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나무들을 좋아한다. 봄에도 사람의 마음을 현란하게 하는 온갖 꽃들보다도 새로 피는 나뭇잎을 더 좋아한다. 만산이 푸르러지는 5월은 늘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커다란 나무에서 피는 하얀 꽃들은 또 얼마나 산을 싱그럽게 살리는가. 높은 산 위에서 피는 이팝나무 하얀 꽃이며, 층층나무 흰 꽃이며, 층층이 하얗게 푸른 잎 위에 얹힌 산딸나무 꽃들은 얼마나 청순한가.

 나무 중에서도 나는 마을 앞에 있는 정자나무를 가장 좋아한다. 정자나무는 시골 마을 앞이나 산마루나 동네 입구에 있는데, 모두 마을을 지켜주는 마을의 주신으로 동네사람들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어찌나 신성하게 생각하던지, 아무리 땔나무가 없어도 마을 사람들은 정자나무 죽은 가지 하나 부엌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느티나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한다. 정자나무에는 주로 느티나무가 많지만, 써나무, 물푸레나무, 팽나무, 어떤 마을에는 참나무로 정자나무를 삼기도 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귀목나무라고도 하는 느티나무를 가장 좋아한다.

 우리 마을에는 네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한 그루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한 그루는 마을 나이와 비슷한 나이를 자랑하는 400~500년 묵은 뒷산을 지키는 뒷당산나무와 마을 앞 강가에 있는 100년쯤 된 느티나무가 있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 한가운데에 있어서 마을을 든든하게 해주기도 하는데, 그 위용이 대단하다.

 또 한 그루는 우리 집 앞 강가 언덕에 있는 느티나무인데, 이 느티나무는 내가 심은 느티나무로 한 30년쯤 된 나무다. 나는 이 나무를 심어 놓고 날이면 날마다 이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이 나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어린 나무 때부터 나는 이 나무를 하루도 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낙엽이 피어나고, 잎이 무성해지고, 잎이 지고, 그 나무에 서리꽃이 하얗게 피고, 눈보라가 치고, 하얀 눈이 쌓이기를 몇 십 년, 나는 그 나무에다가 거름을 주고, 쥐 죽은 것이나 집짐승들이 죽으면 보는 족족 그 나무 밑에다 묻어 주었다. 그 나무가 해마다 더 무성해지고, 해와 달이 떴다가 지고, 별이 지고, 벌레들이 찾아와 살고, 새가 날아와 울기도 했다.

 나무가 점점 커지자, 그 아래로 사람들이 찾아들어 더위를 피하기도 하고, 더러 나그네들이 쉬었다 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쳐다보며 “하따! 그 나무 싹수가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동네 사람들은 그 나무 밑에다가 넓적넓적한 바위들을 가져다놓고 그 나무 아래에서 여름을 지냈다. 매미소리를 들으며 낮잠도 자고, 할머니들은 그늘 아래에서 감자도 삶아먹고, 토란대도 다듬고, 마늘도 까며 지냈다. 나무가 너무 아름답게 자라자 욕심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올해도 동네 느티나무 잎은 무성하게 피어나리라. 나는 새로 잎 피는 느티나무를 보면서 늘 감동하고 신기해 한다. 어쩌면 그렇게 가는 실가지로 그 수많은 잎을 새로 피워 내는지 생각할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이 세상에 저절로 잘 크는 나무는 하나도 없다. 또 이 세상에 누구 한 사람에 의해서 잘 크는 나무도 없다. 사람이든 나무든 어떤 기업이든 어떤 사회, 어느 국가든 그 모든 것들은 거기에 속한 모든 것들에 의해서만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 세상을 편하고 아름답게 가꾼다는 것을, 나는 내가 심은 그 느티나무에게서 배운 것이다. 우리 동네 느티나무마다 하얀 서리꽃을 피웠다. 나무들은 저 시린 나뭇가지로 봄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