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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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필 KAIST 문술 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지식재산대학원프로그램(MIP) 책임교수
박성필 KAIST 문술 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지식재산대학원프로그램(MIP) 책임교수

특허제도는 ‘정부와 거래(bargain with the government)’다. 발명 내용이 공개되는 대가로 출원 후 20년 시점까지 배타적 권리가 보장된다. 공개된 발명은 추가적인 발명의 기반이 되고, 이러한 혁신의 연속은 산업 전체를 활성화한다. 그런데 혁신적인 무기 체계 발명에 대해서는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미국의 IP 정책이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에게는 독일군의 불발탄 처리가 큰 골칫거리였다. 도심 한복판에 떨어진 불발탄은 해체되기까지 그 일대의 일상을 마비시켰다. 영국군 폭발물처리반의 인명 피해도 컸다. 히틀러의 독일 기술자들은 포탄의 뇌관 작동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량해서 폭발물처리반의 작업을 더 어렵게 했다. 독일군 포탄은 낙하 즉시 또는 낙하 후 일정 시간 후에 터졌다. 지연 시간의 장단도 설정하기 나름이었다. 낙하 후 수일이 지난 불발탄이 해체 작업 중 비로소 폭발하는 일도 흔했다. 1940~41년 런던 대공습 때는 독일군 포탄에 헤르베르트 륄레만(Herbert Rühlemann)이 발명한 전기식 뇌관이 적용됐다. 영국군 폭발물처리반의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륄레만의 전기식 뇌관 기술이 독일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이미 특허로 등록돼 있었던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라인메탈이 1920년대 중반부터 륄레만의 발명을 특허 출원해 대부분 1930년대 초반에 등록받았던 것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시점에 이 기술은 이미 특허공보로 공개돼 있었다. 이에 영국군은 불과 몇 주간의 분석으로 안전한 불발탄 해체 매뉴얼을 만들 수 있었다. 특허발명의 공개제도가 영국군 병사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무기라고 불리는 핵폭탄은 미국 주도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되었는데, 그 발명의 대부분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윌슨센터는 2017년 정보공개법을 근거로 에너지부(DOE)가 공개한 맨해튼 프로젝트 발명 목록을 게시했다. 이 목록에는 194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출원된 원자력과 핵무기 관련 약 1500개 발명의 명칭이 적혀 있다. 각 항목의 일련번호가 연속되지 않고 공백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실제 발명은 목록상 숫자의 몇 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목록의 발명 상당수는 전후인 1950년대에야 등록됐다. 물론 맨해튼 프로젝트 관련 발명 중에도 여전히 예외가 적용되어 공개되지 않는 것도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 발명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는 미국 원자력법(Atomic Energy Act)이었다. 

미국 정부의 핵무기 특허 정책은 정부와 거래의 예외가 적용된 사례다. 당시 미국은 나치 독일과 치열한 핵무기 개발 경쟁을 벌였다. 나치 독일이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할 의지나 능력이 없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역사적 진실과 관계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상황은 미국 정부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거대한 투자와 비밀특허제도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7년 이미 비밀특허제도를 입법화했다. 기술이 공개되면 전쟁 수행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특허 출원에 대해 미국특허청(USPTO)이 그 기술 내용의 비공개, 특허 등록의 연기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였다. 1940년 연방의회는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이 법을 재정비했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USPTO는 1만1000건의 특허 출원에 대해 비밀 보전 명령을 내렸다. 명령받는 출원인은 USPTO의 허락 없는 발명 공개와 해외 특허 출원이 금지됐다. 위반 시 징역과 벌금, 기존 특허의 몰수와 향후 특허 출원 금지도 감수해야 했다.

지금은 1940년대와 달리 전 세계 특허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확인되는 시대다. 특허 출원 후 18개월이 지나면 출원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발명의 기술 내용이 공개된다. 기술에 대한 정보가 전쟁 양상을 바꾼다는 전제하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무기 체계에 적용될 수 있는 기술 정보의 전략적 가치가 큰 관계로 미국 외에도 여러 나라가 그러한 기술 공개를 막는 입법을 도입했다. 일본도 2023년부터 시행 예정인 경제안전보장추진법 제5장에 특허 출원 비공개제도를 규정했다. 핵 또는 무기 개발 등 국가 안보와 관련한 특허 출원의 공개 제한과 정보 보전 조치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우리 특허법 제41조도 국방상 필요한 발명에 대해 정부가 외국 출원을 금지하거나 비밀 취급 명령을 할 수 있고, 특허받을 수 있는 권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의 국정과제 22번에도 ‘비밀특허제도 도입’이 언급돼 있으므로 조만간 보다 체계적인 비밀특허제도가 입법화될 것이다.

국방 산업은 시장 원리보다 국가 안보를 중시해야 할 영역이므로 정부와 거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한편 최근 무기 체계는 통신, 네트워크,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등 민간의 첨단 ICT 기술과 전통적 무기 제조 기술이 융합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민군 공용 기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이다. 국방 산업의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비밀특허제도 도입 시에도 사안별로 구체적인 요건과 체계적인 절차 규정들이 잘 조율돼야 할 필요가 있다. 기존 부정경쟁방지법, 산업기술보호법, 대외무역법, 올해 8월부터 시행되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 등 관련 분야의 다른 제도들과 조화도 고려해야 한다. 매우 벅찬 과제임이 분명하다. 정부와 거래라는 특허제도의 기본 취지와 국가 안보 및 경제 안보의 취지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입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