그릇된 상황 인식으로 1970년대 미국 경제를 휘청이게 한 아서 번스 전 연준 의장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2021년 현재의 인플레이션 경고음에 귀 기울여 올바른 조치에 나설 것을 당부한다.
아서 번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 위키미디어
아서 번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 위키미디어
존 테일러(John B. Taylor)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 후버연구소 연구위원, 전 미국 재무 차관
존 테일러(John B. Taylor)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 후버연구소 연구위원, 전 미국 재무 차관

1971년 6월 2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던 아서 번스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낸다. 당시 미국은 인플레이션 경고음이 커지고 있었다. 훗날 역사에 ‘번스의 흑역사’로 기록된 이 서신에서 그는 물가 상승이 연준의 조치 때문이 아니라는 걸 백악관이 알아주길 원했다. 번스에 따르면 문제는 ‘급격하게 달라진 경제 구조’였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을 동결하는 정책을 6개월 정도 펼쳐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번스는 밀턴 프리드먼의 스승이자 유명한 경제학자였다. 개인의 명성과 정책 입안자로서 오랜 경험은 백악관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다. 서신을 받은 닉슨 대통령은 번스의 제안에 따라 ①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을 동결한다. 한동안은 이 규제가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잠깐은 닉슨 대통령이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이 임금과 물건 가격을 조정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강력 규제가 늘어났다. 그리고 모든 가격 인상에 앞서 연방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이 시스템의 침해적 특성이 사람들과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정부 개입이 상황을 더 악화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해야 하는 책임을 외면한 채 돈을 풀기에 바빴다. 통화량(M2·광의통화)은 1960년대 연평균 7%에서 1970년대 10%로 상승했다. 1970년대 터진 오일 쇼크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졌고, 인플레이션율은 순식간에 두 자릿수로 치솟았다. 1974년, 1979년 그리고 1980년에 인플레이션율은 12%를 상회했다. 실업률은 1971년 6월 5.9%에서 1975년 9%로 올랐다.

익히 알려진 대로, 1970년대 미국 경제가 어려웠던 여러 배경 중에는 이 시대의 통화 정책이 있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묘하게 뒤섞인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카토 연구소의 제임스 던이 말한 것처럼 닉슨 대통령의 물가 통제는 시장 가격을 왜곡시켰고, 두고두고 우리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경제적 자유의 상실은 시장의 힘을 억눌러 인플레이션을 끝내겠다는 거짓 약속의 비싼 대가라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2월 100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과 내가 함께 저술한 책의 제목도 ‘경제적 자유를 선택하라’다. 슐츠에게는 경제 정책 전문가와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한 세기 동안 얻은 지혜와 경험이 있었다. 그는 번스가 그 대담한 서신을 백악관에 보냈을 때 닉슨 정부의 예산 정책 담당자였다. 그 서신이 최근 후버연구소 아카이브에서 발견된 덕분에 우리는 책 부록에 그 전문을 수록할 수 있었다. 미국 경제 정책의 최근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것을 읽을 필요가 있다.

번스의 서신은 나쁜 아이디어가 어떻게 나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나쁜 경제적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번스의 뛰어난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신은 최악의 정책 제안을 담고 있었다. 모든 문제를 추상적인 구조의 결함 탓으로 돌리는 서신이 초래한 상황은 인플레이션을 조절해야 하는 연준이 기본적인 책임을 외면하게 했다.

반대로 좋은 아이디어는 좋은 정책으로, 그리고 좋은 경제적 성과로 나타난다. ② 번스가 연준을 떠나고, 1980년대의 사례가 그러하다. 연준은 광범위한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스스로를 재정비했다. 미국 경제는 적절한 호황을 누렸다. 이 역사적 경험의 교훈은 명확하다.

역사는 절대 반복되지 않지만, 종종 비슷하게 흐른다. 2021년의 반이 지나간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는데, 연준은 다시 한번 인플레이션에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연준은 지금의 물가 상승이 지난해 매우 낮았던 인플레이션에 따른 반등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나쁜 건 지금의 연준 정책이 번스 시절의 연준 정책보다 시장에 더 개입한다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 채권과 모기지담보증권(MBS)을 대량 매입하면서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통화량 증가 속도는 지난 1년 동안 매우 가팔랐다. ③ 연방기금금리(기준금리)는 사실상 모든 통화 정책 지침이나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나타난 것보다 낮다. 연준이 2021년 2월 발표한 통화 정책 보고서 48쪽에 기록돼 있는 수치보다도 낮다.

연준은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고,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경제가 회복할 수 있는 통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촉박할 뿐이다.


Tip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달러화 약세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아서 번스의 조언에 따라 물가 상승과 임금 인상을 막는다. 시장과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할 일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통제한 것이다. 가격 통제의 피해를 보기 싫었던 기업은 공급을 줄였고, 이는 나중에 물가 상승 속도를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경기는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탔는데, 물가는 뒤늦게 치솟으면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아서 번스의 후임으로 연준 의장 자리에 오른 윌리엄 밀러도 물가 관리에는 실패했다. 밀러는 인플레이션율이 두 자릿수인 상황에서도 금리 인상에 반대표를 던졌다.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전쟁에 제대로 나선 건 그다음 의장인 폴 볼커가 등장하면서다. 볼커는 금리 인상 카드를 적극적으로 꺼내 8년간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의 경기 침체 등 부작용도 있긴 했다. 이후 앨런 그린스 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의 의장을 거쳐 현재의 연준에 이르렀다.

연준은 6월 16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개최한 후 내놓은 성명에서 기준금리를 현 0.00~0.25%로 동결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1.00~1.25%에서 0.00∼0.25%로 인하한 후 제로 금리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