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원래 헤리티지 마케팅(Heritage Marketing)은 관광 마케팅에서 유래했다.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이나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을 본 사람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진짜 볼 것 없더라”라고. 

오줌싸개 동상은 14세기의 전설적인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았다면 자그마한 조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인어공주 동상도 그 존재감이 미미했을 것이다. 이처럼 관광지 역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관광객을 유인하는 마케팅을 헤리티지 마케팅이라고 한다. 2010년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올드 브리타니아(Old Britannia)’를 내세웠다. 영국 관광 산업을 세계 5위권으로 끌어올리려면 영국의 역사 유물과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외부 공사 현장. 사진 바르셀로나시 홈페이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외부 공사 현장. 사진 바르셀로나시 홈페이지

현재 진행형인 헤리티지 마케팅의 독보적인 사례도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이다.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그런데 아직 완공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2년 전, 코로나19 여파로 건축에 필요한 예산이 줄어서 2026년 완공도 불가능해졌다는 발표도 있었다. 성당 건축 비용을 가톨릭 신자들의 기부금과 관광객이 사는 입장권 수입으로 충당한 탓이다. 달리 말하면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건축물을 보려고 관광객이 왔고, 그 관광객의 입장 수입으로 공사를 이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성당은 20세기의 미켈란젤로로 추앙받았던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한 것이다. 1882년 공사를 시작해 1926년 가우디가 죽을 때까지도 일부만 완성한 상태였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미완성 작품을 보려는 관광객으로 늘 붐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건축물 기원과 역사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마케팅하는 현재 진행형 헤리티지 마케팅이다. 

가브리엘 샤넬. 사진 샤넬공식 온라인 스토어
가브리엘 샤넬. 사진 샤넬공식 온라인 스토어

샤넬과 허쉬의 헤리티지 마케팅·브랜딩

주로 관광 마케팅에서 쓰였던 헤리티지 마케팅을 앞장서서 기업 마케팅으로 도입한 것은 명품 브랜드들이었다. 이제 헤리티지 마케팅은 관광 마케팅 분야보다 기업 브랜딩 수단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샤넬은 2007년 모스크바의 푸시킨 미술관, 2011년 상하이 현대 미술관과 베이징 국립 예술 미술관, 2013년 광저우 오페라하우스와 파리의 팔레 드 도쿄 그리고 2014년 서울에서 브랜드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에서는 샤넬의 패션, 주얼리, 시계, 향수 등 창작품과 함께 다양한 사진, 책, 오브제, 원고, 예술 작품을 통해 창립자인 가브리엘 샤넬의 삶을 재조명했다. 유료 전시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돈을 내고 이 브랜드의 선전물을 본다. 이처럼 브랜드 기원과 역사성에 기반한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창출하는 노력을 헤리티지 브랜딩이라고 한다. 

브랜드 역사성으로 화제를 일으키는 노스탤지어 마케팅, 레트로 마케팅은 넓은 의미에서 헤리티지 마케팅에 속할 수 있다. 차이는 ‘경험 전달의 지속성’에 있다. 일회성 마케팅 프로그램이면 헤리티지 마케팅이 되고 브랜드 역사를 활용해서 새로운 소비자 경험을 지속해서 전달한다면 헤리티지 브랜딩이다. 핵심인 지속적인 브랜드 경험을 위해 아예 전시장을 만드는 브랜드도 있다. 기술적 전통을 강조하려는 자동차 회사는 그들의 역사를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위해 자체 뮤지엄을 운영한다. 포르쉐, 폴크스바겐, BMW, 아우디, 벤츠, 도요타, 닛산, 포드, 랜드로버 등도 모두 자체 뮤지엄이 있다. 탁월한 예술적 감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뮤지엄을 운영하는 브랜드도 있다. 미슐랭 박물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드 등은 여기에 속한다.

브랜드 기원과 역사성을 강조하는 헤리티지 마케팅이 또 다른 사업이 되어 버린 매우 미국적인 사례도 있다. 초콜릿 브랜드 허쉬의 설립자인 밀턴 스나블리 허쉬가 만든 허쉬파크(Hershey Park)가 그 주인공이다. 원래는 직원의 여가 공간으로 만들어졌던 이 공간에 1908년 회전목마와 원형극장이 세워졌다. 점차 시설이 늘어가더니 허쉬는 1971년, 허쉬파크를 지역 놀이동산이 아닌 테마파크로 바꾸기 시작했다. 근처에는 허쉬스 초콜릿 월드가 있다. 이제 허쉬파크는 허쉬파크 스타디움, 허쉬파크 아레나, 허쉬 박물관 등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단지를 이루고 있다. 

미슐랭 박물관 내부. 사진 미슐랭 박물관 홈페이지
미슐랭 박물관 내부. 사진 미슐랭 박물관 홈페이지

롯데리아와 레트로 브랜딩

역사성에서는 뒤지지만 강력한 이야기로 무장한 신흥 브랜드와 싸우기 위해서 역사가 깊은 브랜드는 이야기가 축적된 결과물인 히스토리(역사)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대중 브랜드도 헤리티지 마케팅과 브랜딩에 나서는 이유다. 2016년 코카콜라는 병으로 출시된 지 100년이 됐다며 ‘100년의 헤리티지’ 행사를 펼쳤다. 시대를 담는 타임캡슐이란 느낌의 10병짜리 한정판 패키지를 선보였고, 동시에 130년의 브랜드 역사를 돌아보는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미 1886년에 나온 브랜드라는 것을 자랑한 것이다. 

산업화가 늦었던 우리나라는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마케팅이 흔하지 않았으나 21세기 들어 레트로(복고) 마케팅 형태로 등장했다. 여기에 현대적 감각이 더해졌다는 뜻의 ‘뉴트로(Newtro·신복고)’가 트렌드로 등장하면서 헤리티지 마케팅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아오츠카의 ‘오란씨’, 롯데칠성음료 ‘레쓰비’ 등은 과거 패키지를 재등장시켜 추억에 호소하기도 했다. 2019년 롯데리아는 40주년을 맞아 단종된 제품 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햄버거를 선정해 한정 기간 재출시하는 행사를 열었다. 네티즌 사이에 자발적인 투표 독려까지 생겨나면서 많은 소비자가 행사에 참여했고 오징어버거, 라이스버거의 마니아가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여기서 끝났다면 롯데리아도 오란씨나 레쓰비 같은 재미있는 레트로 마케팅으로 그쳤을 것이다. 현재 서울역에 있는 롯데리아에서는 다른 매장에서 팔지 않는 메뉴를 팔고 있다. 롯데리아는 서울 청량리역사점과 서울역사점에서 라이스버거 4종을 테스트 판매 중이라고 한다. 아침 식사 수요가 많은 기차역 매장에서 테스트 판매를 거쳐 전 지점으로 확산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1999년에 처음 선보인 라이스버거가 40주년이란 계기를 맞아 소비자의 요청을 받으면서 정식 재출시된다면 일회성 레트로 마케팅을 넘어선 본격적인 레트로 브랜딩이 될 수 있다. 브랜딩 차원에서 전개할 수 있는 헤리티지 마케팅의 출발은 레트로 브랜딩이다. 이 방식은 과거의 향수에 호소한다는 점에서는 레트로 마케팅을 닮았고 현재의 감성에 맞게 재해석한다는 점에서는 뉴트로 마케팅과 비슷하다. 

현대자동차의 콘셉트카 ‘N비전74’. 사진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현대자동차의 콘셉트카 ‘N비전74’. 사진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근본적인 차이는 지속성과 목표에 있다.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과 브랜드 철학이나 가치를 각인시키겠다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레트로 브랜딩은 특별해진다. 폴크스바겐의 뉴 비틀과 BMW의 미니가 레트로 브랜딩이자 헤리티지 브랜딩의 성공 사례다. 2022년 7월 우리나라에서도 레트로 브랜딩, 헤리티지 브랜딩의 모범 사례가 될 만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현대자동차의 콘셉트카 ‘N비전74’가 글로벌 자동차 마니아를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74’는 현대자동차의 고유 모델 포니가 나온 해를 뜻한다. 네이밍에 헤리티지 브랜딩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