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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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필 KAIST 문술 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지식재산대학원  프로그램(MIP) 책임교수
박성필 KAIST 문술 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지식재산대학원 프로그램(MIP) 책임교수

최근 지식재산권의 한 유형으로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이 자주 거론된다. 퍼블리시티권은 성명·초상·목소리 등 인적 식별 표지의 경제적 가치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독일 등 대륙법계 국가들은 이를 인격권의 일종으로 보호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양도와 상속이 가능한 재산권적 성격의 권리로 보호해 왔다. 미국에서 퍼블리시티권은 각 주의 보통법 또는 성문법으로 존재하는데 보호의 내용과 정도는 주(州)별로 차이가 크다. 퍼블리시티권을 프라이버시권의 한 유형으로 보호하는 주가 많고,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보호하는 주들도 있다. 다만 프라이버시권 침해 유형 중 퍼블리시티권 보호에 활용되는 유형은 결국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 각 주의 퍼블리시티권은 대개 일반인에게도 적용된다. 유명인의 성명, 초상 등이 경제적 가치를 침해당하기 쉬울 뿐이다. 1903년 뉴욕주가 시민권법에서 퍼블리시티권을 규정한 이래 많은 주가 성문법을 제정했다. 이들 중 다수가 추가적인 법 개정을 통해 사후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할 근거도 마련했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등 디지털 조작을 통한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대응하는 개정도 진행되어 왔다.


美 ‘재산권 성격’ 퍼블리시티권 발전

미국 법원의 대표적 퍼블리시티권 사례는 연방대법원의 1977년 자키니 대 스크립스-하워드 방송사 사건이다. 자키니는 서커스단에서 인간 포탄 공연을 했다. 포탄처럼 대포에서 쏘아져 약 15초 동안 약 60m 떨어진 그물까지 날아가는 방식이었다. 스크립스-하워드는 자키니의 허락 없이 그의 연기를 촬영해 심야 뉴스로 방송했다. 연방대법원은 미디어가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누리지만, 자키니의 승낙 없이 그의 공연 전체를 방송한 것을 그 공연의 경제적 가치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봤다. 방송사가 자키니의 노력과 투자의 결과물인 공연 전체를 보상 없이 방송하여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음성도 퍼블리시티권의 보호 대상이다. 미국 제9 연방 항소법원의 1989년 미들러 대 포드자동차 사건이 대표적 예다. 포드자동차의 광고대행사인 영앤드루비캠은 이른바 여피 캠페인을 기획했다. 1970년대 여피 세대를 겨냥해 30초 내지 60초 분량의 광고 시리즈 총 19편을 제작했다. 1973년 그래미상을 받은 유명 가수이자 배우인 미들러의 ‘Do you want to dance?’라는 곡은 헤드윅이라는 모창 가수가 노래했다. 이 광고에 미들러의 사진이나 이름은 사용되지 않았다. 회사는 저작권자로부터 저작물 이용 허락도 받았다. 미들러의 목소리로 착각하게 하는 헤드윅의 노래가 유일한 문제였다. 결국 법원은 미들러의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이유로 약 40만달러(약 5억1100만원)의 손해배상을 명했다.

국내에서도 서울지방법원이 1995년 ‘이휘소 박사 사건’에서 그 개념을 언급한 이후 퍼블리시티권이 문제 된 사례가 다수 있었다. 다만 법률의 근거가 없다 보니 법원의 일관된 판례가 형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2020년 3월 26일 대법원은 방탄소년단의 화보를 무단 제작, 판매하는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상 “그 밖에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 판단했다(2019마6525 결정). 기획사가 방탄소년단의 결성과 훈련, 콘텐츠의 기획, 제작, 유통 등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이 그룹의 명성, 신용, 고객 흡인력이라는 ‘성과 등’을 만들었고, 타인이 무단으로 방탄소년단 화보를 제작, 판매하는 행위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결정에서 ‘퍼블리시티권’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이 권리를 인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韓流와 메타버스 시대, 중요한 퍼블리시티권

퍼블리시티권이 보호하는 인적 식별 표지는 상당한 노력과 투자로 쌓아 올린 명성과 신용을 내포하고 있다. 제삼자가 이를 무단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상표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의 입법 취지와 통한다. 미국의 여러 주가 퍼블리시티권을 부정경쟁방지 관점에서 보호하는 것이나 연방 퍼블리시티권을 연방 상표법(Lanham Act)에 규정하자는 주장이 있는 것도 퍼블리시티권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4월 2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은 부정경쟁행위 유형으로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가 있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 그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추가했다. 이로써 국내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수십 년간 논쟁을 야기했던 퍼블리시티권이 최초로 입법화되었다. 

한편 국회 계류 중인 저작권법 전부 개정 법률안도 초상 등 재산권이란 명칭의 퍼블리시티권을 명문화하고 있다. 다만 저작권법에 퍼블리시티권을 규정하는 입법 방식에 대해서는 법체계상 근본적인 의문이 있으며, 그러한 방식의 해외 입법례도 드물다. 가령 유명 가수의 사진이 무단으로 광고에 사용된 경우, 가수는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주장할 수 있지만, 정작 저작권법은 가수가 아닌 사진작가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근거가 된다.

현재 시점에서는 개정 부정경쟁방지법 시행으로 오랜 기간 논란의 대상이었던 퍼블리시티권이 법적 근거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또한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는 취지가 부정경쟁방지법의 입법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미국 각 주의 퍼블리시티권 보호가 결국 부정경쟁방지 법리에 근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법체계상 큰 무리가 없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앞으로 부정경쟁방지법에 대한 법원의 판례가 축적되면서 퍼블리시티권의 내용과 범위가 구체화할 것을 기대해 본다. 한류(韓流)의 주역인 유명 연예인 등의 인적 식별 표지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필수적인 시점이다.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플랫폼에서 거래가 증가하면서 경제적 가치 있는 성명, 초상, 음성 등의 활용이 늘어가고, 동시에 디지털 기술로 이들 인적 식별 표지를 조작하는 사례들이 늘어날수록 퍼블리시티권 보호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퍼블리시티권 보호 제도의 정비를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