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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법학, 사법연수원  36기,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판사, 전 연세대학교 법학 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박지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법학, 사법연수원 36기,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판사, 전 연세대학교 법학 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서로 다른 국적의 기업들이 계약을 체결할 때는 해당 계약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어떠한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할지에 관한 조항을 미리 마련해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통상 ‘분쟁 해결(Dispute resolu-tion) 조항’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 회사와 한국 회사가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분쟁이 발생했을 때 ①미국 법원에서 소송으로 해결하는 방안 ②한국 법원에서 소송으로 해결하는 방안 ③제3의 중립국에서 소송으로 해결하는 방안 ④소송 외의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①의 경우는 한국 회사의 입장에서, ②의 경우는 미국 회사의 입장에서 선택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우선 상대방 국가의 소송절차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점에서 리스크가 적지 않고, 막연하게나마 해당 국가 법원이 자국 당사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③의 방안 역시 쌍방 당사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쟁 해결 절차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대안이 되기는 힘들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서로 다른 국적의 기업들이 상사 거래를 함에 있어서는 통상 국제중재로 관련 분쟁을 해결하기로 미리 약정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중재로 분쟁을 해결하는 경우 중재판정을 집행하는 것이 외국 판결을 집행하는 것보다 훨씬 절차가 간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본 글에서는 이런 점과 아울러 국제중재판정을 집행하는 단계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승소판결에도 집행에 추가 노력 필요

국내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더라도 패소 당사자의 집행재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현실적인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즉 법원으로부터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는 승소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패소 당사자인 피고의 집행재산을 물색해서 이를 적절한 시기에 집행하지 못하면 원고의 채권을 상당 부분 실현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민사소송(본안)을 제기하기 전 미리 상대방의 집행 가능한 재산(부동산, 예금채권, 물품 대금 채권 등)을 알아본 후 해당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하는 사례가 많다. 승소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피고의 재산현황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집행의 문제는 국제중재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존재하는데, 외국 판결 집행과 비교해 국제중재는 그 절차가 훨씬 간편하다. 외국 판결이나 국제중재 모두 이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법원에서 ‘해당 외국 판결 내지 중재판정을 집행한다’는 판단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 별도의 재판을 거쳐야만 한다(물론 패소 당사자가 외국 판결이나 중재판정에 따라 임의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면 이런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으나, 쌍방 당사자가 치열하게 다투었던 경우 특히 분쟁금액이 상당 규모 이상일 때에는 패소 당사자가 임의 이행하는 사례가 흔치 않다). 

국제중재판정을 국내에서 집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 및 요건은 우리 중재법 제37조 내지 제39조에서 규율하고 있다. 당초 우리 중재법은 “중재판정의 승인 또는 집행은 법원의 승인 또는 집행판결에 의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판결’ 절차에 따라 중재판정의 승인·집행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었고, 따라서 원칙적으로 변론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2016년 5월 29일 중재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중재판정의 승인·집행을 ‘판결’이 아닌 ‘결정’으로 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반드시 변론기일을 열 필요는 없고, 심문기일도 가능해짐으로써 보다 신속한 중재판정 집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덕분에 실제 중재판정 집행에 소요되는 시간도 많이 단축됐다. 

이에 반해 외국 판결은 여전히 그 승인·집행이 ‘판결’의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필수로 변론기일을 열어야 하고, 때문에 중재판정 집행보다 시간과 그에 따른 비용이 더 들게 된다.


중재판정 집행 거부는 매우 예외적

다음으로 집행 거부 요건에 관해서 살펴보자. △국내 중재판정은 중재법 제38조에 정한 사유 △외국 중재판정은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통상 뉴욕협약으로 지칭)’에서 정한 사유가 있는 때에만 예외적으로 그 집행이 거부되고, 해당 사유가 없으면 집행되는 것이 원칙이다. 뉴욕협약에 따른 집행 거부 사유 중 실무상 빈번하게 제기되는 것 중 하나로는 뉴욕협약 제5조 제2항 (b)호에 규정된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이 그 국가의 공공의 질서에 반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와 관련, 우리 법원은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이 집행국의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를 해치는 것을 방지하여 이를 보호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은 토대 아래 우리 대법원은 위 조항에 관해 국내 사정뿐만 아니라 국제적 거래 질서의 안정이라는 측면도 함께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또 외국 중재판정에 적용된 외국법이 우리나라 실정법상 강행법규에 위반된다고 해 바로 승인이나 집행 거부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중재판정을 인정할 경우 그 구체적인 결과가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할 때에 한해 그 승인과 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취하고 있다. 즉, 이런 대법원의 입장을 통해 중재판정의 승인·집행 거부 사유로서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이 우리나라의 공공질서에 반하는 경우’는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인정된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할 수 있다.


국제중재판정 집행이 외국 판결보다 용이

한편, 외국 판결을 집행할 때도 위와 같이 “외국 판결의 승인이나 집행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요건과 상호보증 요건이 구비돼야 한다.

이는 해당 외국 판결이 A라는 국가에서 선고됐다면, 우리나라와 A 사이에 동종 판결의 집행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지 않고, A에서 정한 요건이 우리나라에서 정한 요건보다 중요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A에서 대한민국 판결을 집행하기 위한 요건으로 우리나라에서 A 국가의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 요구하는 정도보다 더 엄격한 수준을 요구하면, 상호보증 요건이 구비되지 않았다고 보게 돼 A에서 내려진 판결의 국내 집행은 어렵게 된다.

반면 국제중재판정을 집행할 경우 이러한 요건이 충족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 집행이 보다 용이하다. 국제 분쟁 국면에서 우리 기업이 국내에서 중재판정 집행사건의 당사자가 되는 때는 주로 중재절차에서 패소한 경우다. 

반대로 외국에서 중재판정 집행사건의 당사자가 되는 때는 중재절차에서 승소해 외국 기업을 상대로 외국에 소재한 재산에 대해 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중재판정의 집행이 거부되는 요건은 매우 예외적이고 제한적이라는 점을 숙지하고, 본 게임인 중재절차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재절차에서 패소하면 집행이 거부된 국내외 판결례를 심도 있게 검토해 중재판정의 집행 단계에서 구제받을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