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병행으로 하이브리드 워커(worker) 공간인 ‘집무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재택근무 병행으로 하이브리드 워커(worker) 공간인 ‘집무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선호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차장 감정평가사, 전 DL이앤씨,  이화자산운용 근무
이선호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차장 감정평가사, 전 DL이앤씨, 이화자산운용 근무

하이브리드(hybrid)란 두 개 이상의 기능이나 요소를 결합하는 것으로, 기존 방식에 새로운 방식을 더해 서로의 장점을 융합하거나 선택해서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인다. 대표적인 예가 하이브리드 카로, 내연기관 차에서 전기차로 넘어갈 때 전기차의 친환경성과 내연기관 차의 장기 주행의 장점을 갖고 있다. 하이브리드는 사람에게도 부동산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사람에 적용되면 다재다능함, 박식한 사람을 뜻하는 폴리매스(polymath)로 다방면의 여러 지식을 통합하고 융합해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고, 부동산에 적용되면 공간혁신 및 융·복합 이용으로 부동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

2년이 넘게 진행된 코로나19로 부동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비대면 활동의 증가, 온라인 활성화, 친환경 트렌드 등 코로나19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었던 흐름이 가속화되고, 이러한 흐름이 기존 방식과 병행되면서 부동산에도 하이브리드 현상이 생겨났다. 부동산에 나타난 하이브리드 현상을 살펴보면 부동산 투자 시 참고할 만한 시사점이 있지 않을까.

코로나19 이후 주거 역할에 업무 등의 기능이 더해진 하이브리드 주택의 상품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부동산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코로나19 이후 주거 역할에 업무 등의 기능이 더해진 하이브리드 주택의 상품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부동산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코로나19로 생겨난 부동산 하이브리드 현상들

재택근무 병행으로 생겨난 하이브리드 워커(worker) 공간인 ‘집무실’이라는 신조어를 많이 접했을 것이다. 일뿐만이 아니라, 운동, 취미,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공간으로 집을 꾸미고 이용하는 이런 현상을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단순 주거라는 집의 기본 역할에 일과 여가 등 새로운 기능들이 더한 공간으로의 진화’라는 뜻을 담아 ‘레이어드 홈’이라는 트렌드로 명명했다. 기존 주거 역할에 업무 등의 새로운 역할이 더해지는 하이브리드 이용으로 주택의 상품성이 더 높아짐에 따라, 건설사에서는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혁신 평면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고급 주거 입지의 재건축 아파트 외관도 오피스 빌딩처럼 커튼월룩으로 설계하는 사례들을 보면, 향후 외관과 기능이 모두 빌딩과 큰 차이점이 없을 수도 있겠다.

코로나19로 인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활성화로 가장 많은 타격을 입었던 리테일 부동산에서도 하이브리드 현상이 많이 나타났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됐는데, 이커머스와의 생존경쟁을 선택한 리테일은 오프라인만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물리적 공간감이 줄 수 있는 부동산 ‘물성’에 집중했다. 최근 백화점들의 리모델링 또는 리뉴얼을 보면 친환경과 체험 공간을 강조하면서 판매 공간을 줄여서라도 대규모의 실내 정원을 기획하고 있다. 2021년 2월 서울 여의도에 오픈한 ‘더 현대 서울’에는 실내 정원만 1만1200㎡(약 3400평) 규모일 정도로 온라인이 절대 따라 하지 못하는 진짜 ‘자연’을 옮겨놓았다. 한편, 이커머스와의 상생을 선택한 리테일은 판매 기능과 물류 기능을 융·복합해 부동산의 효율성을 높였다. 대형마트의 경우 영업 시간에는 판매를, 영업 외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의 배송기지(물류센터)로의 전환을 선택했고, 편의점의 경우 퀵 커머스의 전초기지로서 판매와 배달을 병행하는 추세다.

리테일 부동산 못지않게 타격을 입은 호텔의 경우도 잠만 자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 또는 ‘우리’만의 특별한 경험을 상품화하여 ‘쉼’과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을 강화하고 호캉스와 파티룸으로서의 공간을 제공했다. 또한, 주택 대비 호텔만의 우수한 편의시설 및 부대시설을 활용하여 장기 숙박 개념을 도입한 코리빙(Co-living) 역시 호텔과 주거의 하이브리드 이용으로 볼 수 있다.

 

다용도 이용 가능 건축 및 법제의 변화, 그리고 융·복합 사고

부동산의 하이브리드 공간 이용이 가능하게 하려면 설계 및 구조 등에 있어서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결국,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물리적 공간 그대로 혹은 최소한의 대수선이나 리모델링으로 복합적 이용이 가능하도록 상품성이 확보돼야 한다. ‘레이어드 홈’으로서의 주택은 공간 크기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가변 벽체 구조, 재택근무에 방해되지 않는 층간소음 저감 구조, 감성적 활동에 도움이 되는 높은 천장고 등을 반영해 상품이 고급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리테일 부동산도 경기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고객 경험 기반의 특화 공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하고, 시간대별로 공간 이용을 달리 가져갈 수 있는 자동화 설비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 호텔의 경우에도 주거 기능을 융합하기 위해 설계 시 주차 대수의 확대, 공동취사 시설, 커뮤니티 공간 계획 등을 반영할 수 있다. 따라서, 부동산 투자 시 하이브리드 이용이 가능한 건축물의 하드웨어적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직접 개발한다면 동종 상품 대비 경쟁력 있는 건축적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

이러한 부동산의 하이브리드 이용이 장기적으로 유연성과 확장성을 갖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올해 3월에 발표한 ‘2040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에서 도입한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의 내용을 보면, 주거·업무·상업 등 기능의 구분이 사라지는 미래 융·복합 시대에 맞게 용도 도입의 자율성을 높여 업무·여가·상업·주거 등 복합적인 기능을 배치함으로써 현재의 경직된 도시계획 체계를 대전환할 계획이다. 

향후 ‘국토계획법’ 개정 및 이와 연계된 하위 법령의 제정, 개정 및 제도가 마련될 것이다. 도시 계획적 변화이지만, 하위 카테고리인 개별 부동산에도 이러한 융·복합적 이용에 대한 방향성과 활성화는 분명하다. 

부동산 투자 시 부동산의 융·복합적 이용에 대한 법제의 변화를 먼저 인지하고, 적시에 하이브리드 이용이 가능한 부동산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안목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부동산의 하이브리드 이용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용도의 융·복합뿐만 아니라 사고의 융·복합도 필요하다. 부동산 투자에 문과와 이과 중 누가 유리한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인문학과 기술, 철학과 과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통합하여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을 융·복합하는 창발적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