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5월초 유라시안 필하모닉 단원들과 함께 파리연주를 다녀왔다. 두 번의 연주회 중 5월2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음악회는 나와 단원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이번 음악회는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조폐국장총회(MDC)의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되었는데, 행사의 공식후원사인 풍산(회장 류진) 측의 제의와 적극적인 협력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음악회는 세계 70개국에서 400여 명의 귀빈과 외교사절, 각국의 조폐국장과 고위관계자들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하여 큰 성황을 이루었다.

음악회의 프로그램은 올해로 탄생 250년과 100년을 맞는 모차르트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긴 세월을 사이에 둔 두 위대한 예술가들의 대조적인 작품세계를 한 무대에서 선보임으로써 청중들에게 더욱 짙은 인상과 감동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특별히 곡마다 간단한 영어해설을 곁들임으로써 청중들이 좀 더 자연스레 음악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국내에서 늘 해오던 ‘해설이 있는 음악회’의 영어판이랄까? 멀리 동쪽 끝 한국에서 날아온 음악가들이 유럽 문화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세계 각국의 고위급 청중들을 향해 클래식 음악의 안내자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진정 뜻 깊고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콘서트의 주빈으로 참석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성장(盛裝)을 한 400여 청중들이 일제히 기립하여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베르사유의 감격은 오래도록 가슴 뿌듯한 장면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이루어진 연주회였기 때문이라든가, 세계 각국에서 온 저명한 귀빈들을 청중으로 한 연주회였기 때문이라고 여긴다면 나로선 석연치 않은 기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들에겐 매사를 세상의 통념으로 판단하고 타인의 눈을 통해 자리매김하려는 오랜 폐습이 있는 것 같다. 음악계만 보더라도 공연의 음악적 완성도나 청중들이 느낀 기쁨과 행복보다는 연주자가 얼마나 유명하고 연주 장소가 얼마나 권위 있는 곳인가가 훌륭한 연주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언론이나 평론가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긴 세월 속에서 굳어진 권위와 전통에 의존하려는 태도가 꼭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창의와 노력으로 훌륭한 전통을 만들어나가겠다는 기백과 의욕을 가질 수 있다면 더 값진 일이 아니겠는가?

유라시안 필하모닉은 베르사유로 떠나기 일주일 전 전북 익산시의 초청으로 그곳 문예회관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주요 장면들을 해설을 곁들여 진행했는데 남녀노소 다양한 층의 청중들이 시종 진지하게 연주와 해설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물론 우리 음악가들도 최선을 다해 연주했다.

음악이 끝나자 공연장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뒤덮였다. 객석을 가득 메운 익산 시민들은 일제히 일어나 떠나갈 듯한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최선을 다하고 열정이 담긴 연주는 언제 어디서건 청중들을 감동케 한다는 소박한 진실을 확인하는 감격적인 시간이었다. 익산과 베르사유.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터져 나온 두 번의 기립박수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자랑스럽고 또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