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달맞이 고개를 향해 갈 무렵이면 나는 의자에서 일어선다. 객실을 나와서 타고 내리는 계단에 내려선다. 맨 아래 칸에 선다. 쇠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는 몸을 거의 공중에 띄운다. 그럴 무렵 기차는 달맞이 고개에 도달하고 나의 시야는 푸른 바다로 가득 찬다. 나는 희열한다. 기쁨이 온몸을 채운다. 나의 모든 세포가 휘발하는 듯이 가벼워진다.

이것이 내가 태어나서, 지구에서 살면서 가장 기쁜 체험이다. 방학이면 기장에 있는 우리 과수원에 가려고 그 기차를 자주 탔다. 과수원에 가는 것이 좋은지 바로 그 바다 체험이 좋은지 구별이 안 될 만큼 그 순간을 즐겼다.

그 계단에 매달려서 바다를 보던 기쁨을 나는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그 결과 그것이 미니멀 미술이 주는 충격적인 기쁨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적도 있다. 시야를 단순한 물질로 가득 채울 때 생겨나는 정신적인, 영혼적인 변화! 기쁨! 구질구질한 인공 구조물들이 즐비한 기차 길을 기차가 간다. 한 순간 완전 자연 자체만으로 된 단순한 화면 속으로 기차가 들어가는 것이다. 바로 그 때 인간은 이유를 모르면서 희열에 들뜬다. 망막을 가득 채우는 푸른색! 바다파랑! 하늘파랑! 그 미칠 듯이 큰 화면….

피난 가서, 바다가 있는 부산에서 살았다. 거기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자상했다. 우리들을 데리고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갔다. 그 때는 휴가 개념이 없을 땐데도 그렇게 산천을 누비면서 자랐다. 도심 속에서, 아스팔트와 붙은 집에서 살았다. 도시를 둘러싼 산에서 버섯을 채취해서 먹는 집은 그 도시 전체에서 우리뿐이었다. 그 산에 산나리 꽃이 그렇게 많이 핀다는 것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모르고 지나갔다. 스리쿼터라는 간이 트럭에 우리 또래 동네 친구를 다 싣고 근교 개울로 가서 천렵을 했다. 바다에도 갔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일은 부산에서 체험했다. 수영만과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갔다.

대학에 가서 서울에서 살았다. 높은 데 올라가도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칠 듯 했다. 바다 열병에 걸린 듯하게 처음 두 해를 보냈다. 북한산에 올라서, 바다가 안보여서 의아했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왜 바다가 안 보이나 하고 한참을 사방을 둘러보았다.

며칠 전, 일로 부산에 갔다. 달맞이 고개에 갔다. 자동차로 갔다. 기찻길은 보지 못했다. 카페에 앉아서 팥빙수를 먹으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미니멀이 아니었다. 가로수가 시야를 막는다. 바다 가운데까지 진출한 아파트들이 시야에 섞여있다. 메피스토를 생각했다. 거대한 매립도시를 악마가 만든다고 말한 그가 바로 예언자라고 속으로 말했다. 결국은 그 낡은 시대를 살던 괴테가 예언한 것이 21세기, 바로 오늘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바로 이런 이유만으로! 바다파랑! 하늘파랑! 내 큰 골 속에 영원히 저장되다! 기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