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곤 취재팀장 

allen@chosun.com

“요즘 구내식당에서 돈 받는 회사도 있습니까?”

고급 사우나를 연상케 하는 온돌 깔린 탈의실, 직원 개개인 사물함, 전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샤워시설, 최첨단 재교육센터, 키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작업대….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한 중소제조업체의 생산 공장 내부의 모습입니다. 사무 공간과 다를 바 없는 공장 내부 환경은 어두침침한 1970년대 봉제공장 선입견으로 가득했던 기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급여와 복지 수준을 묻는 질문에 입사 5년차라는 직원은 “대기업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크게 모자라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급여는 비슷한 연차의 대기업 직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녀 두 명까지는 대학까지 학자금을 지원합니다. 점심식사 값이요? 요즘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에게 돈 받는 회사도 있습니까?”

이 회사 임직원은 440명이지만 비정규직을 합하면 900여 명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직률은 0%라고 합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수백억원대에 머물렀던 이 회사의 매출은 지난해 200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60~70%가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어려울수록 직원들에게 더 투자했다”는 말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중소기업이라고 만만하게 봤다가 이날 기자는 큰 코 다치고 서울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박인상 기자

edream@chosun.com

1등 창투사의 훈수

얼마 전 취재차 만난 도용환 스틱IT투자 사장. 1999년 창업한 그가 창업 5년만인 2004년 이후 국내 벤처캐피털업계 1위에 오른 비결은 따로 있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3가지 투자법입니다. 첫째가 ‘연고 투자 필패’의 법칙입니다. 그는 창업투자 회사 오너 경영자이지만 투자 기업 심사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따금씩 아니다 싶은 기업에 대해서만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사장 스스로 정실 개입 소지를 차단한 셈입니다.

둘째 ‘동생동사(同生同死)’의 원칙입니다. 보통 투자사들은 ‘펀드 따로 내 돈 따로’식 투자를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도 사장은 고유 계정 투자를 배제하고 출자자와 스틱IT투자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일치시켰습니다. 실제 스틱IT투자의 자본금 365억원이 모두 펀드에 ‘풀 베팅’돼 있습니다. 그래야 고객이 믿고 맡기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셋째 ‘큰 손 투자의 원칙’입니다. 그는 “스틱IT투자는 나무 밑에 앉아 사과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식의 투자는 안 한다”고 강조합니다. 투자했다 하면 최소한 2대주주 이상입니다. 이유는 그래야 ‘말발’이 선다는 것이죠. 투자회사에 CFO(최고재무책임자)도 파견해 봤지만 오너와 CEO 등 ‘박힌 돌’에 밀려 ‘찬밥’ 신세를 면키 어렵다는 경험담 때문입니다.

그를 만나 느낀 점은 투자법도 투자법이지만 1등이 되려면 ‘남들과 달리 생각하라’는 평범한 진리였습니다.

장시형 기자

zang@chosun.com

재취업과 창업에 성공하려면

얼마 전 대기업 회사원 4년차인 후배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러 찾아 왔습니다. 폭주하는 업무에 도무지 견뎌 낼 재간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 후배는 재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도 전문가가 아니어서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게 됐습니다. 전문가의 진단은 차갑고, 냉철했습니다.

“혹시 직장을 다니다 준비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MBA 같은 거라든지.”

“아뇨 없는데요. 워낙 바빠서….”

“그럼 창업을 위해 생각해 두신 건 있으신가요.”

“특별히 생각해 둔 건 없고요. 음식점이라든지, 아니면 커피나 스낵가게 같은 거 하면 돈 벌지 않을까요.”

“그럼, 그냥 그 직장 계속 다니세요. 회사 일을 자신이 전부 다 하는 것 같지만 그 정도 일은 직장인이면 누구나 하는 정돕니다. 괜히 충분한 사전준비나 전문성을 쌓기 전에 섣불리 재취업이나 창업에 나섰다간 100% 실패합니다.”

“한 1~2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떠냐”는 후배의 질문에 전문가는 “한창 일할 나이에 공백기를 가지는 건 재취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만류했습니다. 의지가 약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철저한 준비 없는 창업과 재취업은 실패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섣부른 선택보다 확실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직장 다닐 때 최선을 다하세요. 직장생활에 성공하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든지, 창업을 하더라도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직장에 다니다 창업에 성공한 사람의 이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임상연 기자

sylim@chosun.com

신용카드 유감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요.

지난 2003년 카드 대란으로 곤욕을 치렀던 신용카드사들이 올해 사상 최대인 2조원가량의 당기순이익을 올릴 거라고 합니다. 카드 대란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기자에게는 ‘신용카드사들의 부활’은 그야말로 ‘기사회생’, ‘역전 드라마’로 들립니다. 당시 카드 대란이 가져온 국민적 파장과 국가적 손해는 엄청난 것이었죠. 그 엄청난 대란을 신용카드사들은 3년 만에 헤쳐 나왔습니다.  

하지만 신용카드사들의 사상 최대 이익을 보며 ‘악몽의 카드 대란’이 다시 떠오른 것은 기자만일까요.

감독 당국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발급된 카드는 총 4859만 장이라고 합니다. 이는 카드 대란 당시보다도 500만 장이나 더 많은 수치입니다. 또 카드 대란 다음해인 2004년말 보다는 1100만여 장 증가한 수치죠. 불과 1년6개월 만에 인구의 1/4에 맞먹는 카드가 발급된 것입니다. ‘기사회생’한 신용카드사들이 또 다시 경쟁적으로 카드를 발급한 결과죠.

카드 발급 급증과 관련해 신용카드사들은 과거와 달리 고객에 대한 엄격한 심사와 관리를 하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또 연체율도 7%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합니다. 카드 대란을 누구보다 뼈아프게 경험했던 신용카드사들인 만큼 분명 과거와는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기자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chosun.com

창조적인 사람과의 차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성적은 수·우·미·양·가 순으로 매겨졌습니다. 90~100점은 수, 80~89점은 우…. 이렇게 각각의 점수 차이는 10점씩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흔히 말하곤 했습니다. 우에서 수로 넘어가는 게 제일 힘들다고. 독자들도 아실 것입니다. 88점 맡던 수학 점수를 90점대로 올리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말입니다.

이번 달엔 창조력에 대해 취재를 했습니다. 분석 결과를 보고 한 숫자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10입니다. 창조적인 사람들과 일반 사람들의 분석 결과, 점수가 10%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창조’적인 결과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머리 위로 전구가 ‘확’ 켜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전문가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전구가 켜지는 순간까지 고된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또 창조력은 ‘짜고 또 짜고 반대로 한 번 더 짜야’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우에서 수로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내가 창조적이고자 한다면 그 10점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심도 됩니다. 창조적인 사람들도 나보다 불과 10% 앞서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맹호 사진기자

gemma68@chosun.com

바둑의 축?

부동산 관련 이미지를 촬영하기 위해 기원을 방문했습니다. 부동산을 의미하는 흑돌을 두고 백돌이 흑돌을 단수하는 형국을 만들어 부동산 정책을 형상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촬영을 하고 있는 기자에게 기원 주인은 줄곧 바둑의 축에 대해 설명합니다. 바둑의 축을 모르면 바둑을 두지마라는 것입니다. 바둑을 모르는 기자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이해하기로는, 한쪽 끝에 연결되는 돌이 없으면 축에 걸릴 경우 도망가 봐야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수4수를 잘보고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부동산 정책도 바둑과 같은 것 같습니다. 몇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단수로만 몰아붙여 봐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홍승모 사진기자

smphoto@chosun.com

사진기자가 보는 세상

‘현장의 사진기자’라는 타이틀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사진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언론사 사진기자들의 자화상입니다. 사진기자들은 현장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은 없지요.

‘이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는 어떤 모습일까?’ 저도 사진기자가 되기 전에는 정말 궁금했습니다. 언제부터 사진기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담지 못하는 대신 동료들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이렇게 어렵게 일하고 있습니다’ 하고 알리려는 걸까요?

그들이 찍는 동료의 모습조차 사진기자에게는 현장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