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주의자들 작품의 가격은 20, 30대에 최고가에 이르렀다가 중년 말년에는 젊었을 때 나온 작품 가격보다 훨씬 떨어진 것으로 나타납니다.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기억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명절 때 공중파에서 재방송을 해 주거나 케이블 TV영화 채널에서 심심치 않게 틀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나온 지 근 20년이 됐지만 그래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모차르트라는 천재와 그 천재를 질시하는 궁정악장 살리에리의 관계 때문일 것입니다. 대학생 시절 이 영화를 볼 때와 나이 마흔이 넘어서 볼 때 감정의 이입이 다르더군요. 모차르트에서 살리에리로 감정 이입의 대상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나이 서른, 서른다섯, 마흔, 쉰이 넘어서면서 이 나이가 되도록 뭐 했을까 라는 생각은 점점 더 많이 들 듯합니다. 기업 쪽만 보아도 네이버의 창업자인 이해진씨도 그렇고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처럼 20대 때 이미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궈 낸 경우가 그렇고.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자괴감이 들 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런 순간이면 지금까지 하던 일이 어느 순간 하찮게 보이기도 합니다. ‘누구누구는 네 나이 때 뭘 했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한발 한발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나름대로 희망을 주는 연구 결과를 최근에 발견했습니다.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데이비드 갤런슨(David Galenson) 교수의 연구 성과물입니다. 갤런슨 교수 자신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많이 배출한 시카고대학에서 창조성을 타고난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 한 연구라니 더욱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갤런슨 교수는 예술, 학문, 비즈니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창조적 정신을 발휘해 업적을 낸 사람들을 검토해서 이 사람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 그룹이 개념주의자(Conceptualists)입니다. 젊어서 최고의 업적을 낸 뒤 나이가 들면서 창조적 역량이 쇠잔해 가는 그룹입니다. 또 다른 그룹은 젊었을 때는 그저 그랬다가 불굴의 의지로 인생의 중노년기에 창조적 역량을 드러내는 집단입니다. 이런 부류를 실험주의자(Experimentalists)라고 합니다. 갤런슨 교수가 수행한 연구의 단초는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가격을 나이와 대비시켜 본 것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개념주의자들 작품의 가격은 20, 30대에 최고가에 이르렀다가 중년 말년에는 젊었을 때 나온 작품 가격보다 훨씬 떨어진 것으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실험주의자들의 작품 가격은 40대, 50대, 60대로 가면서 동년배 개념주의자들의 작품 가격보다 훨씬 고가가 됩니다. 앤뒤 워홀의 작품의 가격은 33세 때 만든 작품이 가장 높고 그 이후에 만든 어떤 작품도 그 때 만든 작품 가격에 이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로버트 마더웰이라는 미술가의 작품은 72세 때 최고가를 이뤘다고 하는군요. 토끼와 거북이라고나 할까요.

갤런슨 교수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경제학이면 경제학, 미술이면 미술, 관련 서적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론과 작품이 작가가 몇 살 때의 것이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이 방법은 구글을 통해 검색할 때 가장 먼저 보여주는 링크가 인터넷 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내용인 경우와 비슷한 방식입니다.) 조사 결과, 파블로 피카소는 26세 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라는 그림이 최대의 업적이었으며, 90살까지 산 피카소지만 그의 작품 중 의미 있는 작품의 40%가 이미 30세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미술에서 피카소와 정반대인 경우는 인상주의 화가인 폴 세잔인데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64세 때 그린 <검은 성>이라는 풍경화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개념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작품을 보면 <위대한 게츠비>를 쓸 때 스코트 피츠제럴드는 29살이었습니다. 마야 린이라는 건축가는 23살 때 만든 베트남 전쟁기념관이 대표작이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30살에 <피가로의 결혼>을 썼습니다. <시민 케인>의 작가인 오손 웰즈는 26살에 최고의 작품을 썼고, 폴 사무엘슨도 25살 때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될 이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반대로 실험주의자들을 보면 교향곡 9번을 쓸 때 베토벤은 54세, <현기증>이라는 대표작을 만들 때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은 59세였다고 합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썼을 때 마크 트웨인의 나이는 50세였고요.

두 그룹의 일하는 스타일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개념주의자들은 이미 머릿속에 자신이 어떤 작품이나 결과물을 낼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합니다. 100% 완성된 모습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글을 쓰건 조각을 하건 그런 작업들은 단지 아이디어를 옮기는 실행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명 조각가가 한 말처럼 “큰 돌 안에 이미 작품의 모양이 다 들어 있어, 끌로 돌을 쪼아 내기만 하면 된다"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쓸 때도 일필휘지 써 놓고 더 이상 손을 보지 않아도 되는 케이스 입니다. 피카소는 항상 머릿속에 개념을 잡으면 그대로 작품으로 완성을 했기 때문에 그가 만든 작품 100%에 사인을 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실험주의자인 세잔의 경우 작품을 시작한다고 해도 100% 완벽한 개념이 머릿속에서 있지 않습니다. 결국 100%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100%에 근접한 상태로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잔의 경우 자신의 정식 작품으로 사인을 한 작품이 전체 작품 중 1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로댕도 세잔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로댕의 조수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한 영화가 1989년쯤 개봉된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로댕이 젊은 천재였던 카미유 클로델을 시기하고,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과 같이 살면서 작품성이 떨어진 반면 로댕은 계속해서 잘 나가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때문에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을 저주하고 정신병까지 걸리게 됩니다. 그러나 두 가지 스타일을 비교해 보면 카미유 클로델의 창작력은 나이가 들면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반면 로댕은 나이가 들면서 발전하는 스타일이었기에 두 사람의 굴곡은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도 개념주의자와 실험주의자로 분류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실험주의자가 많겠지요. 따라서 아마존을 창립한 제프 베조스나 야후를 만든 제리 양, 구글을 만든 페이지와 브린을 지나치게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자신이 하는 분야에서 실험을 하고 완성도를 높여 나가다 보면 젊은 천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리에리에게 말을 할 수만 있다면 모차르트를 부러워하지 말고 더 많은 곡을 실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