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펭귄 가운데 이를 뚫고 과감히 뛰어드는 펭귄을 일명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사진 셔터스톡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펭귄 가운데 이를 뚫고 과감히 뛰어드는 펭귄을 일명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사진 셔터스톡
강성호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고려대 교육학 학사, 기업교육 석사, HRD 박사, 현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전 SK네트웍스 상무
강성호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고려대 교육학 학사, 기업교육 석사, HRD 박사, 현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전 SK네트웍스 상무

남극에 사는 펭귄은 산란을 마치면 알을 낳느라 급격히 소모한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바다로 나가야만 하는데 그리 쉽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바다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펭귄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는 바다표범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펭귄이든 선뜻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한다.

다른 펭귄이 미적거리고 있는 가운데 이를 뚫고 과감히 바다로 뛰어드는 펭귄이 있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그 펭귄을 따라 바다로 뛰어든다.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 있게 바다에 도전하는 펭귄을 일명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은 바 있는 3M에는 이 이름을 딴 제도가 있다. 3M은 2003년부터 ‘퍼스트 펭귄 어워드’라는 포상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 퍼스트 펭귄 어워드는 매년 수상자를 뽑고 있는데, 수상 대상자가 뭔가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만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이들이 이 상을 받는다. 이들은 시상과 함께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유와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동료와 공유하고 발표한다. 3M에서 실패는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격려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조직 문화는 매출액 중 30%를 혁신적인 신제품에서만 내는 3M의 저력으로 탈바꿈했다.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의 ‘실패 축하 파티’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Supercell)은 2010년에 개발자 5명으로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클래시 오브 클랜’ ‘클래시 로열’ 등 모바일 게임을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5년여 만에 매출액 2조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2016년 중국 텐센트가 이 회사의 지분 84%를 인수할 때 무려 10조원 가까이 지불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라이프 사이클(상품 수명)이 수개월 정도로 짧고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게임 시장에서 이처럼 빠른 시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이 회사의 독특한 문화인 ‘실패 축하 파티’를 꼽는다.

실패 축하 파티는 말 그대로 회사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샴페인을 터뜨려 이를 축하하는 행사를 말한다. 이런 행사를 주최하는 이유에 관해서 슈퍼셀 최고경영자(CEO)인 일카 파아나넨은 “히트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실패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실패하지 않는다면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히트 게임을 만들 기회가 없는 것”이라면서 “실패보다 성공이 많으면 더 실망할 것이다. 모험을 안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두 회사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에서 실패를 장려한다. 구글의 전 CEO였던 에릭 슈밋은 “구글은 실패를 축하하는 기업이다”라고 했으며 현 CEO 순다르 피차이 역시 “실패하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프로젝트라도 그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며 ‘실패하는 문화’를 역설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실패는 옵션”이라면서 “실패하지 않는다면 혁신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 중 혁신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현대카드도 실패하는 문화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회사에서는 구성원이 의욕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실패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는 면책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아무런 아이디어도 내지 않은 경우는 질책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현대카드의 혁신을 이끄는 정태영 CEO는 “오히려 실패를 격려하고 장려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참신한 시도가 나올 수 없다”고 했다.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의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 사진 셔터스톡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의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 사진 셔터스톡

실패 장려의 본질은 구성원의 도전 문화 만들기

이처럼 많은 기업이 실패를 시상하고 실패하는 문화를 구축하고자 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기업의 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도전과 혁신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도전이 반드시 성공적인 혁신을 담보하지 않지만 도전 없이는 혁신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늘날같이 경영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때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원이 기업 혁신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최근에 ‘아이디어’라는 저서를 국내에 출간한 IE 비즈니스 스쿨의 피터 피스크 교수는 “지난 250년보다 향후 10년 동안 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시장의 변화가 20년 전과 비교해 네 배 이상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런 경영 환경에서는 위계 중심의 수직적 조직 운영 방식으로는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변화에 반응하는 속도가 많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회사가 주도하는 혁신에 관해 이미 많은 구성원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탓이다.

직장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회사의 혁신 경영 방침에 피로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무려 73.8%가 “그렇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속도감 있게 변화에 대응하고 혁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경영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동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여러 기업이 추구하고 있는 실패를 용인하고 오히려 장려하는 제도와 문화의 구축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만약 우리 회사의 혁신 활동이 기대만큼이 아니라면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를 적용하는 방안을 한번 검토해보는 건 어떨까. 다만 외형적인 제도나 시스템만 흉내 내게 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슈퍼셀의 게임 개발 디렉터였던 티무르 하우실라는 “실패한다면 실패 당사자가 가장 힘들다. 그러나 회사 차원에서 이를 용인하고 지원해준다면 마음의 여유와 함께 업무 의지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앞에서 소개한 여러 기업 사례의 본질도 결국 구성원의 심리적인 안정감이나 실패에 대한 회복 탄력성을 증진하는 데 있다. 이런 의미와 목적을 상실하게 되면 형식적인 운영이 될 수밖에 없다. 많은 연구 또한 구성원의 심리적 요인이 기업 혁신 활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제 내년을 위한 사업 계획을 기획하고 한편으로 회사를 변화시키는 지속적인 과정으로서 또 다른 혁신을 준비해야 할 때다.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전을 끌어내기 위한 관건은 구성원이 어떤 심리적 자세를 갖느냐에 달려있음을 이해하고 계획 수립에 임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