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은 잔인했다.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펴기 위해 고치에서 인고의 나날을 보내는 것은 나비의 일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겨울을 견디는 모든 인간의 일이기도 했다. 봄이 온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치를 찢어내는 마지막 안간힘이 필요하다. 그래야 날개를 펴고 세상으로 날아간다.  고치를 찢을 때 나비 곁에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혼자 해야 한다. 인생의 절박한 순간에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원할 때는 아무도 곁에 없었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것일까? 문득 그 구절이 가슴에 저몄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모두 피멍이 들어있다. 그것은 한겨울에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걸어온 몸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무를 보면 새순이 틔어 나오는 그 곳이 꼭 그런 상처 자국처럼 보인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바보처럼 눈물이 나기도 한다. 꽃은 얼마나 힘겹게 피어나는가? 그 꽃을 보면서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하고 싶다. 그것은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딘 인간의 영혼처럼 거룩하게 보인다. 그러나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것에 또 한 번 눈물이 난다. 나는 꽃에 비해 얼마나 엄살을 떨면서 개수작을 부리고 살았던가?

 오랜만에 놀러온 친구가 이제 우리는 뭔가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노후대책을 준비하기 위해 이제는 살아야 한다는 아직 젊은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너나 준비해라, 나는 달려갈란다 아직 사십대다 임마’ 라는 마음이었다. 그를 보내고 둘이 피워댄 담배연기를 몰아내기 위해 창문을 열자 문득 석양이 지고 있는 공원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 공교롭게도 가로등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려는 마음이 싹 달아났다.

 조금 전에 끊으려고 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물었다. 그래 노후대책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뭔가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봄이 오고 있는데 나는 왜 아직도 한겨울의 눈보라 속에서 헤매고 있는가? 이십대건 삼십대건 사십대건 그것이 그의 인생의 저물녘이 아니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당신은 내일 당신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가? 산책을 하면서 나는 어둠 속에서 환한 꽃을 보았다. 꽃을 보고 기도했다.

 ‘지금, 내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돌아보기 바란다. 친구, 연인, 가족, 당신은 의외로 참 많은 사람들 곁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서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라. 정확하게 기억나는 사람의 얼굴이 몇 명인지? 당신이 정말 어려울 때 누가 곁에 있을 것인지? 당신이라는 인생에 소주 한 잔 사주는 사람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큰 낙담을 할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결국 아무도 없다. 겨울은 잔인한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그리고 나서야 꽃은 피어난다.

  그래서 올 봄에 내 곁에서 피어있는 꽃에게 절을 한다. 꽃 속에서 마치 사람이 걸어 나올 것 같다. 사람은 곁에서 지나간다. 내 곁을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고개 숙여 감사한다. 이 넓은 세상에서 당신이 내 곁을 지나가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