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 소설가 likeabird60@hanmail.net

장마 뒤에 연일 내리 퍼붓는 폭염에도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다. 마침 시댁 친지 어른의 회갑연이 있어 참석했다. 자주 보지 못하던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게 되다보면 나이 드신 분들은 화제가 건강 문제지만 대부분 부동산 투자나 아파트 시세 등 돈 얘기로 흐르게 된다.

그런데 그중 손위 시누이뻘 되는 한 분이 내게 그러신다.

“내가 집에 전화 몇 번이나 했는데….”

“저희 집에요?”

평소에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서 의외라는 듯 되물었더니 그분이 멋쩍은 웃음을 웃었다.

“내가 얼마 전에 부동산기획회사에 다녔거든. 왜 전화로 땅 사라 그러는데 말여.”

집에 있다 보면 많은 날은 하루에도 몇 통씩 그런 전화를 받는다. 사근사근한 아가씨 목소리부터 신뢰감이 묻어나는 중후한 중년 여인의 목소리, 또 뜬금없이 시부터 읽어주고 시작하는 자칭 ‘시 읽어주는 남자’의 목소리까지 결국은 모두 땅 사라는 말로 귀결이 된다.

어떨 땐 박절하게 거절하지 못해 집에 오는 전화를 아예 받지 않기도 한다. 그러다 요즘엔 꾀를 내어 이렇게 응수한다.

“지는 일하는 사람이라 모르구, 사모님은 안 계셔유.”

그러면 찰칵, 직방이다. 그런데 이 형님이 내게 그런 전화를 하셨다?

“그쪽에서 활약하는 친구가 입만 가지고 돈 벌 수 있다고 그래서 갔지. 기본급에, 점심 값도 1만원씩 나온다 그러고, 땅 팔면 수당도 나온다 길래. 전화통 한 대씩 주면서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뭐 어디 걸 데가 있어야지. 매일 집에다 전화해서 집에서 노는 남편이랑 통화하면서 연습도 하고 시간도 때웠지. 그러다 친구들 집에, 또 급기야 자네 집에도 두 번인가 했지. 한 3일 하니까 전화 걸 데도 없고 남한테는 입이 안 떨어지고, 그래서 딱 3일 다니다 나와 버렸네. 너무 눈치가 보여 나라도 좀 땅을 살까했는데 남편이 당장 그만두라고 해서….”

“그런데 그런 전화 받고 정말로 땅 사는 사람도 있어요?”

옆에 있는 친척이 물었다.

“있으니까 장사가 되는 거지. 근데 잘 사야지. 전화하는 이들 다 먹여 살려야 하니 바가지 쓰고 사는 셈이긴 하지만. 내 친구는 그런 데 옮겨 다니면서 벌써 3년째야. 입심이 좋거든.”

평소에도 말이 느린 충청도 시누이가 진땀을 빼며 전화를 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화제는 이후 계속 어떡하면 돈을 많이 버나, 아니면 돈을 잘 굴리나로 뜨겁게 부풀어 올랐다. 감기 기운으로 지끈거리는 머리에 돈, 돈, 돈, 돈 얘기만 들으니 머리가 더 아파왔다. 도대체 돈이 뭐 길래. 나는 돈이 삶을 불편하게 할 정도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은 어차피 실감나지 않을 테니 행복을 느끼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감기약을 먹을까, 말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평소에 약 먹는 것을 싫어하고, 어차피 감기약이란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지만 완전히 치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 ‘돈은 감기약이다’는 비유가 머리에 확 꽂혔다. 돈은 인생의 환난과 고통에 약간의 도움은 주지만 인생 그 자체를 고통에서 완전히 치유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