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우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 대표 전 한빛소프트 해외마케팅 상무, 전 더나인 부사장, 전 알리바바 게임담당 총괄이사, 전 LB인베스트먼트 중국법인 대표
박순우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 대표 전 한빛소프트 해외마케팅 상무, 전 더나인 부사장, 전 알리바바 게임담당 총괄이사, 전 LB인베스트먼트 중국법인 대표

중국 로컬 색조화장품 브랜드 ‘퍼펙트 다이어리(完美日记·완미일기)’가 중국 내수 시장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퍼펙트 다이어리 모회사인 이셴(Yatsen)은 2019년 35억위안(약 608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8년 총매출(770만위안·약 13억4000만원)의 453배 수준이다.

이셴은 매출의 98%를 차지하는 퍼펙트 다이어리의 활약에 2020년 11월 19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등 초고속 성장 신화를 쓰고 있다.

퍼펙트 다이어리는 고급화와 가성비로 양분된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중국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1~2004년생)’를 사로잡으며 사업을 확대해왔다. 중국 MZ세대는 어릴 때부터 모바일로 인터넷을 접하고, 모바일 상거래로 쇼핑을 하는 데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앞선 세대보다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며, 국산 브랜드를 선호한다. 퍼펙트 다이어리는 품질을 높인 중국산 화장품을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등의 방식을 통해 매출을 늘려왔다.

중국의 투자사들도 퍼펙트 다이어리의 성장세에 도움을 줬다. 텐센트와 징둥닷컴 등에 투자해 잘 알려진 힐하우스 캐피털, 젠 펀드(Zhen Fund), 타이거 글로벌 매니지먼트(Tiger Global Management) 등 벤처캐피털이 총 5억8900만달러(약 6726억원)를 투자했다.

모회사 이셴은 여기에 더해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6억1690만달러(약 7002억원)를 추가로 조달하며 추가 성장 엔진을 장착했다. 퍼펙트 다이어리가 글로벌 시장의 주목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비결 1│데이터 분석 통한 제품 개발

퍼펙트 다이어리는 기존 화장품 개발 과정을 뒤집으면서 제품 개발을 효율화했다. 화장품 기업은 일반적으로 시장조사→계획 수립→아이디어 구상→제품 개발→시험→출시 및 마케팅을 거친다. 제품 완성까지 12~18개월 정도 드는 편이다.

반면 퍼펙트 다이어리는 트렌드 분석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상한 후 이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홍보한다. 소비자 반응 데이터를 수집하고 다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출시까지 6개월 이내로 시간을 대폭 줄이고, 시장실패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한다.

퍼펙트 다이어리는 또 위챗, 샤오홍슈,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서 소비자들과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 SNS에서 소비자들의 반응과 의견을 상시적으로 추적해 데이터에 따라 마케팅 전략과 예산을 결정한다. 반응이 좋은 상품은 대량 생산하고, 반응이 좋지 않은 상품은 생산하지 않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쓴다.


퍼펙트 다이어리는 중국 MZ세대를 사로잡으며 고속 성장했다. 사진 퍼펙트 다이어리
퍼펙트 다이어리는 중국 MZ세대를 사로잡으며 고속 성장했다. 사진 퍼펙트 다이어리

비결 2│한국식 OEM·ODM 방식의 응용

중국 광저우 소재 중산대학을 다녔던 황진펑은 함께 농구를 하던 2명과 2015년 이셴을 세웠다. 이들은 각자 프록터앤드갬블, 로레알, 아모레 퍼시픽 등의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후, 창업을 준비했다. 또 창업 과정에서 다른 기업의 장점을 접목하기도 했다.

2년 뒤 출범한 퍼펙트 다이어리는 주문자 상표 부착생산(OEM), 제조업자 개발 생산(ODM) 방식으로 성공한 한국 브랜드들의 노하우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대량 주문을 통해 원가를 절감한다.

포장과 패키징 용기까지 OEM·ODM사가 보유하고 있는 모델에서 선택해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한국의 OEM·ODM사는 퍼펙트 다이어리 사업 초기, 매출채권에 대한 여신을 1년 이상 제공하는 등 퍼펙트 다이어리와 전략적 관계를 형성했다. 이는 퍼펙트 다이어리 성장에 있어 중요한 하나의 원동력이 됐다.

퍼펙트 다이어리는 한국의 ‘코스맥스’, 이탈리아의 ‘인터코스’ 등과 협력해 화장품을 제조한다. 코스맥스 광저우의 연 매출 중 35~40%를 퍼펙트 다이어리가 차지하며, 또한 퍼펙트 다이어리 제품의 40% 이상을 코스맥스가 제공하는 등 긴밀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다.


비결 3│D2C 비즈니스

퍼펙트 다이어리는 기존 화장품 기업처럼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지 않는다. 대신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고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판매하는 D2C(Direct-to-Consumer) 비즈니스 모델을 택했다. 퍼펙트 다이어리는 값싸고 품질 좋은 중국산 색조화장품을 티몰, 타오바오, 샤오홍슈, 틱톡 등에서 D2C 방식으로 판매한다. 2019년 전체 매출의 96.3%가 온라인 매출이었다.

퍼펙트 다이어리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실시간 접촉을 확대하고, 메이크업 튜토리얼·후기 등을 반영하는 등 온라인과 D2C 방식으로 브랜드와 유통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주요한 소비자 접점 지역에는 체험 매장을 세워, 오프라인 현장에서 고객의 반응을 수집한다.


비결 4│인플루언서 마케팅

퍼펙트 다이어리의 성장에는 소비자 간 상호 소통이 중심인 ‘주요 오피니언 소비자(Key Opinion Consumer)’, 인플루언서 중심인 ‘주요 오피니언 리더(Key Opinion Leader)’ 마케팅 전략도 큰 역할을 했다. 소비자들은 위챗과 샤오홍슈 등에서 제품 경험, 사용 방법 등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이러한 방식은 브랜드의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고, 다시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도 활용할 수 있다.

퍼펙트 다이어리가 중국의 SNS에서 4000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는 남성 뷰티 인플루언서 ‘리자치(李佳琦)’와 협업한 사례도 유명하다. 퍼펙트 다이어리는 리자치와 지난해 7월 공동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주요 고객층인 MZ세대에 파고들었다.


흑자 달성, 공매도 우려는 숙제

퍼펙트 다이어리의 빠른 성장 행보 뒤에도 우려는 있다. 저가 정책과 대규모 마케팅 예산 집행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전략 때문에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셴의 지난해 매출은 52억3000만위안(약 9131억원)을 기록했지만, 순손실도 26억9000만위안(약 4697억원)에 달했다. 이 때문인지 주가도 3월 12일 상장 이후 최저 수준(15.71달러)으로 하락한 상태다. 투자자들에게 헤지펀드의 공매도 공격을 받았던 루이싱커피(Luckin Coffee), 이항(Ehang) 등과 같은 중국 기업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줘야 하는 것도 숙제다.

화장품 산업의 트렌드가 워낙 빠르다는 점도 리스크다. 퍼펙트 다이어리는 2019년 티몰의 화장품 판매 점유율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중국 로컬 브랜드인 ‘플로라시스(Florasis·花西子)’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플로라시스는 2017년에 설립된 신생 브랜드로, 퍼펙트 다이어리와는 정반대로 중국적 디자인과 럭셔리한 포지셔닝을 추구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중국 대표 신세대 소비재 브랜드인 퍼펙트 다이어리는 중국 시장에서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들과 경쟁하고 미국 자본시장의 파고를 헤쳐 나갈까? 중국에서 지속 성장을 추구하는 한국 기업들도 관심을 두고 지켜볼 만한 행보다.