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전반부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은 나라와 민족을 번영케 하는 것이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라는 정치 이념에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전쟁이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새로운 ‘경제’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어 세계시장을 장악하는 힘에 따라 나라와 민족의 번영은 물론 정치·외교에서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시대로 변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바로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가장 먼저 시작하였는가?’로 말해 주는 ‘프로덕트(상품)’다. 이 프로덕트의 힘은 동시대의 새로운 디자인 스타일을 통해 세계로 나아간다. 더 나아가 이 프로덕트 디자인은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정신과 문화의 옷을 입고, 프로덕트가 가는 곳에는 단순히 프로덕트의 기능만이 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파동이 함께 운반되면서 경제와 문화의 영토를 확장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행성, 지구 위에서 인간의 자유와 평화를 억압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서하지 않는 미합중국의 정치 이념은 프로덕트 ‘블루진 디자인’으로 상징된다. 이러한 블루진 디자인은 실용주의와 자유, 그리고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숭고한 개척정신을 입게 하는 디자인이다. 이것은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기술복제 시대의 프로덕트로 대량생산되어 세계시장에서 파동을 일으켰고, 각 나라에서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사본과 복제로 대체하는 현상이 파급되어 문화의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두는 블루진의 유사품들이지만 미국의 정신이 세계 내에서 일반화하여 각각의 독창적 문화의 고고한 ‘분위기’를 잃고 단일문화(Mono-cultural)의 경향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자유의 물결이 도미노 현상같이 계속 번져 가는 속도만큼 온 세계를 덮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보이지 않은 실재의 힘은 블루진의 상륙으로 나타나는 문화 파동의 영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블루진이 상륙하는 곳마다 자유의 투쟁이 일어나고 폐쇄되었던 사회가 개방사회로 변화되어 나아간다. 총과 칼 없이, 인간의 희생 없이 세계가 정복되는 그 변화를 어떻게 경제적 가치로 계산할 수 있을까? 블루진의 디자인 감각과 개척정신, 그리고 의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저항 없이 그들의 새로운 경제와 문화 영토를 확장하는 데 협력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들은 세대를 초월하여 그들이 속한 모든 사회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블루진을 입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문화와 정신을 입는 것이며, 이러한 미국의 문화와 정신은 바로 무기 없이 미국의 시장을 확장시키는 힘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잘 알고 있듯이 작은 섬나라 영국의 프로덕트 디자인은 그들만의 역사와 전통 정신을 지닌 앵글로 류의 디자인 정신으로 영국 문화의 영토를 확장하는 경제적 힘으로 그들의 국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디자인은 단순한 감각의 포장이 아니다. 같은 유럽의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디자인 스타일의 문화 정신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제 우리 디자인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문화의 영토를 디자인에서 말하려면 한류(類)의 문화를 구조적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사실 미국의 블루진 디자인을 비롯한, 맥도날드, 코카콜라, 영국의 브랜드에서 보이는 모든 디자인들,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들, 이탈리아의 패션 및 자동차 브랜드들, 프랑스의 것들에 나타나는 디자인들은 그들만의 문화의 류(類)를 구조적으로 지시(index)하는 기호들임을 생각할 때 ‘한국 류(類)’ 역시 한국만의 ‘문화의 류(類)’를 지시할 디자인을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과제이다. 한국 디자인의 정체성은 바로 ‘한국 류(類)’ 혹은 ‘한국 풍(風)’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한국은 류(類)나 풍(風)으로 말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 온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진국의 류(類)나 풍(風)을 따라 문화의 이해 없이 디자인했던 어제까지의 행동강령을 버리고 우리 자신을 인류학적 구조 안에서 우리의 문화를 거울로 삼아 ‘우리 자신의 디자인 초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재미 작가이자 문화 평론가인 코디 최는 이를 여인과 거울에 빗대 "여인이 거울도 없이 짐작만으로 화장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얼굴만 볼 수 있는 작은 거울이 아니라 전신을 볼 수 있는 큰 거울로 우리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한류(流)는 흘러가 버리는 가파른 변화 속의 ‘사건’이지만 한류(類)는 인류학적 문화의 구조에 의해 전시대를 걸쳐 한류(流)를 생산해 내는 근원이며, 지구상의 전 인류와의 관계 속에서 인식될 차이, 가치를 발견할 축이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 한국의 디자인은 어제와 연결되고 미래로 나아가는 구조 가운데서 창조되어야 한다. 즉 영국의 앵글로 류(類)라는 것도 영국인을 말하는 앵글로 섹슨(Anglo-Saxon)이 근원이고, 게르만 류(類)도 독인 민족을 말하는 게르만(German)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한류(類) 경제 문화의 영토라는 말을 할 때 인류학적 구조로 파악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므로 한류(流)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지금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한류(流)라는 인식은 한류(類)로 바뀌어야 한다. 한류(類)가 DNA라면 한류(流)는 DNA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표면의 사건들의 현상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이제까지 우리가 받아 온 도전이 물리적이며 기계적인 것이었다면, 앞으로 받는 도전은 화학적이며, 정신적인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문화적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나아가 기술 중심에서 예술의 창조성과 과학의 창조성(creativity of art and science)이 만나는 디자인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국가와 사회 활동, 기업과 문화에서 ‘디자인은 예술의 창조성과 과학의 창조성을 통해 문화의 영토를 넓혀 가는 구체적 능력을 발휘한다’는 새로운 정의를 바탕으로 할 때 경제와 문화의 영토를 넓혀 갈 수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최고의 영예는 ‘21세기에 한류(類) 디자인이 세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일으키며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김영기 

이화여대 디자인학과 명예교수

계원학원 재단이사장

kykhee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