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곤 취재팀장 allen@chosun.com

깃발을 꽂지 말라?

미국의 소상공인들이 즐겨하는 말이 있습니다. '깃발을 꽂지 말라'는 말입니다. 먼저 신 시장을 개척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대신 '깃발을 꽂으려면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를 강조합니다. 첫 번째가 힘들게 개척해 놓은 시장을 주시하다 적당한 시점에 치고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얌체 같지만 8월 초 만났던 한 기업인에게서 기자는 이 말에 새삼 공감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 콘도미니엄이라는 사업을 처음 시작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지금 콘도미니엄 사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분이 생각했던 모든 형태의 콘도미니엄은 모두 남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내가 콘도미니엄을 이야기하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 모두들 미쳤다고 했어요. 먹고 살기도 바쁜데 한가하게 비싼 콘도미니엄에 누가 가느냐고요.”

그로부터 불과 3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유가 어찌됐든 그 분의 뒤를 이어 두 번째 깃발을 꽂았던 분도 지금은 업계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콘도미니엄을 찾고 있습니다. 시장을 개척했던 분은 뒤로 밀려나고 뒤따라오던 얌체 기업인들만 덕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박인상 기자 edream@chosun.com

영입 임원의 ‘왕따’

요즘 기업들의 핵심 인재 ‘짝사랑’이 대단합니다. 소위 ‘명품 인재’의 연봉은 부르는 게 값이고 계약기간도 피고용인이 직접 정할 정도니까요.

우리 기업도 이제 ‘수혈’된 영입 임원 비중이 30%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문제는 ‘백지수표’까지 날리며 CEO(최고 경영자)가 직접 모셔온(?) 인재들이 상당수 ‘적응’에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죠.

10명 중 4명꼴로 18개월도 못돼 퇴사하고 있다는 게 공식 통계입니다. 영입파가 성과를 내는데 걸리는 기간을 평균 6.2개월(삼성경제연구소)로 봤을 때 많은 기업들이 헛돈만 날리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궁금증은 영입파 인재들이 왜 ‘파격 대우’를 걷어차고 있을까 하는 점으로 압축됩니다. 얼마 전 LG경제연구원이 낸 <영입 임원, 이런 점이 힘들다>란 보고서가 답을 제시했는데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대기업 A사 임원은 “직속상관인데도 영입파라는 이유로 ‘령’이 안서고 부하들이 오히려 ‘토종 임원’들에게만 줄을 선다”고 하소연합니다. B사의 영입 임원은 “아예 인사팀에서 1년간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가 될 것을 요구하는데 그럴 거면 왜 데려왔느냐”고 반문합니다.

한마디로 조직 내 ‘빨래터 문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입니다. 옛날 아낙들이 개울가 빨래터에서 새로 이사 온 아낙을 왕따시키는 문화를 빗댄 말이죠.

그러나 이를 그 회사 문화 탓으로만 돌리는 건 그 ‘인재’를 위해서도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회도 ‘텃새’가 없는 조직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핵심 인재 자신의 리더십 부재가 더 큰 이유는 아닐까 생각됩니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 탓으로 돌리는 인재라면 ‘재능’을 떠나 그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장소가 극소수로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공만이 대우를 받고, 우리 경제를 존재하게 했던 이들의 ‘실패한 공(功)’은 잊어야 하는 것인지요.



오성택 기자 ost69@chosun.com

미스터리의 진실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가진 기업은 동종업계에서 임금도 높고 고용도 보장이 돼 있습니다. 반대로 갈등의 노사관계를 가진 기업은 고용도 불안하고 임금도 낮은 게 상례입니다. 하지만 임금도 높고 고용도 비교적 안정돼 있는데 매년 다투는 기업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바로 그 ‘희귀한’ 예입니다. 매년 노사분규를 겪으면서도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니 미스터리일 수밖에요.

밖에서 보는 사람도 피곤할 지경인데 당사자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급기야 양측이‘우리끼리는 도대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드니 문제가 무엇인지 도와 달라’며 외부 전문가에게 자신들이 겪고 있는 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제시해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4~5개월에 걸쳐 노사를 오가며 분석한 노사관계 전문가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에는 대한민국 노사가 겪고 있는 노사갈등의 핵심 내용이 모두 들어있다”더군요. 그만큼 원인도 다양하고, 당사자들조차 두 손 들만큼 갈등의 골도 깊다는 얘깁니다. 다행스러운 건 양측 모두 ‘더 이상의 갈등은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도 예외 없이 분규를 겪긴 했지만 이번에 현대차 노사가 도출해낸 단체협상 합의안에는 향후 현대차 노사의 미래를 가늠할 의미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심야 근무를 제한하는 주간 연속 2교대제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그것인데요, 노사가 원만하게 세부안을 만들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현대차 노조가 겪어온 노사갈등 핵심 원인이 해소될 거라 하더군요. 2007년 말을 기한으로 잡고 있다고 하니 기대를 걸고 지켜봐야겠습니다.



장시형 기자 zang@chosun.com

중소기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

혹시 ‘성철사’라고 들어봤습니까. ‘우연’이라는 기업은 아시겠습니까.

아마 처음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기업들이죠. ‘숨어 있는 강자’로 불리는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들입니다.

성철사는 지난해 3456억원의 매출과 143억원의 경상이익을 올린 가전업체입니다. 우연은 세계 자전거신발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TFT-LCD 등의 핵심 부품을 만드는 희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9280억원입니다. 웬만한 대기업 수준입니다.

풍력발전기의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태웅이라는 부산 기업은 회사 앞마당이 잔디 축구장이라고 합니다.

요즘 중소기업의 실상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덩치나 복지 수준이 대기업에 이르는 기업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낮은 임금, 열악한 복지 수준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입니다. 아마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그래서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 중소기업 취직을 꺼리는 게 현실입니다.

이번에 ‘한국의 중소제조업종별 베스트 10’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저희는 홍보 안 합니다” 였습니다. 심지어 상장기업조차도 말입니다.

좁게는 자신들의 주주와 직원을 위해, 넓게는 중소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를 위해 중소기업들도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임상연 기자 sylim@chosun.com

줄줄 세는 기름과 세수

“세금 인상하는 데만 신경 쓰지 말고 기름 간수나 잘하라고 하세요.”

기름 값 거품 논란을 취재하기 위해 석유제품 유통경로를 쫓던 기자에게 한 주유소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방 곳곳에서는 암암리에 면세유가 불법 유통되고 있고, 이는 곧 세금 탈루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였죠.

면세유 불법 유통이란 농어민을 위해 마련된 면세유를 중간 도매상들이 불법으로 사들여 주유소를 통해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입니다. 농기계나 어선 등 정작 면세유가 사용돼야 할 곳에 쓰이지 못하고 세금만 낭비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탈루되는 세금이 한 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시장에서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면세유 불법 유통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지방 곳곳에서 이 불법 유통이 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면세유 보급량이 농기계나 어선의 수명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악용해 폐농기계 등을 새것마냥 수리해 판매하는 브로커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정부는 7월1일 세수확보와 소비억제를 위해 휘발유, 경유 등 각종 석유제품의 세금을 대폭 인상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세금을 거둬들이고, 한쪽에서는 세금이 줄줄 세고 있는 거죠. 그 사이에서 국민들만 고충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chosun.com

대체에너지 관련 법규 정비 시급

월마트가 휘발유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대체연료 판매를 검토 중이라 합니다. 이 제품의 이름은 'E85'로 옥수수에서 추출한 에탄올 85%와 휘발유 15%를 섞어 만들었습니다. 월마트가 미국 최대의 유통업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계획이 현실화만 된다면 E85는 ‘대체’라는 꼬리표를 떼게 되겠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E85같은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가 말입니다. 소비자는 비싼 기름 값 때문에,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기업은 신사업 창출을 위해서 입니다.

이번에 취재한 풍력발전소도 이 같은 움직임의 일환으로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관계 법규가 너무 복잡하다”고 말입니다. 복잡한 관계 법규 때문에 1년이면 완공될 이 발전소가 첫 삽을 뜨기까지 무려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체에너지와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정부의 노력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법규 정비’는 정부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금만 더 힘써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