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국무총리

한정곤 취재팀장 allen@chosun.com

얼마 전 회사 선배와 저녁식사를 하다

우연찮게 업무로 알게 된 몇몇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모 전자회사와 외국계 자동차회사에 근무하는 그 분들과의 자리는 다시 재경부에서 파견된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실 공무원까지 가세하면서

커져 버렸습니다.

요즘 술자리에 앉으면 노상 하는 이야기가 정치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가

오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를 따지고, 학번을 따지고, 또 나이를 따져 선후배 서열을 가리는, 웃고 떠든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적당히 술에 취한 그 공무원은 누구도 물어본 사람이 없었건만 자신이 모시고 있는 분을 안주거리로 올렸습니다. 제 선배가 그 분보다 나이 많은

여자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총리의 업무스타일을 지적하며 급기야 “어쩔 수 없는 아줌마에 불과하다”, “아줌마라 별 수 없더라”는 비아냥거림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연설문 작성을 도와달라고 했다나요. 그것 하나 못 쓰면서 총리 자리에 앉아있나 하는 투였습니다.

이 공무원에게 총리는 두 가지 중 하나였습니다. 애초부터 총리를

아예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자신보다 능력이 부족한 총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후배들이나 아래 직원들이 술좌석에서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비아냥거릴 것 같습니까?

판매왕 ‘굴욕 사건’

박인상 기자 edream@chosun.com

푸르덴셜생명의 판매왕 3연패를 이룬 권효곤(35) LP. 그는 보험 챔피언에 오른 자신을 키워준 하나의 ‘사건’에서 평생의 교훈을 건졌다고 말합니다.

일명 ‘상가집의 굴욕’입니다.

“갑작스러운 후배의 사망으로 상가 집에 갔을 때입니다. 그 충격으로 아내도 세상을 떴고 3살짜리 아들이 빈소에서 놀고 있는 겁니다. 제 직업을 아는 친구들이 ‘저 친구 보험은 들었겠지’라고 물었을 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내 일에 대한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심기일전, 보험왕에 올랐다는 후일담입니다.

그런가하면 호텔 객실 판매왕인 이석형(33) 조선호텔 지배인은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영업 초년병 시절 들었던 ‘뼈저린 한마디’입니다.

“차 시간에 막혀 고객과 약속 시간에

딱 10분 늦었습니다. 상대는 나이 지긋한 노신사였고요. 그때 그 호통이 아직도 귓가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에요.

‘너가 그러고도 세일즈맨이냐’는 일침이었죠.” 이 지배인은 “그 때부터 잔기술보다는 ‘기본에 충실하자’를 영업신조로 새겼다”고 들려줍니다.

현대자동차 판매왕인 김경하(35) 과장은 “1997년 입사 직후 차를 한 대도 못 팔아 한때 포기할까도 생각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연간 280대씩 팔아 2년 연속 현대자동차 판매왕에 오른

세일즈 9단의 ‘과거의 굴욕’이랄까요.

결국 억대 연봉 신화로 많은 샐러리맨들의 부러움을 사는 판매왕들도 알고 보면 평범한 영업직 출신입니다. 다만 ‘굴욕’을 기회로 바꾸는 자기만의 비법을 터득한 사람들이겠죠.

‘품셈’을 아십니까?

오성택 기자 ost69@chosun.com

건설 전문 용어인 ‘품셈’은 건물을 하나 지을 때 소요되는 인력, 장비, 자재 등의 단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일에 들어가는 ‘품’을 ‘셈’한다는 뜻인데요, 이 계산법의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5톤 덤프트럭 한 대의

1일 작업량을 계산할 때, ‘시속 30km 이하 1일 몇 회’ 이런 식으로 계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나다니는 트럭을 보면

시속 30km로 다니는 차량은 없지요.

그런데 품셈에는 그렇게 적습니다. 도로교통법상 규정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전체 작업량이 결정되고 작업 일수가 정해지지요. 여기에는 물론 기름값, 운행자의 급여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렇게 해서 200만원이라는 최초 견적이 나와 원청업체와 계약이 이뤄지는데,

이게 몇 단계 하도급을 거쳐 마지막 단계로 내려가면 70만 원이 됩니다. ‘비밀’은 바로 운행속도죠. 시속 90km로 운행하면 3일치 분량을 하루에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120km로 달리면 그만큼

더 단축할 수 있지요. 물론 애초 정해진

하루 일당도 팍 줄어있습니다.

과속으로 달리는 덤프트럭에 위협을 느껴보지 않은 운전자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목숨 걸고 달리는 데에는

이 같은 구조적인 요인이 가장 큽니다.

업체와 당국이 ‘좋은 게 좋은 식’으로 지내는 사이 주택건설 경쟁력은 중국에도 뒤진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설 산업 개혁은 적정량

이상의 화물을 싣고 과속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덤프트럭이 줄어들 결정적인 방법이 되는 셈입니다.

1, 2등과 3등

장시형 기자 zang@chosun.com

‘라면’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아마 삼양라면이나 신라면 둘 중 하나일겁니다. 이 둘을 제외하고 떠오르는 라면을 말해보라면 아마 조금 생각을 해봐야 할 겁니다. 과연 3등은 누굴까요.

언제나 1등에게는 ‘최고’, ‘최강’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닙니다.

1등이 되기도 힘들고, 1등을 지키기는

더욱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누구나 1등을 하고 싶어 합니다.

1등에 가려진 2등도 관심의 대상입니다. 영원한 1등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3등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3등은 ‘패배자’의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하지만 3등이라 해도 1등보다

더 값진 눈물을 흘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 1등이 처음부터 1등이지는

않았을 테고, 2등이 처음부터 2등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예외도 있겠지만 누구라도 처음에는 밑바닥부터 시작합니다. 꼴찌에서부터 시작해 3등이 되고, 2등이 되고 그리고 나서 1등이 됐을 겁니다.

꼴찌들이 1, 2등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물론 시장을 창출하고, 트렌드를 만드는 것은 1등과 2등입니다. 하지만 3등이 없다면 1등과 2등이라는 의미가 있을까요.

어디라도 1등과 2등 자리를 바라보며

땀과 눈물을 흘리는 3등이 분명히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희망,

노력을 버리지 않고 있는 3등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될 성싶은 기업들

임상연 기자 sylim@chosun.com

옛말에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말이 있죠.

여기서 ‘떡잎’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씨앗에서 싹이 트면서 최초로 나오는

잎을 말합니다. 속담에서는 타고난 ‘성품’이나 ‘소질’을 뜻하는 것이죠.

즉 장래성이 있는 사람은 타고난 성품이나 소질이 남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속담은 사람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될 성싶은 기업은 떡잎부터 다르다’처럼 말이죠. 여기서 ‘떡잎’은 무엇일까요. 기업의 경쟁력과 잠재력 등일까요?

아마도 여기서의 ‘떡잎’도 CEO나 직원들의 성품과 자질, 열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업의 경쟁력과 잠재력은 CEO나 직원들의 ‘떡잎’에 따라 달라지는 부산물에 불과하니까요.

기자는 올해 증시에 신규 상장한 기업들을 취재하면서 다시 한 번 이 ‘떡잎’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대다수 신규 상장기업들은 기업 가치를 뜻하는 공모가에도 못 미치는 부진함을 보였습니다. “증시가 안 좋아서…”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변이었죠.

이에 반해 ‘떡잎’이 다른 기업들은 증시야 어떻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 기업들은 주가에 신경 쓰지 않아도 시장이 알아서 평가하고 있었죠.

그 중 한 기업의 CEO와 직원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더군요. “주가는 우리가 일한 만큼 나오는 것 아닙니까”

주가가 기업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잣대는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떡잎’이 부실하면

시장은 냉혹한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임요환’을 아시나요.

이홍표 기자 hawlling@chosun.com

며칠 전 임요환의 입대소식이 화제가 됐습니다. 독자께서 “임요환이가 누군데 군대가는 게 화제냐”고 물으신다면 “최고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라 말씀드리렵니다. “그럼 왜 최고냐”고 물으신다면 “혁신가(innovator)였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누가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는지, 그 자원으로 병기를 더 빨리 생산하는지, 그 병기로 효율적으로 전투하는지’를 겨루는 게임입니다. 임요환의 등장 이전까진 게이머들은

‘자원 확보와 생산’만을 주목했습니다. 단순하고 밋밋한 ‘게임’이었습니다.

하지만 괴짜 임요환은 수송선을 사용해 상대편의 뒤통수를 친다던지, 지형을 이용해 상대편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던지 하는 병력의 ‘효율성’을 내세워 연전연승을 거듭했습니다.

그건 평면적인 게임에 입체적인 전략과 전술을 불어넣은 ‘혁신’이었습니다. 복잡하고 짜릿한 ‘스포츠’가 됐습니다.

지난 9월 경영학의 구루(guru : 선지자, 스승)라 불리는 톰 피터스가 내한했습니다. 그는 강연에서 “혁신하라, 미쳐 보일 정도로”라 말했답니다.

지금 스타크래프트 경기는 e-스포츠로 불립니다. 3개의 케이블방송사에서

거의 24시간 동안 중계를 해주고,

한 경기에 무려 10만의 인파가 몰릴 정도로 인기 있습니다. 여기엔 끊임없는 연구와 자유스런 상상력으로 단순하고 밋밋한 ‘게임’을 복잡하고 짜릿한 ‘스포츠’로 만든 임요환의 몫이 아주 큽니다. 굳이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논하지 않더라도 괴짜 혁신가 한 사람의 힘은 이렇게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