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유럽이 ‘디지털 경제’ 구축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요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회복과 동시에 차세대 디지털 산업을 육성해 새롭게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은 지난해 7월 코로나19로 인한 특별 정상회의에서 EU 경제회복기금 7500억유로(약 1009조원)를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올해 2월부터 EU 회원국별 할당액에 맞게 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회원국은 기금 중 20%를 디지털 경제 촉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3월 9일(이하 현지시각)에는 향후 10년 동안 진행될 유럽의 디지털 전환 청사진을 내놨다. EU는 2014년부터 디지털 중심의 경제와 관련 법 마련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EU는 이번을 디지털 경제 구축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미국과 아시아 경쟁자들에게 영영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EU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디지털 기술 개발과 인적 자원 마련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동시에 디지털 통제 및 양극화, 가짜뉴스 등 디지털화로 인한 문제를 보완할 방안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U 집행위원회는 3월 9일 유럽의 ① ‘디지털 10년’ 비전을 발표했다. 숙련된 디지털 기술이 있는 인력 양성, 디지털 인프라 구축, 공공 서비스 디지털화, 디지털 비즈니스 전환 등 네 개 핵심 분야에 집중하는 정책 목표를 내세우며 디지털 혁신에 나선다. 기술로 소비자와 기업 모두를 더 부유하게 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차원이다. 유럽은 시장을 개방해 더 경쟁력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기업이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며 혁신할 수 있는 그런 시장 말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디지털화는 경제·사회적 ② 회복 탄력성을 키우고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다. 현재 세계 시장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을 두고 지정학적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EU는 디지털 전환에 대한 비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 비전은 개방된 사회, 법과 규칙의 준수, 기본적 자유라는 세 가지 원칙을 절대 위배해선 안 된다. 디지털 기술을 지배와 통제 수단으로 악용해도 문제다.


EU의 디지털 10년 전략

EU의 디지털화는 전 세계의 디지털 전환에 큰 도움이 된다. 유럽의 ‘디지털 10년’ 전략은 유럽이 강력한 동맹을 형성하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나라와 더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요구한다. 이 외교 관계는 전통적 양자외교와 다자외교 모두를 포함한다. 기술 혁신의 과실은 투자가 자유롭게 이뤄지는 개방된 디지털 경제가 유지될 때 누릴 수 있다. 또한 디지털 헬스 솔루션 도입, 테러와 전쟁, 기후 변화 대응, 생물학적 다양성 보호, 자연재해와 전염병 예방 등 많은 분야에서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국제적 기술 협력이 필요하다.

반대로 디지털화는 위험도 수반한다. 대중 감시와 국가 주요 인프라에 대한 사이버 공격부터 사회를 양극화하고 민주주의 기반을 약화하기 위해 정부가 조장하는 가짜뉴스까지 다양하다. 이는 우리가 개방과 다른 중요한 가치 간 균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디지털 시장의 평등, 사이버 공간의 안보, 인터넷상의 자유 등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인터넷상의 자유에는 집회·표현의 자유와 차별 금지 원칙, 사생활 보호 원칙이 모두 포함된다.

EU는 유연한 디지털 공급망 건설 차원에서 미국 정부와 소통하고 있고, 합동 무역기술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도 했다. 사람 중심의 디지털화라는 비전을 공유하는 글로벌 연합체를 형성하기 위한 방법도 모색 중이다.

유럽은 혁신 기술과 디지털 경제 위에서 효율적인 민주주의 거버넌스를 제공하기 위해 협력할 의사가 있는 다른 국가와 힘을 합쳐야 한다. 개방된, 중앙집중화하지 않은 인터넷과 평등한 디지털 시장, 사이버 공간에서의 안보, 인터넷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면 누구든 이 연합체에 참여할 수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왼쪽)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3월 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왼쪽)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3월 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사이버 보안 체계 구축도 중요

인류는 협력하며 공유한 가치를 바탕으로 AI를 포함한 첨단 기술의 표준을 만들 수 있다. 협력이란 누군가가 만들어낸 기술 혁신의 과실을 함께 나누고 ③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는 더 강력한 보호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관이 같은 파트너들과의 연합은 우리 디지털 공급망의 안정성을 보장함으로써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안보 증강과 회복 탄력성 유지의 원천이 될 것이다.

향후 10년의 디지털 전환기는 유럽이 20~30년간 지속 성장하기 위해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디지털 기술이 더 포용적이고 전 세계 공공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걸 유럽은 잘 알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2005년 2%에 불과했던 인터넷 접속 가능 인구가 2019년에 40%로 늘어났는데, 이 기간 청소년 교육률과 여성 고용 유지율도 증가했다.

EU는 재정과 기술적 지원을 결합하는 형태로 회원국의 디지털화를 지원한다. 이는 사이버 안보와 데이터 보안 등의 영역에서 회원국들이 각각의 디지털 거버넌스 체계를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디지털 협력을 위한 펀드는 우리 파트너들과 함께 다양한 기술 혁신 아이디어의 현실화 가능성을 탐구하는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결국 안전하면서 개방된 인터넷은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 사회, 민간 영역, 학계까지 포함하는 더 포용적인 다자주의를 요구한다. 유럽은 현실 공간에서 그랬듯이, 사이버 공간에서도 글로벌 핵심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1948년 세계 인권 선언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립하고, 차별 금지와 사생활 보호 권리,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다. 디지털 혁명이 이 가치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다.


Tip

유럽이 향후 10년 시행할 디지털 경제 전략이다. EU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의 최소 20%를 유럽 내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럽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10%에 불과했다. 정보기술(IT) 전문 기술 인력도 현재 780만 명에서 2030년까지 2000만 명으로 확대한다. 또한 주요 인구 밀집 지역의 5세대 이동통신(5G) 확대, 양자 컴퓨터 도입, 빅데이터·인공지능(AI) 활용 유럽 기업 비율 70%로 확대, 주요 공공 서비스 및 의료 데이터 디지털화, 80% 시민에 대한 디지털 ID 부여 등도 추진한다.

회복 국면에서 위기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닌,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 회복 이상의 성장을 이끄는 것을 뜻한다. 코로나19로 세계 각국의 정부, 기업들이 펼치고 있는 핵심 전략 중 하나다.

글로벌 보안 기업 체크포인트 소프트웨어 테크놀로지스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계획을 5년 이상 앞당긴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들 기업 중 80%는 디지털화로 인한 사이버 보안 문제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평균 10초에 1번꼴로 랜섬웨어(중요 파일 접근 차단 후 금품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 공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