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 연합뉴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하늘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아파트 시장이 이제 한계점에 달한 것인가. 최근 거래량이 줄어들고 일부 지역에서 오름세가 주춤해지면서 주택시장이 분수령을 맞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주택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이 수년 동안 계속돼 ’이제는 좀 안정되어야 한다‘는 당위론 섞인 전망까지 나오다 보니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판단이 어렵다.

아직은 사이클상 상승세 흐름이 꺾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지금은 하락국면으로 진입한 것으로 단정 짓기 어렵고 급등 이후 소강 혹은 숨 고르기 국면으로 봐야 한다. 보수적인 견해를 유지하되 거래량, 가격 동향 등 시장 흐름을 좀 더 지켜본 뒤 판단해도 괜찮을 것 같다.


‘패닉 바잉’ 줄고, 거래량도 주춤

요즘 서울지역 아파트 거래량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9월 19일까지 신고 기준)은 2403건으로 지난 8월(4179건)에 비해 43% 정도 줄었다. 지난해 9월(3775건)과 비교해도 36%가량 적은 것이다. 10월 거래량은 19일까지 356건에 그치고 있다. 거래량이 줄었다는 것은 집을 사려는 사람이 그만큼 감소했다는 것이다. 거래량은 수요자의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이 매주 발표하는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10월 둘째 주 94.5를 기록하며 2주 연속 기준선(100)을 밑돌았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집을 사겠다는 사람보다 팔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전국 아파트 매수우위지수 역시 97.8을 기록했다. 지난 8월 넷째 주(111.7) 이후 6주 연속 하락한 것이다.

반면 매물은 부쩍 늘었다. 부동산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9월 서울지역 아파트 매물(9월 19일 기준)은 4만1880건으로 한 달 전보다 7.8% 늘었다. 수도권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도는 6만9859건으로 한 달 전보다 14.5% 늘어났으며 인천은 1만4174건으로 21.1%나 급증했다.

이 같은 흐름을 종합해보면 매수자들이 지난여름 ‘불장’ 혹은 ‘묻지 마 매수’보다는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기 상승에 따른 피로감, 금리 인상, 대출 규제 등이 겹쳐 매수세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매물이 씨가 말랐던 지난여름과 달리 시세보다 호가를 낮춘 급매물이 나와도 매수자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거래가 안 된다.

이러다 보니 집값이 하락하는 곳도 제법 늘어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회재 의원이 국토교통부의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동향’ 자료를 분석한 결과 9월 서울에서 직전 거래 대비 가격이 하락한 계약은 35.1%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20.8%)보다 14.3%포인트 늘어난 수준이다. 올 들어선 월별 최고치다.

그렇지만 이런 통계만으로 집값 오름세가 꺾였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일부 지역에서는 신고점을 경신하는 곳도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격지표 같은 다른 통계는 여전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10월 둘째 주 기준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보다 0.27% 올랐다. 수도권(0.34%→0.32%), 서울(0.19%→0.17%)은 상승 폭이 약간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주간 단위 0.2~.03%는 연간 상승률로 환산하면 10~15%에 달하는 것이다. 급등세가 다소 진정되고 있을 뿐 집값이 완전히 잡혔다고 보긴 힘들다는 것이다.


향후 집값의 변수는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에서 다주택자들의 양도세 중과세로 매물이 많지 않다. 공급 측면에선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어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나기 힘들다. 단기적으로 시장 흐름의 변화는 매수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 수요는 공급보다 훨씬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매수자들이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대출과 세금 규제 등 여러 변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집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집은 있지만 빚이 많은 하우스푸어 사태가 일어났던 2012년 4분기 저점에 비해 아파트값이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 이상 올랐다. 아무리 실수요자라도 장기 상승에 따른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올 들어서도 급등세는 계속되고 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전국 아파트값이 16% 올랐다. 2002년(22.7%) 이후 최고치다. 서울(13%)보다 경기도(24%)나 인천(25%)이 더 올랐다. 30대를 중심으로 ‘탈서울 내 집 마련 수요’가 수도권으로 몰린 데다 GTX 같은 광역교통망에 대한 기대로 ‘서울의 광역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미 집값이 많이 오르면서 상승 에너지를 쏟아 추가 상승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더욱이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금융 당국이 대출 규제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전세대출, 마이너스통장까지 전방위에 걸쳐 대출 옥죄기가 심해지고 있다. 금융 당국의 고강도 규제로 금융권 가계대출 중단 사태가 점차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0.75%)를 연내에 추가적으로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집을 산다는 것은 생애에서 가장 큰 쇼핑이다. 고가 자산이므로 대출을 안고 매입할 수밖에 없다. 대출 규제가 심해지고 금리까지 오르면 수요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

다만 전세난이 여전하고 양도세 중과세로 매물이 많지 않아 당장 집값이 크게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장은 거래량과 상승률이 둔화하는 양상이 나타날 것이다. 적어도 1~2개월은 지켜봐야 추세적 흐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계륵 장세다. 사기도 겁이 나고 팔기도 겁이 난다.

또 하나의 변수는 대선이다. 내년 3월에 치러질 대선 결과가 부동산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 여야 후보의 부동산 공약이 180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적인 투자자라면 대선까지는 시장을 관망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전망에 너무 목숨 걸지 말라. 생각보다 전망이 잘 안 맞기 때문이다. 전망보다는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나의 대응이 중요한 것이다.


불확실 장세에 대처하는 자세

지금과 같은 안갯 속 장세에서는 시장을 좀 멀리 바라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평균회귀 현상을 받아들이면 합리적 사고에 도움을 준다. 부동산에서는 영원한 호황도, 영원한 불황도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은 불황과 호황을 반복하는 사이클이다. 그래서 ‘일은 반드시 바른 곳으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을 빗대 사필귀평(事必歸平)으로 표현한다. ‘세상일은 반드시 평균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오늘 집값이 오르면 내일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른바 ‘지속 편향’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울듯 가격도 많이 오르면 내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불확실성이 증대된 만큼 무리한 투자보다는 안전 투자로 접근을 하는 것이다. 지렛대를 최대한 활용하는 공격적인 투자보다 자기 자본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좋다. 이럴 때일수록 일희일비하기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시장을 멀리 바라보는 망원경이 필요하다.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서로 오간다는 ‘사이클적인 사고’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