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이후 독자분들이면 고든 코(Gordon Gekko)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1987년에 개봉된 영화 <월스트리트>에 나오는 성공한 금융인(나중에는 감옥에 가지만)의 이름입니다.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가 고든 역으로 나왔습니다.
코는 성공을 꿈꾸는 증권브로커 버드 폭스(찰리 쉰 주연)에게 여러 가지 자본주의에 대한 명언을 털어 놓습니다. “내가 벌지 못한 것은 남이 내 것을 빼앗은 것이다” 등. 이 영화에는 중국의 ‘손자병법(영어명 : The Art of War)’을 얘기하는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영화에서 탐욕은 선(Greed is virute)이며, 터프(Be tough)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손자병법’에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손자병법’은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기업의 경영 전략을 논할 때 가장 자주 논의되는 아이템입니다. 기업의 상황을 모두 전쟁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도계 경영인들이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힌두 철학, 나아가서는 인도 철학에 뿌리를 둔 경영 기법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유수 경영대학원의 교수 가운데 10%가 인도인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현대의 자본주의 철학과 인도 전통의 철학을 접목한 새로운 기업 운영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이런 조류를 ‘카르마 자본주의(Karma Capitalism)’라는 말로 정리하는데, 이 카르마 자본주의라는 말이 미국에서도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 힌두교의 한 파인 베단타철학에 정통한 작가인 스와미(스승, 철학자, 우리나라 스님이라는 말의 원어) 파르타사라티의 경우 미국의 자본주의 심장을 돌아다니면서 비즈니스 철학에 대해서 설파를 한다고 합니다. 10월말 <비즈니스위크>를 보면 파르타사라티는 필라델피아대학 경영대학원인 와튼 스쿨에서 비즈니스로 인한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또한 뉴욕에서는 벤처캐피털 리스트와 헤지펀드 매니저를 대상으로 부를 축적하려는 욕구와 어떻게 하면 내적 행복을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합니다.

인도의 철학이 어느 정도 유행인가하면 경영 관련 학술서나 컨설턴트의 문안에도 적잖이 나옵니다. 심지어 일본에서 나온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의 책이 <카르마(인연, 또는 업) 경영>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더욱이 인도 출신의 기업 전략 전문가들은 기업의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도 철학에 대한 얘기를 집중적으로 설명합니다. <비즈니스위크>는 미국 유수의 경영대학원인 켈로그스쿨의 학장 디팍 재인이 “고위 경영자들이 학교에 와서 강의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도 철학에 노출되게 된다”라고 말했다고 인용했습니다.

인도의 경영 철학은 스와미의 가르침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봐서는 최고 경영자들은 돈 이외에 더 큰 무언가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과 회사는 단지 주주가치(Shareholder Value)만이 아니라 종업원, 소비자, 사회, 그리고 환경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미국의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수업을 받을 때 가장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이 바로 “회사의 주인은 주주다”라는 것과 “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반대의 얘기가 경영학 교수들에게서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인도 철학에서 추출한 경영 방침에 대해 컨설턴트 겸 미시간대학 프라할라드 교수는 ‘포용 자본주의’라고 표현합니다. 프라할라드 교수는 영국의 권위지 <더 타임즈>가 선정한 경영학 분야의 사상가 3위로 선정된 인물입니다. 인도 철학에 바탕을 둔 경영 철학을 ‘카르마 자본주의’라고도 부릅니다. 이 같은 철학에 바탕을 둔 경영의 개념으로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 또는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등이 있습니다.

GE의 제프 이멜트 회장에게 개인적인 코치 역할을 해주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출신의 람 차란이라는 인도인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리더는 이기심이 없고, 주도권을 행사하되 결과나 금전적인 이득을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도의 철학이 현대 경영 방식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으나, 실제로는 현대 경영 방식에 더 어울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아(彼我)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보다는 원료 공급업자와 판매업자를 서로 남이 아니라 확장된 기업(Extended Enterprise)으로 여기다 보면 훨씬 더 상생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동창조(Co-creation)라는 용어도 인도 철학에 바탕을 두고 도입이 됐는데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와 공동으로 개발하는 방법론을 가리킵니다. 물론 상생 경영의 개념이 모두 인도 철학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를 기업 경영에 도입하자고 제시한 사람들은 상당수가 인도 출신이라는 사실도 부인하기 힘들다는 것이 <비즈니스위크>의 분석입니다. 이 같은 인도의 철학은 노키아나 카길 등 세계 굴지의 기업 경영에 반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비제이 고빈다라얀이라는 다트머스대학 경영대학원(턱 스쿨) 교수의 철학이 현재 기업의 혁신(이노베이션)에 관해서는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그의 철학은 혁신에 있어서 카르마(인연, 업)를 강조하는데 어떻게 하면 기업들이 과거에 쌓아 놓은 업에 반응하지 않고 혁신을 통해 미래를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 인도 출신으로 유명한 경영학 관련 교수들과 컨설턴트들이 많은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은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Interconnec-tedness)는 것이라고 <비즈니스위크>는 설명합니다.

10월29일자 영국의 <더 타임즈>에 따르면 하버드 경영대학원, 켈로그 스쿨(노스웨스턴 경영대학원) 등 미국의 주요 경영대학원의 강의안(실라버스)에는 인도 철학의 대표적인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Ghagavad Gita)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1980년대, 1990년대 터프한 주주 자본주의가 유행했을 때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경영학에서는 ‘손자병법’이었던 반면 2000년대 들어와서는 ‘바가바드 기타’로 점점 바뀌어 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