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과대학원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전 한미약품 부사장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과대학원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전 한미약품 부사장

신약개발 성공의 부푼 꿈을 갖고 도전하는 의생명과학자들에 의해서 바이오벤처의 창업 붐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투자처를 찾는 자본이 들어와 신약개발을 향한 불길은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신약개발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고 수많은 좌절과 고통이 수반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렵지만 교과서적이고 정도(正道)를 가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열풍(熱風)과 무리한 편법과 과대 포장된 허상을 좇는 광풍(狂風)은 구별되어야 한다. 투자자 역시 마찬가지로 묻지마식 투자의 광풍을 지양하고 정확히 평가된 가치에 기반해 투자해야 한다. 그런 투자 열풍이 지속돼야 신약개발의 열기도 계속될 수 있다.

신약개발 과정은 순수하게 과학의 역할과 힘으로만 끌고 갈 수는 없다.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연구개발비가 필요하며 국가로부터의 지원도 있을 수 있지만 대개 투자라는 형식으로 확보하게 된다. 투자자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스타트업을 창업할 때와 연구개발 초기에 들어오는 투자 전문 기관들이 한 축이고, 또 다른 축은 상장 후 주식을 매입하는 주주들이다. 신약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는 바이오 기업은 많은 경우 신약을 기술 수출하거나 신약 승인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만드는 식으로 일반적인 상장 기준을 맞추는 게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술 특례 상장이라는 제도가 국내에 도입되었다. 수익이 없거나 아주 낮은 상황에서도 성장 가능성에 기업가치를 두고 상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개발비를 충당해서 개발을 완성할 수 있고 상장 전 초기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목표 기간 내에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긍정적인 제도인 셈이다.

투자에서 가장 기본은 투자 대상, 즉 회사에 대한 가치평가다. 투자를 받는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가장 높은 가치를, 투자하는 쪽에서는 그 반대의 입장일 수 있다. 그 때문에 적정하게 평가된 가치를 도출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투자는 주체가 생명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신약개발을 목표로 하는 바이오 벤처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연히 초기 투자는 회사가 홍보하는 내용과 상장이라는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요건을 맞출 수 있느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회사는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세간에 인기 있는 연구 주제와 목표 그리고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물질에 ‘세계 최초’와 ‘가장 우수한’이라는 수식어를 부여한다. 투자자는 회사의 기술이나 보유 물질을 제대로 평가할 만한 전문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질적인 평가를 하기 어렵다 보니, 특허 등록 건수, 개발 완료 기간 등 수치에 의존한 양적 평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기준들만으로는 회사의 미래 가치를 적절하게 예측하기 힘들다. 심지어 일정 심사 기준을 충족해 상장된 회사들도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주주들에게 큰 손실을 입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상장 후 투자 원금에 이윤을 붙여 자금을 회수한 초기 투자자나 상장을 승인해준 관련 기관 입장에서는 체면을 구기고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문제는 이런 기준들 외에 마땅한 다른 잣대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런 기준들이나마 충족시키는 회사라야 최소한의 신뢰나 기대를 할 수 있다는 초기 투자자나 기관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회사 가치를 적절하게 예측하기 위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LG화학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LG화학
LG화학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LG화학

회사가 감당할 만큼의 후보물질 보유했는지가 중요

필자의 경험으로는 첫째, 바이오 회사 가치의 가장 근본은 연구와 개발을 담당하는 인력이다. 자체적이건 외부에서 도입하건 좋은 물질을 ‘발명 또는 발굴’하는 연구자들뿐 아니라 그 물질의 ‘적응증과 사용법’을 찾아내는 개발자들이 없다면 그 회사가 내세우는 개발 목표는 공허한 공약일 뿐이다. 특히 후자, 즉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신약개발의 핵심이다. 요즘 화두인 신약재창출이 바로 과거에 사용법을 찾지 못해서 퇴출된 물질의 올바른 사용법을 찾아내어 부활시키거나 다른 적응증을 찾아내어 가치를 증대하는 작업인 것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된다.

두 번째는 현실성이다. 과학적 데이터가 뒷받침되는 익숙한 물질과 완성도가 높은 이론이나 작용기전보다는 기적의 물질과 막연한 기대에 가까운 결과를 내세우는 회사에 높은 가치가 부여되고 많은 투자가 유치되는 것을 종종 본다. 물론 도전이라는 것은 1%의 성공 확률이 있더라도 해야 하는 것이고 성공할 경우 더 큰 성취감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은 물질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 아닌 과학적 근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인체에서 벌어지는 생물학적 현상은 가로·세로·높이가 딱 맞는, 즉 흑백 논리, 0% 혹은 100%만의 숫자가 작동하는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 바이오의 세계는, 인간이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인위적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범주에 속한다. 항상성(생체가 여러 가지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생명 현상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이 존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후보물질도 임상 적응이 가능한 유효성이 부족하거나 없다면 순수과학의 영역을 벗어나서 임상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부족함과 지나침의 균형이다. 한 가지 물질에 모든 승부를 걸거나 너무 많은 물질의 개발을 시도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본다. 소규모 벤처기업의 입장에서 한 가지 물질을 선택하여 집중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전략이 아니다.

하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 신약개발 영역의 생태를 고려하면, 특히 결과가 성공적이지 못했을 때 회사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다른 옵션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아주 위태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

그 반대로 너무 많은 파이프라인이 열거되어 있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후보물질이 풍부하고 개발 과정에서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어 높은 성공 확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각 물질의 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성공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리고 회사가 갖고 있는 연구 개발 인력이 감당할 수 있는 작업 물량을 고려하면 이 역시 적지 않은 재정적 부담과 실패의 위험으로 회사의 가치에 반영되어야 한다. 완벽한 답이 될 수는 없지만 △개발 인력과 △현실성 있는 개발 목표 그리고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만큼 후보물질을 보유했는지 여부를 회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