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超)세계화(hyper-globalization)가 막을 내리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균열이 생겼던 세계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저비용, 고효율을 고려한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분업해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공급망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화 선봉에 섰던 이들은 자국 중심의 생산 및 공급망 체제로 전환을 꾀하며 탈(脫)세계화를 이끌고 있다.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갈등도 탈세계화의 특징이다. 미국·유럽 대 중국·러시아로 대표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 권위주의 국가 사이의 대립 구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화의 후퇴는 10년 이상 지속된 변화”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부상과 함께 본격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세계화 및 경제 발전 이론의 대가인 필자 역시 “초세계화 시대는 끝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세계화 종말 이후의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국가 또는 국가 집단이 자급경제주의에 빠지고 지정학적 우위가 국제 무역 및 금융에서 영구적인 특징이 되는 부정적 시나리오와 개방 경제와 자국 이익 우선주의의 적절한 조화가 이뤄지는 긍정적 시나리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초세계화가 막을 내리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초세계화가 막을 내리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대니 로드릭하버드대 케네디스쿨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현 국제경제학회 회장,‘자본주의 새판짜기’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저자
대니 로드릭하버드대 케네디스쿨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현 국제경제학회 회장,‘자본주의 새판짜기’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저자

1990년대 말부터 이어진 초(超)세계화(hyper-globalization)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여겨진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화를 공중 보건과 국가 안보와 같은 국가 목표의 보조적 역할로 끌어내렸다. 물론 이 같은 위기가 ‘더 나은 세계화 시대’의 동인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초세계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둔화하고 있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이후 줄어들기 시작했다. ‘세계 공장’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중국의 전 세계 GDP 대비 수출 비중이 16%포인트 곤두박질치면서다.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확대는 사실상 멈췄다. 글로벌 자금 흐름 역시 2007년 이전의 최고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 회복에 나선 정부 관료, 세계화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의 국가주의 중심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도 영향을 미쳤다. 

초세계화는 많은 모순 아래에 무너졌다. 우선 ① 글로벌 공급망 차원에서 분업화, 전문화로 이익을 얻는 기업, 국가 간의 충돌이다. 비교우위의 원리에 따르면, 기업, 국가가 현재 생산에 능숙한 것을 특화해 이익을 늘리는 게 효과적이다. 글로벌 공급망에 이런 원리가 작동했지만, 팬데믹 등으로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으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가 더 부유한 국가들이 생산해온 제품을 자국 기업들에 생산하도록 밀어붙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과 자유주의 시장경제와의 갈등이 야기됐다. 

두 번째, 초세계화는 분배 문제를 악화했다. 무역을 통해 얻는 이득의 불가피한 측면은 패자에서 승자로 소득이 재분배된다는 점이다. 세계화가 빨라지면서 패자에서 승자로의 소득 재분배는 순이익이 커질수록 더 많이 이뤄졌다. 

세 번째는 국가 안보와 지정학적 경쟁의 제로섬 논리가 국제 경제 협력의 ② 포지티브섬 논리와는 정반대라는 점이다. 중국이 미국의 지정학적 경쟁자로 부상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략적 경쟁은 경제학에서 다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초세계화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세계 경제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우선 1930년대를 회상하면 최악의 결과는 국가 또는 국가 집단이 자급경제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이보다는 좋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쁜 시나리오는 지정학적 우위가 국제 무역과 금융에서의 우위를 좌우하는 영구적인 특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상호의존적이어서 자급경제를 할 경우 경제적 비용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긍정적 시나리오도 점쳐진다. 개방 경제와 자국 이익 우선주의의 균형이 맞춰지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폭넓은 번영과 세계 평화, 안보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 노력은 정책 입안자들이 다른 시장 우선 정책들과 병행해 초세계화에 의한 경제·사회적 피해를 해결하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다. 이는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시대 정신의 부활을 요구한다. 당시엔 세계 경제가 각 국가의 경제·사회적 목표인 완전 고용, 번영, 공정에 기여했었다.

일부에선 국내 경제·사회적 목표를 강조하는 것이 경제 개방성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공동 번영은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사회가 세계에 개방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크다. 분배 우려가 해결되는 한 무역은 국가 전체에 이익을 줄 수 있다. 이는 무역과 장기 투자가 많이 증가했던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실제로 경험한 교훈이다.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위한 두 번째 전제조건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공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나토(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의 확장을 우려할 수 있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완전히 잘못된 대응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러시아를 장기적으로 위험하게 하고 국가 번영에도 부정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강대국 특히 미국에 ④ 다극화된 세계(multipolarity·다극 체제)를 인정하고, 글로벌 패권의 무조건적인 추구를 버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세계 정세에서 자국의 우위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 관점에서 중국의 기술 및 경제 발전은 본질적으로 미국에 위협이고, 양국 관계는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한다. 

미국이 실제로 중국의 상대적 부상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차치하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위험하고 비생산적이다. 우선 안보 딜레마 측면이다.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규제 정책은 중국을 위협하고, 이는 중국이 미국에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하게 한다. 제로섬 전망은 또한 기후 변화나 세계 공중 보건과 같은 분야에서 협력을 통해 상호이익을 얻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외에도 협력이 필요한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경쟁을 유발한다. 우리의 미래 세계는 지정학이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고 국가가 서로 간의 경제적 상호 작용을 최소화하는 세계가 될 필요가 없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세계 각국에 있는 기업들이 분업해 제품을 기획하고 원자재 및 부품을 조달, 가공, 생산해 최종 고객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핵심 가치가 저비용, 고효율에서 안정성, 신뢰성으로 바뀌고 있다. 한 지역에서 대량 생산하는 게 아닌 수요지 중심의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개인 또는 조직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을 통한 상생 전략이다. 시장의 가치를 증대시켜 구성원들이 서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상대를 죽여야 내가 이기는 제로섬 전략과는 대비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연합국 44개국 대표가 모여 통화금융회의를 열고 체결한 협정. 1945년 협정이 효력을 발휘했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구축됐다. 통화가치 안정 등을 꾀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설립했다. 


주로 국제 정치에서 여러 강대국이 존재하는 체제를 뜻한다. 세력 분배는 강대국의 수에 따라 다극(多極), 양극(兩極), 일극(一極)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강대국의 국력 분포와 국제 체제의 안정성 등의 관계를 설명하는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 이론에서도 어떤 형태의 세력 분배가 가장 안정적인 형태인지는 의견이 갈린다. 과거 냉전 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는 양극 체제였다면, 소련 붕괴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지속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이 타격을 받은 이후 중국 등이 다극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대니 로드릭

정리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정리 김보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