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 전 PWM프리빌리지서울센터장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 전 PWM프리빌리지서울센터장

미국에 사는 A씨는 25년 전에 선친으로부터 땅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해외에 살고 있어 땅을 관리하지 못하던 중,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경계 측량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접한 토지 소유자가 260㎡ 정도 땅을 침범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땅에는 20년 전부터 산책로가 개설돼 동네 사람들이 통행하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군청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계단 등이 있었다. 친구의 이야기로는 땅을 20년 이상 관리하지 않으면 소유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이 통행하고 있는 땅도 도로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한다. 정말 땅을 빼앗길 수 있는지 궁금하다.

모든 토지가 도로를 끼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도로가 없는 토지가 많다. 도로가 없어 토지를 사용할 수 없다면 사회적·경제적 손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로가 없는 맹지인 경우에도 ①법에서 정한 점유취득시효 요건에 해당하거나, ②인접 토지의 소유자와 지역권설정계약을 체결하거나, ③주위토지통행권을 확보하게 되면 인접한 토지에 도로를 개설해 공로로 통행할 수 있다.

토지의 소유권은 법률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권리다. 그리고 그 소유권은 정당한 이익이 있는 범위 내에서 토지의 상하(上下)에 미친다. 그런데 인접한 토지 소유자가 경계를 침범해 땅을 사용하고 있다면 토지를 점유한 자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그 점유자가 토지를 정당하게 점유할 권리(지역권, 지상권 등)가 있는 때에는 반환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토지를 점유할 권리가 없는 경우, 토지 소유자는 소유권을 방해하는 자에 대해 방해 제거를 청구할 수 있고 소유권을 방해할 염려가 있는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해서도 그 예방이나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할 수 있다.

우선 점유취득시효에 해당하는 경우다. 토지는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으면 빼앗길 수도 있다.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법에 따르면 토지를 소유의 의사로 20년간 평온, 공연(公然·세상이 다 알도록 뚜렷하고 떳떳함)하게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이때 토지의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가 필요하다. 여기서 ‘소유의 의사’란 점유자의 주관적인 의사는 아니다. 즉, 소유의 의사는 점유 취득의 원인이 된 권원의 성질이나 점유와 관계가 있는 모든 사정 때문에 외형적·객관적으로 결정된다.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유의 의사로는 매매 또는 증여 등의 법률 행위를 거쳐 토지를 양수받은 경우다. 반면 소유의 의사를 인정할 수 없는 경우는 임차인, 관리인, 소작인 등이다(대법원 2017다360, 377 참조).

구체적으로 인접 토지 소유자가 점유할 당시에 소유권 취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법률 행위, 기타 법률 요건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타인 소유의 토지를 무단으로 점유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소유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본다(대법원 95다28625). 또, 국가가 사유토지를 임의로 도로 부지에 편입시키는 경우, 매입이나 기부 등 국유재산법에 정한 공공용 재산의 취득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물론 토지 소유자의 사용 승낙을 받아도 된다. 국가가 토지를 점유하는 경우 이러한 절차가 없었다면 소유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본다. 이렇게 누구라도 점유취득시효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점유자의 소유 의사가 명백해야 한다. 즉, 토지 소유자의 승낙 또는 법률 행위 등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참고로 토지의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스스로 소유의 의사를 입증할 책임은 없다. 반면 점유취득시효를 부정하는 토지 소유자가 매매 또는 증여 등의 법률 행위 없이 토지를 무단으로 점유당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A씨는 인접 토지 소유자와 정부가 20년 넘게 평온·공연하게 토지를 점유했더라도 그 점유가 매매계약 등의 법률 행위가 없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점유취득시효가 성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A씨는 무단으로 점유당하고 있는 토지를 인도받을 수 있을 것이며, 지료 청구도 가능해 보인다.


토지는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으면 빼앗길 수도 있다.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도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토지는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으면 빼앗길 수도 있다.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도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지역권 20년간 행사 안 하면 소멸

지역권을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권은 일정한 목적을 위해 타인의 토지를 자기 토지의 편익에 이용하는 권리다. 맹지인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인근 땅에 깔린 도로를 빌리는 식이다. 즉, 자신의 토지를 사용하기 위해 타인의 토지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도움을 받는 자신의 토지를 요역지라고 부르며, 도움을 주는 타인의 토지가 승역지다. 지역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요역지와 승역지 소유자 사이에 지역권 설정계약을 하고 등기를 마쳐야 한다. 만약 지역권 설정계약서가 없다면 도로를 포장해 계속 지역권 설정에 대한 표현을 해야 한다.

지역권은 요역지의 소유권에 따라 이전하며, 요역지에 대한 소유권 이외의 권리 목적이 된다. 또 요역지와 분리하거나 다른 권리의 목적으로 지역권을 양도할 수 없다. 본인의 땅이 경매로 팔려도 승역지 권리는 따라오며, 지역권을 설정한 다른 사람의 토지 권리도 따라온다.

소유자의 허락 없이 동네 사람들이 무단으로 토지를 통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도 지역권이 무조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권은 ‘계속되고 표현된 것’에 한해 민법 제245조(①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② 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자가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선의이며 과실 없이 그 부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소유권을 취득한다.)의 규정을 준용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역권은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따라서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이 토지를 통행했다고 해서 통행 지역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통행 지역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동네 사람들이 승역지 위에 도로를 설치하여 승역지를 사용하는 객관적 상태가 계속된 때에만 그 시효취득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대법원 95다1088, 1095, 대법원 2001다8493 참조).

주위토지통행권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 토지 소유자가 공로(도로)로 나가는 통로가 없을 때, 주위의 토지를 이용하지 않으면 공로에 출입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이 든다. 이때 주위의 토지를 통행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통로를 개설할 수 있는 것이 주위토지통행권이다. 주위토지통행권은 이미 기존의 통로가 있더라도 그것이 해당 토지의 이용에 부적합하여 실제로 통로로서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인정된다(대법원 2002다53469 참조). 주위토지통행권은 그 통행로의 폭이나 위치 등을 정함에 있어, 통행지 소유자에게 가장 손해가 적은 장소와 방법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통행지 소유자의 손해를 보상해야 한다. 하지만 주위토지통행권은 통행을 위한 지역권과는 달리 통행로가 항상 특정한 장소로 고정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주위토지 현황이나 사용 방법이 달라졌을 때는 주위토지통행권자는 통행지 소유자를 위해 손해가 적은 다른 장소로 옮겨 통행해야 한다.

주위토지통행권자는 통행이 필요할 경우 통행 지상에 통로를 개설할 수 있다. 이때 모래를 깔거나, 돌계단을 조성하거나, 장해가 되는 나무를 제거할 수 있다. 통행지 소유자의 이익을 해하지 않는다면 통로에 포장할 수도 있다(대법원 2002다53469 참조).

주위토지통행권은 요건이 없어지게 되면 당연히 소멸한다. 예를 들어 토지가 사정변경에 의하여 공로에 접하게 되거나 소유자가 주위의 토지를 취득함으로써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받을 필요성이 없어질 경우, 통행권은 소멸하게 된다. 참고로 주거지는 사람의 사적인 생활 공간이자 평온한 휴식처로서 인간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다. 헌법은 주거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헌법 제16조 참조). 이를 고려하면 주위토지통행권을 행사할 때, 이러한 주거의 자유와 평온 및 안전을 침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대법원 2008다7530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