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 현정이가 애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현정의 아이가 누구를 닮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혜영의 말로는 현정이를 쏙 빼다 닮았단다. 

 “그러니까 네 말은 옛날 현정이 얼굴을 닮았다는 거지?”

 원판불변의 법칙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현정은 나의 여고동창생인데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성형수술을 했다. 처음엔 쌍꺼풀 수술을 했고, 그 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쌍꺼풀 수술의 성공에 힘입어 이번엔 턱을 깎았다.

 내 결혼식에 턱을 깎고 나타난 현정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다 내가 첫 애를 낳고 나서야 현정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2년 사이에 현정은 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현정의 두루뭉실했던 코는 황신혜 코만큼이나 높아져 있었다. 

 얼굴이 변하면 사람의 성격도 달라지는 걸까?

 여고 시절의 현정은 운동을 하는 아이답게 호탕했고 좀체 삐치는 법도 없었다. 목소리도 걸걸했고, 걸음걸이도 팔자여서 뒤에서 보면 남자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쌍꺼풀과 턱과 코를 고치고 우리 앞에 나타난 현정은 이른바 요조숙녀로 변해 있었다.

 “야! 너, 성대 수술도 했냐?”

 목소리마저 곱게 변한 현정에게 내가 물었다. 그러자 현정 왈,

“이 얼굴에 어울리는 목소리는 이런 거야”라고 한다.

 이 얼굴에 어울리는 목소리….

 현정의 그 말은 꽤 오랫동안 내 뇌리에 맴돌며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성스러운 얼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다지 못 봐 줄 편도 아니었는데, 현정은 왜 성형수술을 했을까? 현정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리라.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그 어떤 것(현정의 경우에는 여성스러움)을 소유하기 위해 현정은 성형수술 뒤로도 끊임없이 노력했다. 부드러운 곡선과 귀염성이 있는 커다란 두 눈과 오뚝한 콧날이 들어앉은 아름다운 얼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현정은 걸음걸이에서부터 목소리까지 바꿨다.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얼굴에 살아온 인생 내력이 그대로 다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말인데, 현정의 경우에는 오히려 정반대다.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자신의 얼굴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예뻐진 얼굴에 자신을 맞추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현정은 왜 예뻐진 얼굴에 자신을 맞추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현정에게 예뻐진 얼굴이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힘이고, 그 힘을 빌어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것들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으리라. 결국, 현정이 자신을 맞추고 있는 것은 예쁜 얼굴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힘’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런 사람이 비단 내 친구, 현정뿐만은 아니리라. 

 인류가 몸단장을 하고, 화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다. BC 3000년경 이집트에서는 성직자 계층만이 몸을 단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BC 2500년경이 되자 몸단장은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의례적 행위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몸단장은 신전에 근접한 계층과 세속적 단장밖에는 할 수 없는 평민 계층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그때의 그 기준이 미인과 추녀로 변형되어 아직도, 현대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거라고, 그리하여 그토록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자 하는 거라고 말한다면 비약이 너무 심한 걸까?

 불현듯 떠오른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혜영이 물었다.

 “현정이한테 오늘 가 볼래?”

 혜영과 나는 함께 현정을 찾아갔다. 산후조리원에서 처음 본 현정의 아이는 정말이지 현정의 얼굴, 수술 전의 현정의 얼굴 그대로였다.

 “현정아! 막 낳아서 네 딸 얼굴 처음 봤을 때, 그때 무슨 생각했니?”

내가 물었다.

 “생각은 무슨 생각… 진짜 내 딸이네, 그랬지. 이쁘지?”

애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로 딸애의 뺨에 제 뺨을 비벼 대며, “이쁘지?” 하고 묻는 현정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보고, 그러니까 제 얼굴을 보고 예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현정, 현정에게 이제 얼굴은 도구나 힘 같은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