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가치가 7월 13일(미국 현지시각) 장중 유로당 0.998달러로 하락,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1유로=1달러’라는 최저 방어선마저 깨진 것이다. 여기엔 달러 초강세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하는 달러 가치 지표인 달러지수는 2002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9.1%로, 40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발표 직후다.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부담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7월 말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1%포인트 금리를 올리는 ① 울트라 스텝을 결정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다. 한국도 7월 15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달러당 1326.7원까지 오르며 2008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일본 엔화 가치 역시 달러당 엔화 환율이 138엔까지 올라, 2000년대 들어 역대 최저로 평가절하됐다. 기축통화인 달러 초강세로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통화 가치가 절하돼 수입 원자재가 더욱 비싸지게 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달러 강세 영향까지 겹쳐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달러 강세로 자국 기업들의 수출 제품 가격이 비싸지면서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필자는 달러 강세가 멈추기 위해선 미국 연준의 정책 기조 변화 같은 정부 정책 입안자들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인플레 우려가 해소됐다는 증거가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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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오닐(Jim O’Neill) 범유럽 보건·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전 영국 재무장관
짐 오닐(Jim O’Neill) 범유럽 보건·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전 영국 재무장관

2022년 상반기는 암울했다. 주가는 급락했고, 국채 가격까지 하락하고 있다. 위험자산인 암호화폐 가격 역시 폭락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미국 달러는 20년 만에 초강세 국면에 접어들었다. 유로화나 엔화 가치 대비 거의 20% 넘게 치솟았는데,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 드문 일이다. 필자는 투자자들이 보유한 달러 매도(다른 통화로 환전)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최고치를 찍었다고 본다. 문제는 치솟는 달러 가치가 하락하기 위해선 정책 입안자들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프랑스, 서독, 일본, 영국, 미국이 스위스의 프랑화, 독일의 마르크화, 일본의 엔화 그리고 영국의 파운드화의 가치 상승을 유도하고 미국 달러 강세를 완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맺은 1985년 ② 플라자 합의를 생각해보자. 아니면 1998년, 달러 강세 정책 노선인 ③ ‘루빈 독트린’을 포기하고 달러 가치 하락 정책을 펼친 미국 정부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정책 입안자들이 직접 시장에 개입해 달러 하락을 용인하거나, 유도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통화 긴축에 나섰다. 투자자들은 달러를 안전 자산으로 보고, 달러 매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달러 초강세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역풍이 불면 달러 가치가 내릴 수도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그럼 어떤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걸까? 

첫 번째 역풍은 연준이 갑자기 통화 긴축의 정책 기조를 완화하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지금 바로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최근 미국 채권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금융시장이 내년 연준의 금리 인하를 예측해 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달러 강세가 약세로 전환될 시점이 그리 먼 미래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전에 한 유명 펀드매니저가 필자에게 “연준에 대해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어느 시점에는 분명히 연준이 관점을 바꾸리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 시점이 임박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역풍은 다른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자체적인 긴축 정책을 시행해 미국 연준의 긴축 속도를 월등히 앞지르기 시작하는 경우를 가정해볼 수 있겠다. 물론 상대적으로 달러 강세가 일시적으로 잡히긴 하겠지만, 대부분 국가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시나리오도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의 지배가 지속되는 이유는 달러에 견줄 만한 전략적 대안이 될 통화가 없기 때문이다. 달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화로 유로화가 있지만, 아직 유럽연합(EU) 전체를 포괄하는 단일 유로 채권조차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중국 위안화가 그럴듯한 대안이라고 주장하지만, 위안화 사용 국가가 많지 않아 당장 위안화가 달러 패권을 위협하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달러 강세는 미국 재무장관이 달러 환율이 너무 올랐다고 판단해 이를 약화하기 위해 정부의 시장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면 달러 약세로 반전되곤 했다. 필자는 이 시나리오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재임 기간 중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해소됐다는 증거가 더 많아질 때까지는 그러한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울트라 스텝은 한 번에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상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6월 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울트라 스텝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아직 미국 연준이 울트라 스텝을 단행한 적은 없다. 

연준은 지난 5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을 시행했다. 연준이 빅 스텝을 시행한 건 2000년 5월 이후 22년 만이었다. 지난 6월에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바 있다. 자이언트 스텝 시행은 1994년 11월 이후 28년간 없었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의 재무장관들이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미국의 달러 가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달러를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대비 절하하기로 한 합의를 말한다. 1980년 중반까지 미국이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강세를 지속했다. 반면, 다른 통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한 상황이었다. 플라자 합의 후 2년 동안 달러 대비 엔화는 66%, 마르크화는 57% 각각 절상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은 수출 경쟁력 상실을 우려해 1987년 플라자 합의 이행을 중단했다. 한편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지만, 엔화 강세에 대응하려는 일본의 저금리 정책이 버블을 키워 버블 붕괴의 주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루빈 독트린은 달러 강세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로버트 루빈(Robert Rubin) 미국 재무장관의 믿음을 토대로 ‘슈퍼 달러’ 시대를 지향한 정책 노선을 말한다. 1995년 4월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가 성사된 이후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루빈 독트린’ 시대가 열렸다. 당시 달러당 일본 엔화 환율은 79엔에서 148엔까지 급등, 엔화 가치는 크게 내렸다. 달러 강세로 신흥국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들면서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촉발됐다. 이를 두고, 강달러 시대를 주도한 당시 재무장관 이름을 따 ‘루빈 쇼크’라고도 불렀다. 미국 역시 2000년 이후에는 강달러의 부작용 탓에 ‘닷컴 버블 붕괴’라는 위기를 겪어야 했다.

짐 오닐

정리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정리 김보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