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과대학원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전 한미약품 부사장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과대학원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전 한미약품 부사장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회사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바이오 분야에선 당장의 매출 같은 실적보다는 대부분 미래에 개발 가능한 신약을 가치의 근거로 하고 있어 가치를 평가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명확한 근거가 없으니, 회사가 스스로 주장하는 자사의 가치와 투자자가 이들에게 부여하는 가치 사이엔 괴리가 크다. 회사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하여 회사는 연구나 개발 과정의 진행을 외부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이른바 ‘홍보 채널’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홍보 채널에 따라 가치평가의 근거가 되는 자료의 신뢰성이 좌우된다.

대표적인 것이 IR, 즉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 활동이다. 회사는 IR을 통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 인력, 기술과 물질을 소개하고 물질의 개발이 어느 단계까지 와있는지, 앞으로의 개발 전략과 목표 그리고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 회사의 재정 상태, 투자 유치 목표 등을 투자자들에게 알려 회사의 개발능력과 잠재력 등 회사 가치를 이해시키려고 한다.

언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각 언론사의 제약⋅바이오 담당 기자들에게 내용을 전달하고, 이를 일반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과 표현으로 다듬어 기사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지식과 문장력을 빌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적인 투자자들이 어렵지 않게 회사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학술 대회에서 발표하거나 전문 학술잡지에 논문 형태로 싣는 것도 투자자들에게 회사 가치를 알리는 홍보 채널이 될 수 있다. 이 경우는 전문가에 의한 검토와 일종의 검증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의 기술이나 가치가 확인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소통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바이오 기업은 투자자들이 회사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를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걸까. 많은 바이오 업체가 성공이 눈앞에 있는 것 같은 신약 후보물질, 소위 파이프라인을 앞세우며 투자를 유치하고, 더 나아가 상장 요건을 충족시켜 충분한 연구개발비를 확보한다. 그러나 이후 지지부진한 연구개발 결과로 회사 가치가 떨어지고, 주주들의 비난을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 이유로는 첫 번째로 신약 개발 자체가 성공 확률이 매우 낮은 도전이기 때문이다. 거의 완벽한 전 임상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임상시험에 들어가도 인체의 생물학적 특성과 질병의 유전적 불안정성 때문에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또는 신물질의 효능이 기대에 못 미쳐서 통계학적인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예상하지 않았던 독성이 관찰되어 임상시험이 중단되는 것도 실패로 정의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목표 지표를 달성하지 못한 정당한 실패 외에 준과학적인 원인도 있다. 전 임상시험에서 도출되는 결과를 너무 긍정적이거나 아전인수 혹은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확대 해석했거나 임상적인 유효성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연구되는 과학 기술 중 아주 일부가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응용되는 데 성공한다. 이를 ‘실용화’라고 하고 실용화에 성공한 것 중에 실제로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상용화’라고 한다. 신약의 경우 최종 승인이 되고 의료기관에서 적응증이 있는 환자들에게 처방과 투약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상용화의 성공이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가치로 반영되는 것이다.

그런데 IR이나 언론을 통한 단순 홍보 기사는 기업으로부터의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므로 최대한회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과할 정도로 잘 포장이 되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바이오 분야에서 기업 기술의 가치평가는 명확한 기준이 없지만, 연구개발 인력의 경험 등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바이오 분야에서 기업 기술의 가치평가는 명확한 기준이 없지만, 연구개발 인력의 경험 등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논문 발표도 ‘바이오 가치평가’에 한계

그렇다면 전문가들의 검토와 확인을 거친 학회의 발표나 전문지에 실리는 논문들은 어떠한가? 다른 방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제일 믿을 만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극단적으로는 논문에 나오는 데이터가 조작됐을 수도 있으며, 실험 논리나 조건, 방법이 매우 제한적인 연구진에 의해서만 재현된 것이라 상용화 가능성이 작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반인들도 쉽고 간단하게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나 물질의 가치를 추정하려면 무엇에 중점을 두고 보아야 할까? 첫째는 경험이다. 회사의 연구개발 인력이 실제 연구개발 경험이 얼마나 있는지는 이력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약 개발은 머리로 아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손으로 개발해 본 사람들이 발로 뛰면서 하는 것이다.

둘째, 유효성이다. 위암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제의 개발을 예로 들어보자. 실험동물의 피부밑에 암세포를 심어 종양을 만든 후 이 암 덩어리에 유전자 치료제를 찔러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하는 기적적인 효능을 보여주었다면 이 결과에 얼마만큼의 유효성을 인정해 줄 수 있을까? 위암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위에서 자라고 있는 암이 아니라 간이나 뼈, 폐, 뇌 등에 전이가 된 암이다. 당연히 전이 부위의 암세포는 피부밑과는 전혀 다른 생물학적인 특성을 보이므로 피하 모델에서 관찰된 효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또한 몸속 깊은 곳에 다발성으로 존재하는 전이 병변에 일일이 치료제를 주입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실은 환자의 혈관이나 근육 내에 주사된 치료제가 여러 곳에 존재하는 전이병변까지 도달해 암세포의 핵에 침투하여 암세포를 파괴할 수 있어야만 임상적으로 유효한 효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치료법의 상용화 성공을 기대하기에는 유효성이 너무 낮다.

셋째, 현실성이다. 어느 특정 표적을 대상으로 한 치료물질을 개발해서 그 표적을 갖고 있는 암세포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 ‘기적’에 가까운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임상적인 현실은 한 덩어리의 암세포, 여러 기관에 전이된 병변을 이루고 있는 암세포들은 각각 상이한 단백질(표적)들을 발현하고 있고 이 단백질의 발현도 수시로 유전적인 변형을 통해 변하는데 이를 이형성(heterogeneity)과 유전적 불안정성(genetic instability)이라고 한다. 암을 치료하기 힘든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암세포는 뛰어난 유연성과 적응성을 갖고 있다. 즉 한 가지 신호 경로가 막히면 다른 길로 우회해서 생존하는 능력이 있다. 한 가지 표적만을 타격해 암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미사일같이 날아가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을 파괴하는 기술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상과학 소설에 더 가까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술적 보편성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관심과 가치를 부여받는 기술들은 첨단, 화려함, 고난도 그리고 독창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바이오 기술과 물질이 상용화되는 핵심 조건 중의 하나가 물질의 가격(COGS·매출 원가)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들어 있는데 첫 번째가 생산효율이다. 너무 고난도의 복잡한 공정은 높은 생산 실패율과 연관이 있고 물질 가격의 상승으로 연결된다. 이 물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어떤 물질도 비견할 수 없는 월등한 경우가 아니라면 시장에서 선택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론적으로 공상과학에 가까운 최첨단의 자료를 보여주는 개발 주체보다 개발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인력들이, 임상적 유효성이 있는 모델을 이용하여, 현실적인 생물학적 특성이 반영된 보편적인 기술로 도출해내는 자료를 갖고 있는 회사의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