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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담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서울대 심리학·경제학, 제4회 변호사시험, 제48회 행정고시, 전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 전 산업통상자원부 규제샌드박스 규제수리 워킹그룹 위원
권소담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서울대 심리학·경제학, 제4회 변호사시험, 제48회 행정고시, 전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 전 산업통상자원부 규제샌드박스 규제수리 워킹그룹 위원

우리 기업이 수출한 물품이 전쟁 중인 국가나 테러리스트의 무기 부품으로 사용돼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한다면? 이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우리 기업에도 있는 걸까? 영화 같지만, 완전 허황된 얘기도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러시아와 직간접적으로 거래가 있는 우리 기업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전략물자’에 대해서는 러시아 수출을 차단하고, ‘비전략물자’에 대해서도 미국이 러시아 수출을 제한하는 일부 품목들에 대해서는 우리도 유사한 조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이 수출하는 제품이 그 대상인지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전략물자 수출통제와 對러시아 제재

이번 대러시아 제재 이전에도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은 수출허가를 받아야 할 수 있었다. 즉 우리나라는 국제수출통제체제, 즉 바세나르체제(WA), 호주그룹(AG), 핵공급국그룹(NS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 4개 국제수출통제지침이 정하는 바에 따라 우리 대외무역법을 통해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만 전략물자의 수출을 허가하는 ‘전략물자 수출통제제도’를 도입해 왔다.

전략물자란 재래식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 및 그 운반수단의 제조·개발·사용 및 보관 등에 이용 가능한 물품(물품의 제조·개발 또는 사용 등에 관한 기술 포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위험한 국가 또는 단체에 이전될 경우 국제평화와 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 있어 자유로운 무역거래가 제한되는 물품이다.

문제는 전략물자에 무기 및 그 부품에 해당하는 군용물자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군용과 민간용 모두에 쓰일 수 있는 이른바 이중용도(dual use) 품목이 광범위하게 포함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특정 제품을 수출하려는 경우 해당 제품이 전략물자 중 이중용도 품목에 해당하는지 면밀한 판단이 필요하다. 전략물자 수출입고시에 첨부된 ‘이중용도 품목’ 목록을 보면 크게 ① 알루미늄 합금, 불소화합물, 동·식물병원균 등 특정 소재 및 장비 ② 공작기계, 베어링 등 소재 가공을 위한 기계류 ③ 집적회로, 반도체 생산장비, 이차전지 등 전자제품 ④ 슈퍼컴퓨터 등 컴퓨터 제품 ⑤ 라우터, 스위치, 전파방해 장비 등 전기통신 및 정보보안제품 ⑥ 열화상 카메라 등 센서 및 레이저 ⑦ 항법시스템 등 항공전자 제품 ⑧ 잠수정, 통합항해시스템 등 해양 관련 제품 ⑨ 가스터빈엔진, 무인항공기, 로켓 등 항공우주 및 추진 관련 제품 등 9개 분류 제품이 총 510쪽에 걸쳐 열거돼 있다.

위에서 분류된 대표적인 제품만 살펴봐도 반도체, 배터리 등 우리 주요 기업들이 생산하거나 수출하는 상당수 품목이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중용도 품목은 통상적인 경우에는 수출허가를 받으면 수출할 수 있지만, 이번 러시아 제재에 따라 수출이 금지되면 경우에 따라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전략물자 수출통제제도에는 수출허가뿐만 아니라 ‘상황허가’라는 제도가 있어 우리 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될 수 있다. 즉, 명시적으로 전략물자로 지정된 품목이 아니더라도 대량파괴무기와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 재래식무기의 제조·개발·사용 또는 보관 등의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이 큰 물품을 수출하려는 자는 그 물품의 수입자나 최종 사용자가 그 물품을 대량살상무기 등의 제조·개발·사용 또는 보관 등의 용도로 전용할 의도가 있음을 알았거나 그러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되면 역시 수출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상황허가, 이른바 ‘캐치올 통제’라고 한다. 

즉 상황허가제도는 국제수출통제체제에서 규정하고 있는 통제 품목 여부와 상관없이 대량살상무기 및 이의 운반수단인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모든 품목을 통제하는 제도다. 상황허가 신청 대상은 거래상대방이 유엔(UN) 안보리의 우려 거래 대상자 목록(Denial List)에 등재된 경우 또는 수출 품목이 전략물자 수출입고시에 따른 상황허가 대상 품목에 해당하는 경우 등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비전략물자 중 대러시아 수출 제한 품목에 대해 유사 조치를 도입하는 경우, 우리 정부는 이를 상황허가 대상 품목으로 고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 추후 고시 시점 및 범위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각국 필요에 따른 전략물자 수출통제 변형 및 확장 가능성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국제수출통제체제에 따른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각국의 국가안보 또는 경제안보에 대한 판단에 따라 변형되거나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안보를 명분 삼아 여러 조처를 해왔는데, 그중 수출관리규정(EAR)을 통해 특정 기업 또는 국가로의 수출을 통제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즉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수출통제개혁법 및 EAR에 따라 수출통제를 하고 있는데, 미국의 국가안보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되는 외국인, 외국 기업 또는 단체 등을 규제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이들을 수출통제 제재리스트에 등재하고, 해당 제재 대상자들에게 미국 EAR 대상 품목을 수출할 경우 사전허가를 받도록 요구한다. 중국 화웨이로 가는 반도체 수출을 통제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이번 러시아 제재에도 비전략물자인 57개 품목에 대한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여기서 우리 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는 미국산이 아닌 외국산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산 소재, 부품 또는 기술이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는 경우에는 미국법을 역외로 적용해 수출허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는 경우에도 그 생산에 미국산 부품 또는 기술이 활용됐다면 미국 EAR 수출통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몇 년 전 일본이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항의 표시의 일환으로, 우리 정부가 전략물자 수출통제, 특히 캐치올 통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명분 삼아, 전략물자에 해당하는 일부 품목의 한국으로의 수출허가를 강화하는 조치를 한 것 역시 이런 전략물자 수출통제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일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을 일본 기업이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경우 전략물자 포괄수출허가를 받지 못하게 하고 개별 건별로 개별수출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런 각국 정부의 개별적인 조치는 원칙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 최혜국대우의무 등을 위반하는 것으로 볼 소지가 있으나, WTO 분쟁대응절차가 무력해진 현재 상황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해 대비할 필요가 커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군사 안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제재를 통해 경제 안보적 측면에서 우리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명 제재의 상대방은 국제 합의를 어기고 무력을 행사한 러시아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피해는 우리 수출 기업들에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겪고 있는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우리 기업의 피해도 더 커지지 않도록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