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선생은 <도덕경>에서 “법이 많으면 범죄도 많으므로, 좋은 국가는 될 수 있는 대로 법을 적게 만드는 나라”라고 하였다. 최소한의 원칙과 규정만 가지고도 사회가 잘 돌아가야 좋은 국가인데, 사람들이 본래 악한 구석이 있어 노자의 이상이 실현되기는 힘든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나라마다 자꾸만 법들을 제정하고, 그 법을 적용하기 위해 세부 규정들을 끝도 없이 만들어 가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활 전반에 관한 지침과 법률들을 1만2000페이지에 달하는 <탈무드>에 집대성해 놓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탈무드를 편집할 때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편집진에서 제외했다는 점이다. 너무 머리가 좋으면 탈무드를 조작할 위험성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우리나라도 요즘 세태를 보면 조작 가능성이 있는 연구실이나 국회 같은 곳은 아이큐검사를 해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배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국 사람들이 그 좋은 머리를 나쁜 데 쓰고 있으니 안타깝다”라며 눈물을 흘리신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 떠오른다.

 모세 <오경 율법>에서 출발한 <탈무드>가 왜 그렇게 방대한 책이 되었는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십계명 중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랍비들은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하여, 안식일에 어떤 것은 해도 좋고, 어떤 것은 해서는 안 되는가를 따져 수천, 수백 가지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항목 밑에는 39개의 항목들이 제시되었다.  그 중에 ‘짐을 운반하지 말라’는 항목이 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짐이란  무엇인가’ 하는 항목이 또 붙게 된다. 안식일에 운반해서는 안 되는 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예로 들고 있다.

 한 모금의 우유, 상처에 바를 만큼의 벌꿀, 가장 작은 지체에 바를 만큼의 기름, 눈의 고약을 씻을 정도의 물, 부적을 만들 정도의 가죽, 알파벳 두 자를 쓸 정도의 잉크, 미장이의 흙손을 덮을 만큼의 굵은 모래, 한 자루 펜을 만들 정도의 갈대, 새를 보고 던질 정도의 작은 돌 등등 짐에 관한 규정만 해도 끝이 없다. 앞에서 ‘가장 작은 지체에 바를 만큼의 기름’이라는 규정을 말했는데, 그럼 ‘가장 작은 지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가장 작은 지체란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는 갓난아기의 새끼발가락’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 정도니 안식일 법이 본래의 법정신을 잃어버리고 안식과 편안함을 주기보다 오히려 괴로운 짐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는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라는 너무도 상식적이고도 평범한 진리를 설파했다.

 요즘 사학법 투쟁이니 하여 온통 법 문제로 시끄러운 한국사회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법이 있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긴다면, 좀더 대승적인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