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3월 29일(현지시각) 미국 채권시장에서 단기물을 대표하는 2년 만기 국채 금리가 2.398%를 기록, 미 국채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2.396%)를 한때 웃돌았다.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를 밑도는 게 일반적인데 역전된 것이다.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들면 투자자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대표적 안전자산인 장기 채권 투자에 몰리면서 채권 가격은 오르고, 금리는 낮아지게 된다. 장기물 금리가 단기물보다 낮아졌다는 것은 시장이 미래 투자자금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것이란 점에서 경기 침체의 징후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 경제 침체를 일으킨 주범이 개발도상국의 과도한 저축 때문이라는 과거의 주장이 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의장은 지난 2005년 3월 연설에서 중국과 같은 개도국의 ‘저축 과잉(saving glut)’이 결국 글로벌 경제 위기를 부채질했다면서 처음으로 이 개념을 소개했다. 중국 등 경상수지 흑자국의 저축 자금이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인해 달러화로 표기된 자산(미 국채)을 구매하는 데 사용되고 결국은 미국으로 유동성이 환류되면서 신용과 자산 등에 상당한 거품이 끼게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장기금리는 단기금리가 상승하는 중에도 하락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였다. 필자는 “경제 침체의 원인은 신흥국의 저축 과잉으로 비롯된 불균형 때문이 아니라 오랜 인플레이션에도 엄격한 금리 인상 정책을 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과거의 이론에 얽매이지 말고 정상적인 수준의 금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짐 오닐(Jim O’Neill) 범유럽 보건·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전 영국 재무장관
짐 오닐(Jim O’Neill) 범유럽 보건·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전 영국 재무장관

지난 2005년 미국의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연설에서 “동아시아를 비롯한 신흥국으로 흘러 들어가던 신용 흐름에 주목할 만한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면서 ① ‘저축 과잉 이론(savings glut hypothesis)’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1990년대 위기를 겪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 회복을 시작하면서 과거의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소비 혹은 재투자 대신 저축(외화보유액)을 과도하게 늘렸는데, 달러화를 대체할 만한 기축통화가 없는 상황이라 달러화 표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장기금리가 낮아지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아마도 안전자산을 보유하기를 원하는 전 세계 저축 수요 때문에 지속됐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시 과거에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어느 시점에서 달러화의 안전성을 위태롭게 만들고 인플레이션이 겹치면서 결국 미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더 높이도록 강요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버냉키 전 의장의 주장은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주장에 대한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 정책은 원칙적으로 부동산, 주식 등과 같은 자산 시장 여건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최근처럼 실물경기와 자산 가격이 따로 노는 여건에서는 통화 정책은 반드시 자산 시장을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버냉키의 주장은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는 당시의 경제 침체 국면은 장기적이라기보다 일시적·순환적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통화 정책과 더불어 각국의 해외투자 활성화 정책 등이 시행되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신용경색과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제로 금리’라는 사상 초유의 실험에 나섰고 양적완화로 불리는 대규모 자산 매입(LSAP), 즉 국채 매입을 통해 시장에 엄청난 자금을 공급했다. 만기가 짧은 단기채권을 팔아 장기채권을 매입해 통화량을 늘리지 않으며 금리를 낮추는 ②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도 이례적이었다.

언뜻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유동성 잔치에 따른 경제 왜곡 현상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세계 금융시장의 초유의 관심사이고, 그로 인한 신흥국의 ‘긴축 발작(Taper Tantrum)’까지 버냉키의 그림자는 아직 짙고 깊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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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학자들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버냉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저축 과잉 이론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의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제 침체의 원인은 저축 과잉이 아니라 다른 데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지속될 수도 있고 혹은 아닐 수도 있는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진입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선 오래된 이론에 매달려 있기보다 통화 정책을 더 엄격하게 하고 정상적인 수준의 실질 금리를 추구해야 한다. 경제성장률 추이와 실질 금리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배운 대학교 경제학 기초 수업을 모두가 기억하길 바란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단행된 러시아에 대한 ③ 은행 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 차단 등 서방의 경제 제재를 보고 나서 버냉키의 세계적 저축 과잉 이론은 결정적으로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러시아 은행들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미국의 경제 제재에 대비해 외환 보유액을 대폭 늘렸는데,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등이 러시아에 대한 초강도 경제 제재에 돌입하면서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 절반가량을 동결했다.

필자는 몇몇 국제 통화 전문가들과 이 같은 의견을 나눴지만 대부분이 내 생각을 정중하게 무시했다. 그들은 외환 보유고가 많은 대부분의 나라는 서방의 경제 제재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을 때 다른 국가들은 왜 그렇게 많이 달러를 비축해야 하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다면 올해 우리가 채권 시장에서 봤던 (장단기금리 역전 같은) 혼란은 단지 전주곡에 불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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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저축 과잉 이론(savings glut hypothesis)은 일부 경제학자들이 미국의 부동산 거품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로 신흥국의 ‘저축 과잉’을 꼽으면서 나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올바른 인과관계의 출발점이 아니라면서 ‘신용 과잉(credit glut)’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미국 은행들이 국민에게 과도하게 빌려줘 미국인은 새로 탄생한 돈을 쓰면서 다른 나라들이 저축을 늘리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저축과 흑자가 늘어나는 것은 미국의 과도한 지출을 유도하는 원인이 아니라 단지 미국 내 금융호황의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는 중앙은행이 단기채권을 매도한 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그 자금으로 장기채권을 매입하는 정부의 시장 개입 정책이다. 일반적으로 채권의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중앙은행이 장기국채를 매입하면 장기국채의 수요가 많아져서 가격은 올라가고 금리는 하락한다. 반대로 중앙은행이 단기국채를 매도하면 시장에 단기국채의 공급이 증가해 가격은 하락하고 금리는 상승한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은 시간 대비 금리가 높아진 단기채권을 선호하게 된다. 단기채권은 회사채, 벤처기업채권 등 경기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종목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경기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별다른 유동성 공급 없이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 종류의 변경만으로 경기 활성화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조달금리가 낮아져 장기로 차입을 하려는 기업의 투자 및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은행 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은 금융거래 메시지를 위한 통신네트워크다. 현재 200여 국 1만1500여 개의 금융기관이 송금 메시지를 스위프트 코드로 전송하고 있다. 스위프트에서 제외되면 사실상 달러화나 유로화 등으로 해당 금융기관과 입금, 출금 등의 금융서비스를 진행할 수 없다. 러시아는 외환 보유고의 60%를 서방 국가의 중앙은행, 상업은행 등에 채권 및 예금 형태로 운용하고 있는데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중앙은행 보유 자산에 대한 동결 조처를 내린 탓에 러시아로선 외환 보유액의 절반 이상을 쓸 수 없게 됐다.

짐 오닐

정리 전효진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정리 김보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