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 살고 있는 제시카 부부가 이웃 일본인 가정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결혼식 당일. 제시카는 식이 끝나자마자 새신랑의 어머니인 교코를 찾아가 축하하며 안으려(hug) 했다. 신랑의 어머니인 교코는 성큼 다가온 제시카를 피해 뒤로 한발 물러났다. 제시카는 신랑의 어머니가 자신의 축하를 받지 않으려는 것으로 알고 금방 얼굴색을 바꿨다.

- 한국의 한 사업가가 캄보디아에 신규 시장 개척 차 출장 갔다. 출장 사흘째 되던 날 그는 현지인 사업 파트너 가정에 초대받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현지인의 아이들에게 줄 선물 꾸러미들을 풀어놓았다. 아이들이 즐거워하자 이 사업가는, 한국에서 늘 그랬듯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사용하라고 말했다. 순간 그 집 아이들과 현지인 파트너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뉴질랜드의 마오리(Maori)족은 인사할 때 소리를 지르며(karanga) 코를 비빈다(hongi).

어느 문화권에 살든지 신체의 접촉 없이 인간관계를 발전시키기는 어렵다. 머리에 손을 대는 동작에서부터 코를 비비고, 입과 볼에 키스하고, 가슴을 껴안고, 손을 맞잡고, 발바닥을 맞추는 동작에 이르기까지 대충 16가지의 신체 접촉(Michael Argyle, <Bodily Communication>, 1975)은 때에 따라선 우호의 상징이나 문화적으로 잘못 오해하면 적대감으로까지 발전된다.

위의 첫 번째 사례에서 미국인 제시카는 신체 접촉(Touching)이 자연스러운 개방적인 환경에서 자란 반면 일본인 교코는 공개적인 신체 접촉을 삼가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제시카는 미국식으로 포옹하려 했고, 이에 대해 교코가 불편함을 표시함으로써 문화 간 마찰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경우 일본인의 결혼식이니 비록 장소가 미국이라 할지라도, 응당 주최자들의 관습이나 풍습에 따라 주는 것이 좋은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사례에서 ‘연장자 우선(seniority : 長幼有序)’인 유교문화권의 한국에서 성장한 한국인 사업가는 한국에서처럼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아이에 대한 보편적인 관심과 사랑의 표현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캄보디아나 베트남 나아가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머리’의 의미는 ‘인간의 영혼이 들어 있는 신성한 곳’임으로 부모 외의 다른 사람들은 만지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세 번째 마오리족의 코 인사는 위의 두 사례와는 달리 신체를 접촉함으로 서로에 대한 개방적이고도 우호적인 마음을 교환하는 상견례 행위다. 이들은 신체의 가장 민감한 한 부분인 코를 서로 비빔으로 상대방의 체취를 가슴속 아니 영혼에까지 간직하려는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이란 책에서 켄 쿠퍼는 나라별로 신체를 접촉하는 횟수를 조사한 바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이 시간당 180회, 프랑스 파리 사람들이 110회, 북미 플로리다 사람들이 2회, 그리고 영국 런던 사람들은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을 조사의 대상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두말할 나위 없이 이들 두 나라는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보다 공개적인 신체 접촉에 대해 더 보수적이거나 부정적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한국의 일반인들은 미국 사람들의 공개적인 포옹이나 스페인 사람들의 아브라쏘(Abrazo : 어깨를 두들기고 양 볼을 비비며 ‘쪽쪽’ 소리까지 내며 하는 인사)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의 프렌치 키스(가장 농도가 짙은 키스)에 대해 ‘상스럽다’ 혹은 ‘천박하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원칙에 살고 원칙에 죽는 독일 역시 신체 접촉에 관한 한 한국과 한 통속이다. 독일에서는 인사할 때 이웃나라인 프랑스 사람처럼 부둥켜안기보다는 간단하면서 정중한 목례와 아울러 악수하는 것이 상례다. 독일인의 인사는 윗몸을 통째로 구부리는 한국과 일본의 평경례(平敬禮 : 양손을 몸 앞 중앙으로 모으고 몸을 30~35도 숙이며 인사하는 것)와는 달리 목 부분만 간단히 구부리는 그야말로 목례다. ‘디너(Diener)’로 불리는 독일인의 목례는 ‘나는 당신의 하인입니다(at your service)’는 뜻으로 상대방에 대한 공경의 표시다. 일전에 독일 총리였던 헬무트 콜(Helmut Kohl)이 미국의 부시(Bush Sr.) 전 대통령을 접견할 때 보여준 ‘디너’에 대해 독일 국민과 언론들은 굴욕적인 제스처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런 독일이나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신체 접촉이 이성간에는 엄격하나 동성 간에는 일반화 되어 있는 중동과 중남미 그리고 아프리카나 지중해권 나라에서는 우리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신체 접촉이 극히 자연스럽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거리를 걸을 때 남자끼리 손을 잡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중동 사람들은 남자들끼리도 볼에 키스를 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양 팔로 상대방의 몸까지 감싸는 뜨거운 포옹을 한다(bear hug). 이들은 비즈니스 시에도 상대방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거나 무릎을 치거나 팔을 만지거나 할 정도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집트의 사다트(Sadat) 대통령은 일전 영국 대처 수상과의 TV 인터뷰에서 흥분한 나머지 대처 수상의 무릎을 때렸다. 예의와 전통을 대표하는 영국의 수상 대처는 사다트의 무의식적인 이런 행동을 문화적인 오해 없이 수용했다. 이들 나라 사람들의 신체 접촉은 고의로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애정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과의 비즈니스 시 사소하거나 무의식적인 신체적인 접촉에 촉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그런 접촉의 행위를 오히려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도구로 삼아 역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문화마다 신체 접촉에 대한 관점이 다르긴 하지만 보편적으로 신체 접촉 없이 관계의 발전은 없다. 아무리 문화적으로 신체 접촉에 대해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초기의 서먹서먹함에서 친밀함의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선 시의 적절한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신체와 접촉하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심리학자들의 주장이 낯설지 않다. APEC이나 NAFTA 등 세계 정상회담 시 국가원수들이 서로 악수를 함과 동시에 한쪽 손으로 상대방의 어깨나 팔뚝을 잡는 것은 상호우의를 다짐하는 고의적인 접촉 행위다.

말없이 통하는 의사소통의 한 수단인 신체 접촉은 말보다 훨씬 강하다. 적극적인 관심의 표현인 신체 접촉은 어제의 적을 오늘의 친구로도 만들 수 있다. 신체 접촉의 문화적인 차이에는 민감하되 그렇다고 접촉 행위 자체를 두려워하지는 말자. 먼저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고 잡고 몸마저 부둥켜안을 때 국가와 인종 그리고 문화적 오만과 편견을 넘어 화합과 평화가 실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