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는 슬로건을 도입하지 않고 언어적 상징으로 ‘포르투닷(Porto.)’을 내세웠다. 사진 에두아르도 아이레스
포르투는 슬로건을 도입하지 않고 언어적 상징으로 ‘포르투닷(Porto.)’을 내세웠다. 사진 에두아르도 아이레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와인에 와인을 증류한 주정을 넣으면 도수도 강해지지만, 풍미가 좋아지고 변질을 막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정 강화 와인 중에는 포르투갈 ‘포트 와인’이 있다. 포트 와인은 포르투갈의 북부 지방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항구인 ‘오포르투(Oporto·영어로는 the port)’, 지금의 ‘포르투’에서 선적했다고 해서 ‘포트(Porto)’가 이름에 붙게 됐다. 원래 ‘포르투 와인’이라 부르는 것이 맞지만 17세기 후반 영국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영어 발음인 포트 와인으로 오랫동안 불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포르투 와인이 아닌 주정 강화 와인을 포트 와인이라 참칭(僭稱)하는 경우도 많았다. 

포르투갈은 1990년대 들어서 다른 나라에서 포트라는 이름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포르투갈산 포트 와인의 명칭을 포르투로 못 박았다. ‘지리적 표시제(Geographical In-dication)’의 강화라고 보면 된다. 지리적 표시제는 특정 상품의 품질, 특징 등이 본질적으로 그 상품의 원산지로 인해 생겼을 경우 그 원산지 이름을 상표권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며 지식재산권협정(TRIPs)을 채택하고 난 이후 지리적 표시제는 브랜드 이름 짓기(네이밍)에서 중요한 이슈가 됐다. 이 협정에는 ‘원산지를 오인하게 할 수 있는 상표는 각국이 등록을 거부하거나 무효로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때문에 이전에는 발포성 와인을 모두 ‘샴페인’이라고 불렀지만, 지리적 표시제가 강화되면서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영어식으로 읽으면 샴페인) 지역의 발포성 와인만 샴페인으로 부를 수 있게 됐다.


아줄레주로 재현된 아이콘은 단독으로 또 동시에 조합해서 쓸 수 있게 ‘타일 바이 타일(tile by tile)’ 형태로 디자인됐다. 사진 에두아르도 아이레스
아줄레주로 재현된 아이콘은 단독으로 또 동시에 조합해서 쓸 수 있게 ‘타일 바이 타일(tile by tile)’ 형태로 디자인됐다. 사진 에두아르도 아이레스

유서 깊은 도시 포르투

리스본에 이어 포르투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포르투는 포르투갈이란 국가명의 어원이 될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다. 포르투갈 건국의 기원이며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해양 무역의 거점 도시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 때에는 전초기지이기도 했으니, 역사가 오래됐다고 할 만하다. 포르투라는 지명도 이미 2000년 전 고대 로마인이 ‘항구(portus)’라고 이름 붙인 데서 유래한 것이다. 중세 시대에도 번성했던 곳이라 도시에 포르투 대성당을 비롯해 여러 유적이 남아있다.

다만 포르투는 서울처럼 전통과 현대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도시는 아니다. 그저 오래된, 유서 깊은 도시에 가깝다. 1996년 유네스코가 포르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또한 전체 도시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구도심에 한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르투는 2014년 본격적인 도시 브랜딩에 착수했다. 

브랜드 전략은 우리 브랜드를 두고 사람들이 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연상·단어·문장·그림 등을 강렬하게 떠올리게 하면 좋을지 결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곧 브랜드의 목표 인식,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된다. 아이덴티티란 말 때문에 ‘정체성’이라고 단순 번역할 수도 있지만,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정체성이라는 현재성에 목표 이미지라는 미래성이 합쳐진 개념이다. 게다가 원래부터 도시 브랜드는 상품 브랜드와는 달리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한두 단어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 포르투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지만 ‘로마=원형극장’ ‘파리=에펠탑’처럼 포르투 하면 딱 떠오르는 유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항구도시지만 시드니처럼 ‘세계 3대 미항(美港)’이라고 꾸며줄 만한 요소가 없어 항구도시란 사실만을 모티브로 브랜딩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포르투는 오랜 역사가 주는 다양한 유적을 포괄하는 브랜딩이 필요했다. 오래된 도시임에도 정체돼 있지 않다는 것도 알려야 했다. 무엇보다 뭐라도 좋으니 ‘포르투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 무엇’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했다. 쉽지 않은 과제였다.


포르투의 알마스 성당. 외벽이 화려한 아줄레주로 장식돼 있다. 사진 셔터스톡
포르투의 알마스 성당. 외벽이 화려한 아줄레주로 장식돼 있다. 사진 셔터스톡

아줄레주에서 답을 찾다

포르투의 유적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건축물의 ‘장식’이다. 포르투에 있는 성당과 유서 깊은 건축물 대부분은 안팎으로 푸른빛이 도는 세라믹 벽면인 ‘아줄레주(azulejo)’로 장식되어 있다. 아줄레주는 그림을 그려 만든 포르투갈의 도자기 타일이나 파란색이 도는 세라믹 벽면 장식을 뜻한다. 5세기 넘게 계속 이어진 장식물이다 보니 포르투갈 문화의 작지만 독특한 문화적 특징이 됐다. 아줄레주 흔적은 라틴 아메리카와 필리핀 등 옛 포르투갈과 스페인 식민지에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포르투 브랜딩 팀은 아줄레주를 도시의 역사·문화·현대성을 담는 디자인 핵심요소로 활용했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개성이 있는도시, 냉정하게 정의하면 뚜렷이 내세울 것이 없는 도시인 포르투를 어쨌든 하나로 묶는 비주얼 브랜딩에 착수한 것이다. 비주얼 브랜딩은 이렇게 진행됐다. ①도시의 건축물부

터 대표적인 음식까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모두 아이콘으로 디자인한다. ②개발된 각각의 아이콘을 아줄레주로 재현한다. ③아줄레주로 재현된 아이콘은 단독으로 또 동시에 조합해서 쓸 수 있게 ‘타일 바이 타일(tile by tile)’ 형태로 디자인한다. ④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다.

포르투의 비주얼 브랜딩은 도자기 타일인 아줄레주의 겉모습(시각적 특징)뿐 아니라 타일의 쓰임새(용도적 특징)까지 활용하도록 했다. 이처럼 포르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70여 가지 건축·문화·예술 등을 단순한 문양의 아이콘으로 개발하고, 이것들을 타일처럼 이어붙여 연결하도록 했다. 아이콘 조합에 따라 그 모양과 범위는 무한대로 확장된다. ‘따로 또 같이’가 극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알리고 싶은 많은 것이 따로 놀지만 아줄레주라는 공통점으로 묶어 개별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잡았다. 뭐 하나 딱히 내세울 대표적인 소재는 없다는 아쉬움,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다양한 소재가 있다는 특성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한 셈이다. 

작은 타일로 제작되기에 시민들이 직접 하나씩 타일을 붙이기도 쉽다. 장소나 물건 등 어떤 것에도 쉽게 디자인을 도입하고 변형할 수도 있다. 거주자의 참여를 통해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플렉서블(flexible)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이를 통해 포르투는 멜버른과 함께 비주얼 브랜딩으로 성공한 도시 브랜드의 모범사례, 특히 플렉서블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수많은 추종 도시를 만들어내는 선도자가 됐다. 

비주얼 브랜딩 못지않게 포르투의 버벌 브랜딩(네이밍이나 슬로건 등)도 재미있다. 포르투는 슬로건을 도입하지 않고 언어적 상징으로 ‘포르투닷(Porto.)’을 내세웠다. 두 가지 의도에서였다. 인터넷 세상과 현대적 도시라는 느낌을 풍기려 했던 것이다. 영어권에서 ‘.’은 마침표(period)로 여겨진다. 즉, 마침표는 논쟁이 더 필요 없다는 확신을 나타내는 말이다. ‘포르투는 그 자체로 포르투’라는 자긍심, ‘포르투면 된 거지 뭐가 더 필요해’라는 조금은 과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브랜딩을 담당한 팀도 약간은 쑥스러웠는지 슬로건으로는 차마 도입하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