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미용실 문을 열면 늘 같은 볼륨의 여자 목소리가 난다. 목소리만 있는 사람.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가? 그렇게 무서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오셨어요?” 여자 주인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비로소 현실감이 생겼다. “앉으세요.”

 “손님이 별로 없네요?”

 “요새… 좀 그렇네요.” ‘요새’라는 말을 하고 한참 있다가 ‘좀 그렇네요’ 하고 말을 이었기 때문에 요즈음에 와서 손님이 뜸하다는 게 아니라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는 위로의 뜻을 담아 “다 그렇죠 뭐…” 하고 대꾸를 했다. 하지만 뭐가 다 그런 건진 나도 잘 몰랐다.

 오른쪽 귀 밑 머리가 싹둑 잘려져 나갔다. 여주인은 머리카락의 길이를 정할 때마다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럴 때마다 내 눈과 내 눈, 내 눈과 여주인의 눈, 여주인의 눈과 여주인의 눈, 여주인의 눈과 내 눈이 부딪혔다.

 사실은 누구나 마음속에 거울이 있어서, 그리고 수많은 눈동자가 또한 그 속에 있어서 늘 그렇게 혼란스러운 것이다. 여주인이 갑자기 가위질을 멈추고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물었다.

 “팔자가 있는 것 같아요?”

 “예?”

 “사람마다 다 제 팔자가 있는 것 같냐구요?”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 주인은 말없이 가위질을 계속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여주인이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겠지’ 하며 거울 속 살피다가 여주인의 눈과 마주쳤는데 그때까지도 여주인은 눈으로 묻고 있었다.

 “팔자라… 팔자가 있는 것 같아요.” 내 대답에 여주인은 크게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가위질이 좀 빨라졌다.

 나는 예상보다 머리가 더 짧게 깎여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숨을 섞어 여주인이 말했다.

 “얼마 전에 점을 봤는데요…. 내 밥그릇은 내가 채울 팔자래요. 내가 벌어서 먹고 살아야 된대요.”

 “좋지 뭘 그래요. 내 일이 있다는 거 아녜요.”

 “호강하긴 다 글렀죠,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거울 속으로 본 여주인의 표정은 꼭 호강을 하고 말겠다는 듯했다.

 “사장님!” 부를 때는 거울 속에서 불렀지만 나는 머리를 깎게 맡겼던 내 머리를 돌려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내가 느닷없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가위를 움츠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사장님은 여태껏 살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한 적이 없나요? 다시 말해서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살았나요?” 다시 거울을 보니까 여주인은 내 눈이 있었던 자리인 내 뒤통수의 가마 근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뒤통수에다 대고 말했다. “아뇨.”

 “그럼 해보지 못한 게 많고 그래서 지금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으시겠네?”

 “그럼요. 근데 뭔 놈의 팔자가 이런지….” 여주인은 불안할 정도로 가위질을 빨리 했다. 그러나 다행히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튕겨 그중의 한 무더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덜 떨어진 머리카락을 마저 튕겨내며 내가 말했다.

 “사장님. 저도 못 해본 게 아주 많습니다.”

 “에이 아무리…. 팔자 좋으신 분이 왜 그러셔요.”

 “진짜예요.”

 “그래도 우리네 팔자하곤 다르겠지.”

 나는 다시 여주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말을 꺼내기 전에 눈빛으로 내 말을 시인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사각사각 가위질을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