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로 파견된 선교사는 마사이족 선교전략의 일환으로 아이들부터 목욕을 시키기 시작해 위생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현지에 교회를 지어 번창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목욕한 마사이족 성인이 사자에 물려 죽는 바람에 선교의 벼랑을 맞이했다(마사이족은 전통적으로 야생동물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몸에 갖가지 분장을 했다).

베트남에 공장을 차린 중소기업 사장, 현지인이 “어이!(‘여보세요’란 뜻)”라고 부르는 것을 한국식 ‘어이’로 착각해 혼을 내주었다가 외국인 1호로 베트남 감옥에 갇혔다.

한국 기업의 멕시코 현지 법인 파견 모 주재원은 한 현지 직원이 지시 사항을 거부하자 머리를 마구 때렸고, 전체 직원들은 집단 업무 거부 사태로 맞섰다. 또, 인도 현지 법인에서는 현지 직원들에게 한국식으로 업무를 몰아붙이자 한 현지 직원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88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의 경제적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음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세계경영개발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세계 120여 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이 선진국권에 포함됐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놀라는 한국 국민들도 없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경제 발전의 속도에 한국민들의 문화적인 수준은 버금가지 못한다. 국가 경쟁력 평가의 면면을 훑어보면, 한국의 ‘문화적 폐쇄성’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전에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이 ‘한국에는 문화재는 있으나 문화적 이미지는 없다’고 혹평한 것에 대해 ‘아니다’고 반박할 만큼 우리들의 문화적 수준은 성숙하지 못했다. 문화는 단박에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6년 여름 월드컵에 즈음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설악산 단풍 구경 가듯이 쉽게 지구 저편의 독일로 날아가서 과거 ‘공공의 적’이던 ‘붉은(Reds)’ 색상의 옷을 온몸에 두르고, 축구 경기 전·후반 90분 내내 쉬지 않고 애국가마저 록음악으로 변용해 부른다고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가 쉬이 바뀌지는 않는다.

많은 한국 사람들의 눈에 ‘문화’는 여전히 영화나 연극 혹은 문화재 등의 가시적인 상징물로만 여겨질 뿐, 국경을 넘고 세상과 더불어 하나 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정신적 관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대로 따르라’는 외국 속담과는 무관하게 신토불이 한국식 오기와 투지만 가지면 세상 어디에 가든 문제없이 적응하고 승리할 것으로 자부한다.

해외 업무를 관할하는 정부 부서나 외국에 주재원을 파견시키는 초일류 기업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가 중요하다(Culture matters)’는 것은 인식해도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문화 경영(Intercul-tural Management)’에는 인색하다. 이들은 문화적인 이해와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이 비즈니스의 성사에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늘 해 왔던 투박하고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방법으로 외국인과의 협상 자리에 나선다. 심지어 비즈니스 상 ‘갑’의 위치에 자위하며 현지인들을 관리·감독하는 주재원을 파견한다.

문화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광범위하다. 문화는 인간의 삶 모든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친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옹알이’를 하는 것부터 죽을 때 ‘유언’을 하는 방식까지 다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는다. 하다못해 개 짖고 고양이 우는 소리에까지 문화가 영향을 미친다.

이런 문화에 대해 포괄적인 안목을 갖게 되면, 자기중심적이고 특수적인 태도가 상대적이고 보편적으로 발전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외양과 말투와 행동 양식으로만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고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대방의 사고체계와 가치관과 종교관의 영향까지 염두에 두고 상호간의 관계 형성에 주력하게 된다. 상대방에게 자신들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우선 존경(Respect)과 공감(Empathy)과 감사(Gratitude)의 표시를 하게 된다. 점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지구 저편의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의 폭이 확대된다.

이쯤 되면, 신토불이 우리 한국 사람들의 입에서, 중국 사람들이 쥐고기 먹는다고 징그럽다고 말하고, 일본인들이 국사발 들고 먹는다고 상놈이라 놀리고, 브라질 사람들이 시간관념이 없어 게으르다고 무시하고, 미국 사람들이 칼로 빵을 갈라 먹는다고 상놈이라 놀리고, 멕시코 사람들이 여자를 함부로 대한다고 야만인 대하 듯하고, 인도 사람들이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다고 불결하다고 말하고,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인사할 때 코를 비벼 냄새 난다고 빈정대며 말하는 일이 우리들의 입언저리에서 사라지게 된다.

기업체의 해외 비즈니스 담당자나 정부의 국제협력 담당관이나 대학의 국제경영학도나 일반 배낭 여행객이나 할 것 없이 이 세상의 구성원으로, 문화를 배우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선택 사항’이 될 수 없다.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에, 서울에서 자라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아시아에서 일하다가 유럽에서 노년을 보

낼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측할 줄 아는 글로벌 리더라면, 문화는 세상의 누구와도 공존공영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필수 지식이 된다. 자, 이제부터 지난 수십 년간 싸 들고 온 한국적인 사고와 태도의 짐을 내려놓고 문화의 파도를 타자.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바깥세상으로부터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깊게 들이쉬면서 서서히 문화의 파도를 두 손 저어 타자. 그리고 때를 기다리자. 일어서자. 그리고 즐기자. 문화의 파도를 탈 때 세계가 내 편이 된다.



박준형 이문화전문가     

cwc2004_1@hotmail.com

필자는 크게는 각국의 문화에서부터 적게는 기업체의 조직문화에 이르기까지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훈련과 자문을 하는 이(異)문화전문가로 문화와 변화 그리고 국제 매너에 관한 책을 써오고 있다.



  REMY MARTIN  

‘코냑의 심장(The Heart of Cognac)’ 레미 마틴은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인 <이코노미플러스> 독자 여러분들의 문화적 세계화를 후원합니다. 해외 혹은 국내에서 외국인 직장, 학교 동료 사이에 문화적인 이해 부족으로 생겼던 재미있는 사연(500자 이내)을 보내 주시면 우수작 두 편을 선정해 ‘레미 마틴 VSOP’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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